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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인 Sep 19. 2024

파란색은 믿음의 색이야

프랑스, 마르세유







 마르세유.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릿한 곳.

 만약 인종차별 콘테스트를 연다면 나는 단연 마르세유에게 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명분이야 내가 밤새도록 말해줄 수 있다. 당한 게 하도 많아서.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누군가 내게 소리친다.

 ’칭챙총!’ ‘니하오마!’

 레스토랑에서 계산을 하려면 약 4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한가했던 직원도 동양인이 계산서를 달라고 하면 갑자기 바빠지니까. 급하지도 않은 테이블 세팅을 한다던가 어물쩍 주방을 들락거리면서.

 물론 밥도 빨리 먹어야 한다. 직원들은 내 접시에 음식이 남아있든 말든 치우고 싶어 안달 나 있는 하이에나로 돌변한다. 동전지갑은 필수다. 10유로에 가까운 잔돈도 전부 1,2유로 동전으로 줘서 마르세유에 있는 동안엔 걸을 때마다 쩔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맥주 값도 현지인보다 두 배로 들었다. 같은 값을 지불하고 같은 사이즈 생맥주를 주문해도 나에게는 카푸치노를 연상케 하는 맥주를 준다. 거품이 50% 정도로 차 있어 몇 모금이면 바닥이 보인다.

 아, 물론 프랑스어도 잘해야 한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해야지 왜 영어를 쓰냐고 묻는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홀리데이’라고 대답했다.



 미련하다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나는 프랑스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샤를 드골 공항에 입국한 뒤로 뭐에 씐 발바리처럼 프랑스를 떠돌았다.

 이 나라가 갖고 있는 어딘가 묘하게 공허한 분위기가 내 마음의 결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내 마음속 어딘가 툭 뚫린 구멍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프랑스가 내게 수혈해 줄 수 있는 혈액형을 갖고 있다 믿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느낌만 어렴풋 남아있다.








평일 오후 프랑스 공원










 툴루즈에서 기차를 타고 마르세유로 갔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오전 기차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는 개인적인 공간을 중요시하는 편이라 내가 앉은 좌석 맞은편에 누군가가 앉는 것을 싫어한다(이런 성격이 여행하는 게 참 말이 안 되긴 한다).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3칸 정도 건너갔다. 캐리어를 짐칸에 두고 빈좌석을 찾아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날은 운이 좋지 않았는지 출발 직전 내 앞에 다른 승객이 앉았다. 남루한 체크셔츠를 입은 할아버지다. 그는 어색한 눈 맞춤과 함께 살짝 미소 지었다. 나도 짧은 미소로 답했다.

 나는 가방에서 얼른 헤드셋을 꺼내 썼다. 헤드셋이야말로 대화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척 봐도 ‘말 걸지 마세요’라는 비주얼 아닌가. 사실상 내 여행 필수품이다.


 3시간 동안 기차를 탔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잠시 졸다가

 표를 검사하느라 잠에서 깨 책을 읽다가

 다시 창밖을 보다 보면 도착이다.

 간혹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바뀌어 있기도 하다. 마르세유에 도착할 쯤엔 에어팟을 끼고 핸드폰을 보는 여자애가 있었다. 때로는 눈짓도 보내지 않는 차가움이 편하다.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뜨거운 커피보다 쪽 빨아 마시는 아이스커피가 편하듯이.


 마르세유는 큰 도시라 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바겐세일이라도 하는지 앞다투어 짐을 챙기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내 캐리어를 사수했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성격 급한 것은 한국인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기차가 멈추기 훨씬 전에 출구 쪽에 서있는 유럽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빨리 내리기 위해 출구 근처 간이 좌석만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무단횡단이 일상이라 초록불이 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는 법이 없다. 이렇게 급한 사람들이 자국 관공서에서는 어떻게 기다릴까. 인내심을 거기에서 다 써버린 탓에 일상의 참을성이 없는 것은 아닐까.






 마르세유에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은 ‘내가 여기에 왜 왔지?’였다.

