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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인 Sep 20. 2024

[쉽게 도움 받는 법]

히치하이킹 노하우



 에피소드를 쓰다 보니 인종차별이라던가 사기꾼이라던가 하는 것만 쓴 것 같아 뒤늦게 할애한 페이지. 

 내가 여행하며 받은 도움에 관한 이야기다. 더불어 다년간 터득한 ‘쉽게 도움 받는 법’도 끼워 팔 테니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독일에서 쓰러진 썰

 나는 독일에 있을 때 ‘말 그대로’ 쓰러진 적이 있다. 

 때는 겨울,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독일에서 사귄 인도네시아 친구 스탠리와 함께 DJ 파티가 열리는 워터파크에 갔다. 그곳은 도시 외곽에 있어 뮌헨에서 약 한 시간 정도 지상철을 타고 가야 했다. 


 DJ파티가 열리는 스테이지는 야외에 있었다. 우리는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장 바에서 술을 마시다 파티를 즐겼다. 2시간 동안 맥주부터 칵테일, 데낄라 등 술을 들이붓고, 물속에서 춤추고, 모르는 사람들과 물을 뿌리며 미친 듯이 놀았다. 그렇게 노는 동안 눈이 펑펑 내렸다. 뜨거운 물에서 피어오르는 증기와 네온사인 조명, EDM 음악까지. 정말 행복했다.


 아무튼 그렇게 신나게 놀고 난 뒤,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팠고, 속이 안 좋았다. 아무 술이나 막 섞어 마신 탓이었다. 막차 시간을 앞두고 급하게 속을 한 번 게워낸 뒤, 지상철을 탔다. 원체 위가 약하고 숙취가 심한 편이라 지상철을 타고 가는 와중에도 계속 속이 울렁거렸다. 


 어지간하면 잠깐 내려서 화장실을 들렸다가겠지만, 여기서 내리면 갈 방법이 없었다(독일 택시비는 비싸다). 결국 꾹 참으며 마리엔 광장역까지 갔다. 역에서 문이 열린 순간, 갑자기 구토가 나올 것 같아 좌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있던 친구 스탠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봤고, 나는 말을 할 틈도 없어 내려야겠다고 손짓했다. 


 그렇게 역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차라리 토를 할 것이지 왜 갑자기 쓰러졌는지 모르겠다. 눈앞이 컴컴해진 상태로 몇 걸음 걷다가 픽하고 쓰러지며 머리를 바닥에 쾅하고 부딪쳤다(여기서부터는 내가 정신을 차린 후 스탠리가 말해준 내용이다). 


 나는 젖은 빨래처럼 축 처진 모습으로 역 플랫폼 바닥에 널브러졌다. 스탠리는 너무 놀라 나에게 달려왔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독일인 4명이 전부 달려왔다고 했다. 여러 명이 동시에 나를 들어 올려 재빨리 근처에 있는 벤치로 옮겼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독일인들은 생각보다 섬세했다. 2명은 나를 옮긴 뒤 갈 길을 갔고, 남은 2명이 스탠리를 추궁했다고 한다. 이건 그들이 나눈 대화다. 


 -이 여자애와 무슨 관계지?

 -친구입니다…!

 -약을 먹인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냥 얘가 술을 많이 마셔서…

 -너희 몇 살이야.

 -저는 23살이고요, 얘는 저보다 누나인데… 25살이에요. 

 -확실해? 어려 보이는데?

 -진짜입니다...! 저희는 성인이에요!


 나는 스탠리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취조를 받았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누명을 벗은 내 친구 스탠리는 취조를 끝내고 나를 숙소로 옮겨 줄 방법을 도모했는데, 어떤 독일인이 택시를 불러주고 광장까지 가는 동안 나를 부축하는 것을 도와줬다고 했다. 더불어 택시기사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고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며 자신의 명함까지 남기고 갔다고 전해 들었다. 


 그 얘기를 들은 뒤로, 독일을 여행하는 내내 마음이 든든했다. 

 아, 이 이야기는 ‘독일에서 도움 받으려면 쓰러지세요’라는 뜻은 아니다. 그냥, 너무 감동받았다는 뜻. 








 +숙소로 옮겨진 뒤 로비 소파에서 눈을 떴다. 아마 따뜻한 온천에 있다가 추운 밖으로 나왔고, 술까지 마셔서 혈압에 일시적인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 싶다. 참고로 택시비는 50유로 나왔다.