 기차역에서부터 악취가 심하게 풍겼다. 프랑스에서 웬 악취로 유난인가 싶겠지만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훅 끼치는 지린내는 타격이 세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기차역 근처에 양아치들이 드글거렸다. 그들에게선 대마초 쩐내가 났다. 말아 둔 대마초를 귀에 꽂고 돈 나올 구석 없나 어슬렁거리는 꼴을 보면 자동으로 고개가 숙여진다. 위험을 감지한 뇌가 강력한 신호를 보내 본능적으로 눈을 피하는 것이다.


 그 부근은 최대한 빨리 지나치는 수밖에 없다. 담배라도 피우는 순간 먹잇감을 포착한 놈들이 ‘원 시가렛 플리즈’ 라며 애원한다. 거기서 담배를 주는 순간 게임 끝이다. 담배 한 개비는 결국 돈을 뺏기 위한 포석이니까.

 나는 잰걸음으로 역을 벗어났다. 나 같은 사람이야 말로 1순위 먹잇감이다. 혼자 있는 동양인 여자 관광객.










오해 마시길 여긴 바욘 역이다 마르세유는 이렇게 깨끗하지 않다









 나는 마르세유에 일주일이나 있기로 했다(물론 지린내를 맡기 전 내린 결정이었다).

 그때는 어떤 도시를 가든 적어도 일주일은 있어야 제대로 여행을 하는 것이라 여겼다. 나는 그 결정을 무지막지하게 후회했다. 


 유럽은 역시 걷는 맛이지 하며 거리로 나가면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특히 버려져 있는 주사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다. 말로만 들었지 이걸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주 얇고 주황색 컬러가 들어간 주사기였는데, 대로변 쓰레기통 옆에 떡하니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신기했다. 이런 게 한국에서 발견된다면 뉴스에 나올 텐데.


 찾아보니 2023년 마르세유 마약 관련 살인사건이 48건이었다. 1930년 대부터 마르세유 항구를 통해 헤로인이 유통된 역사는 지금까지도 이들의 일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숙소에 누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칼럼을 읽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이건 나쁜 약이잖아.


 솔직히 말하면 난 마르세유에서 여행할 의욕을 상실했다.

 건축물은 내게 좋은 인상을 줄 만큼 아름답지 않았고, 해변도 마찬가지였다. 먹구름이 가득 껴서 황량한 기운만 맴돌았다. 파도는 쓸데없이 넓은 해변에 끝도 없이 몸을 부딪쳤다. 지금도 마르세유의 해변은 내 기억 속에 흑백 필터를 끼운 사진처럼 남아있다. 혼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왔던 거위 부리만 분홍빛으로 칠해져 있다.


 나는 5일 동안 그 도시를 방황하며 외로움 수치를 최고점으로 끌어올렸다.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호스텔 비 몇 만 원만 포기하면 다른 곳에 갈 수 있었지만 계속 마르세유에 붙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부러 나 자신을 고립시켰나 싶다. 그런 억지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고독한 5일이었다.








프랑스 골목 어딘가에 있는 벽화










 5일쯤 지나자 정상 범위를 벗어난 외로움이 나의 밤을 공격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낡은 철제 침대 2층에서 움직이면 밑에 있는 사람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기 때문에 마음껏 뒤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난 빳빳하게 말린 노가리처럼 누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동트는 새벽녘을 바라보며 하루라도 마르세유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구글맵을 뒤지던 중 ‘꺄씨스(Cassis)’라는 곳을 발견했다. 마르세유 항구에서 지하철과 기차로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곳엔 트레킹 코스도 있다. 가서 한참 걷고 나면 곯아떨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아침에 호스텔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La Blancarde’ 역으로 갔다. 본격적인 트레킹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배낭에 생수 한 병과 사과, 바게트, 살라미, 샐러드와 비치타월을 챙겼고, 등산모자와 기능성 티, 레깅스에 트레킹화까지 갖췄다. 길거리 쇼윈도를 통해 비춰본 내 모습은 완벽한 등산객이었다.


 알찬 준비성과 달리 역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잃었다. 기차역에 있는 전광판을 한참 동안 쳐다봤지만 꺄시스 행 기차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 역에 마땅히 있어야 할 역무원도 없었다.