당케=땡큐라는 뜻









 














 히치하이킹 노하우

 이 비법이 이제야 나온다.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전수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될 줄은 몰랐다. 다들 집중. 

 나는 배낭여행 중 의도치 않게 히치하이킹을 많이 했다. 트레킹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어쩔 수 없이 히치하이킹을 한 적은 있었지만, 내가 ‘히치하이킹을 해야겠다’라고 결심하고 다가간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얻어 탄 비법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첫 번째, 일명 ‘좀비 워킹’ 

 히치하이킹이 필요한 곳이라면 대게 외딴 시골길이나 대중교통이 없는 도로일 것이다. 그럴 땐, 한 자리에 서서 엄지손가락만 휙휙 거리지 말고 일단 가야 하는 방향 쪽으로 걸어라

 당신이 운전자라고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운전자인 당신은 전방에 걷고 있는 사람을 발견할 것이다. 만약 외딴 길을 걷고 있는 어느 배낭 여행객이 곧 쓰러질 듯한 좀비처럼 터벅… 터벅… 걷고 있다면? 

 에이, 그냥 지나치자 하고 가려는 순간 허옇게 질린 얼굴을 하고 엄지손가락을 힘겹게 들어 보인다면? 웬만한 인간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포인트는 좀비 워킹이다. 그냥 두고 가면 죽겠는데 싶을 정도로 힘겹게 걸어야 한다. 이 방법을 써서 세운 차가 한 두 대가 아니란 말씀. 


 두 번째, 히치하이킹도 사람 봐가면서, ‘커플을 노려라’

 이것도 히치하이커가 된 입장을 떠나서 운전자가 되어보자. 

 당신은 사랑하는 연인과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저 앞에 길을 잃은 듯한 배낭여행객이 히치하이킹을 한다. 


 “자기야, 저기 히치하이킹하나 봐. 우리가 태워줄까?”

 “그러자. 일단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볼게.”


 매정하게 거절할 수 있는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히치하이커를 태워주자고 제안하거나,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외국인 커플들은 대게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내가 히치하이킹에 성공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커플이었다. 프랑스인 중년 부부, 젊은 튀르키예 커플, 조지아와 독일 국제 커플, 히스패닉 커플 등 아주 다양했다. 그들은 심지어 내가 걸을 생각인데도 차를 세우고 “태워줄까?”하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니 히치하이킹을 할 때, 눈에 불을 켜고 운전석을 보다가 커플이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어필하시길. 실패할 확률이 매우 낮다!





 마지막으로 이건 조금 다른 결인데, '당신의 직감을 믿어라'.

 용케 히치하이킹에 성공해서 어떤 차가 섰다고 쳐보자. 

 운전자와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했을 때, 어딘가 쎄한 느낌이 든다면 당장 도망가라. 절. 대.로. 그 차를 타지 마라. 

 이건 정말 중요하다. 잔소리처럼 느껴져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프랑스에서 한 번 큰일을 당할 뻔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데, 어떤 탑차가 앞에 서더니 중동 쪽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걸었다. 서툰 영어로 더듬거리며 버스가 오지 않을 테니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때는 시내로 나갈 방법이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듯 타겠다고 했는데, 그 남자는 아직 배달할 게 남았으니 5분 뒤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태워다 주면 키스를 해달라고 했다. 미친새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쎄하고 찝찝한 게 이상했다. 

 그 뒤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말도 섞지 않는다.






+나는 최근에 그간 받은 히치하이킹 은혜를 갚기 위해 어느 히치하이커 두 명을 태워줬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분들에게 언젠가 누군가를 태워줄 기회가 오면 흔쾌히 멈추길 바란다고 했다. 여러분도 히치하이킹 캠페인에 동참한다면 좀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얘기 한다면서 또 안 좋은 썰을... 미안하니까 예쁜 프랑스 사진










 친절은 친절로 부르세요

 너무 당연한 말이라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마무리로 좋을 것 같아서 추가했다. 

 제목 그대로다. 누군가에게 친절한 도움을 받고 싶다면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활짝 웃으며 말하면 찡그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화가 난 사람도 누그러지기 마련이다. 

 도움을 부탁한다고 정중하게 말하면 무표정으로 지나가던 사람도 대부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다. 이건 노하우랄 것도 없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도 하다. 





 +저도 노력 중입니다. 그러니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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