 플랫폼 앞에 있는 티켓 발권기를 발견했지만 스크린이 뿌옇고 해가 내리쬐는 탓에 뭘 눌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죄다 프랑스어다. 이거 원, 기계까지 인종차별하나 싶어 아무거나 눌러보니 8.5유로를 내라고 했다. 두 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너무 비싼 금액이었다.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버스 정류장에 갔다가 지하철을 기웃거리다 헤매기를 30분. 어쩔 수 없이 다시 기차역 개찰구 앞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도와줄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거는 것이 오랜만이라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Lidi에서 파는 플랫 브래드를 먹으며 티켓 발권기 옆에 기댄 채 내게 말을 거는 프랑스 남자.

 백팩을 메고 가볍게 입은 남색 티셔츠, 카고 반바지. 햇빛에 살짝 찡그린 인상. 오후 1시인데 방금 일어난 듯한 얼굴, 그렇지만 미치게 잘생긴 얼굴. 넷플릭스 하이틴 시리즈에 메기남 캐릭터로 등장해도 손색없는 비주얼… 그러니까 내 이상형인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다니?


“응, 나 도움이 필요해."


 나는 잠시동안 흐른 정적을 메꾸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다가와 상황 설명을 요하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긴장되는 탓에 영어가 잘 나오지 않았다. 늘 이랬다. 편할 때만 술술 나오는 애석한 영어 실력. 그의 얼굴이 가까이 오자 햇빛에 눈 색깔이 드러났다. 초록빛이 도는 헤이즐넛 색.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 눈동자에 홀릴 듯했다.

 내가 꺄시스라는 마을에 간다고 하자 그는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했다.


 “티켓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모르겠어."

 “사실, 안 사도 돼.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다가 들어가는 사람 있으면 뒤에 따라 들어가."

 “뭐? 그래서 여기에 그냥 서있었던 거야?”

 “응."


그가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여긴 마르세유잖아? 그러니까 뭐.."


 이것을 문화차이로 봐야 하나 개개인의 도덕성으로 봐야 하나 헷갈렸다.

 한국에서 친구 전남친이 청소년 요금으로 속여 탔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 나는 군중심리로 인한 도덕성 결여정도로 결론지었다. 여긴 아주 작은 간이역이니까 티켓 검사를 할리 없으니 유혹이 상당하겠지.


 내가 티켓을 사고 싶다고 하자 그가 나를 도와주었다. 함께 손차양을 만들어가며 꺄씨스로 가는 티켓을 찾았지만 그는 결제하는 과정에서 헤맸다. 여기서 티켓을 한 번도 안 사본 것이 분명하다.

 뭘 눌러도 티켓이 안 나오자 그가 본인 카드를 꺼냈다. 나는 그의 카드를 막으며 내가 결제하겠다고 했다. 1.7유로 밖에 안 되는 가격이어도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쓰게 하고 싶진 않았다.


 슬픈 건 이 부분에서 그가 그저 잘생긴 무임승차남으로 전락했다. 내가 티켓을 사고 난 뒤 같이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봤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기차역











 우리는 기차역 플랫폼에 들어왔다. 전광판에 꺄씨스 방향 기차가 15분 뒤 도착한다고 쓰여있었다(이럴 때만 15분이지 평소엔 30분씩 안 오면서). 그도 나와 같은 방향이라 한 걸음 반 정도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섰다. 정적도 잠시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행 중이야?"

 “응."

 “어쩌다 마르세유에 왔어?"

 “아, 사실 며칠 전 툴루즈에 가서 내 친구를 만났는데 여기 근처에 아름다운 곳이 많다고 들어서 왔어."

 “맞아, 네가 지금 가는 꺄시스도 예뻐. 귀여워."


 그는 특이한 표현을 썼다. 꺄시스에 간다고 하니까 귀여운 곳이라고 했다. 그 단어를 곱씹다가 내가 귀엽다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어색한 정적이 싫어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너는? 여기에서 살아?"

 “응, 사실 나도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됐어. 9월 초에 왔으니까 일주일 됐나."


 그는 외향적이었다. 뭔가 물으면 신이 난 얼굴로 대답했다. 영어 발음에 프랑스인 특유의 억양이 묻어 있었지만 유창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톤으로 내 눈을 맞추며 말했다. 말하기 전 뜸을 들이지 않았고 자연스러운 제스처를 사용하며 영어로 말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대게 영어권 국가에 유학한 경험이 있다. 열심히 배웠건만 자국으로 돌아와 쓸 일이 없으니 자랑할 기회가 오면 신이 나 덥석 문다. 반면 영어를 생존 목적으로 배운 나의 경우는 다르다.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 습관적으로 잘 알아듣는 ‘척’을 한다. 단번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는 단어를 갖고 맥락으로 유추할 수 있어서 리액션으로 방패막을 쳐 놓고 머릿속에서 해석을 하느라 바쁘다.



 나는 그가 한 얘기 중 절반만 알아 들었다(원래 이 정도까진 아니다!). 모든 감각이 전부 영어로 향해 있으면 80-90%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데, 이때는 내가 살짝 고장 나서 감각 몇 개가 딴 데에 가 있었다.

 아무튼 그는 영화에 대해 말했는데, 내일은 한국영화를 상영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막연히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나 싶었다. 나는 못 알아들은 것을 티 내지 않으려 열심히 반응했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한 뒤로 말이 더 많아졌다. 정신이 없었다.


 “프랑스 어때? 좋아?”


 그의 질문에 목구멍까지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솟구쳐 올랐다. 좋았던 기억만 말하고 싶었는데, 그 단어를 게워내지 않으면 속이 울렁거릴 듯했다. 결국 나는 솔직한 대답을 택했다.


 “사실 인종차별을 당했어. 물론 프랑스 분위기를 사랑하지만 여행하기 좋은 곳은 아닌 것 같아.”


 그는 나의 솔직함에 약간은 놀란 듯했다.


 “오… 아마 마르세유는 다른 지역보다 더 심할지도 몰라. 내가 프랑스인으로서 대신 사과할게. 정말 기분 나빴겠다.”


혹시 몰라 그의 얼굴을 살폈지만 언짢은 기색이 보이진 않았다. 그는 고등학생 때 캐나다에서 유학을 했던 경험이 있어 프랑스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겼다고 덧붙이며 인종차별에 대해 비난했다. 사과 한 마디가 뭐라고 나쁜 기억이 조금은 미화됐다.










언젠가 기필코 이런 곳에 별장을











 혼자 있을 땐 그렇게 늦게 오던 프랑스 기차가 제시간에 득달같이 간이역으로 들어섰다. 기차 문이 열리기 직전, 나는 충동적인 용기에 힘입어 핸드폰을 꺼냈다.


 “인스타그램 있어?"


 누군가에게 수작을 건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늘 간택받는 쪽이던 내 인생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 아닐까 싶다. 걱정과 달리 그는 흔쾌히 나를 팔로우했다. 그리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까처럼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에게나 물어봐. 특히 나처럼 젊은 사람한테 물어보면 영어도 할 줄 알 거고 친절하게 도와줄 거야."

 “정말 고마워. 이름이 뭐야?"

 “아서. 너는?"

 “나는 예인. 그냥 옌이라고 불러줘."


 그는 내게 즐거운 여행을 빌어주었다. 우리는 짧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기차로 공간을 옮기자 플랫폼에서 쌓은 친밀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그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칸으로 가 앉았다. 낯선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더라도 어색함을 피하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용기로 그에게 인스타를 물어봤을까? 혹시 모를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청하려고? 프랑스인에 대한 호기심? 아니면 무임승차를 하다 걸린 적이 있냐고 물어보지 못한 아쉬움?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뭔가 인정하기 싫을 때 늘 핑곗거리를 생각해 낸다. 마치 공룡뼈를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커다란 척추뼈를 못 본 체 하고 깊숙이 박힌 어금니에 집착하는 꼴이다. 이 지긋지긋한 방어기제가 싫어서라도 이 시점에서 인정한다. 첫눈에 반한 것 같다.










집을 어쩌다 보라색으로 칠하게 됐냐고, 물어보고 싶다











 꺄시스는 그의 말대로 아름다웠다.

 나는 기차역에서 내려 시골길을 한 시간 정도 걸었다. 마을과 가까워질수록 바닷 기운이 생그럽게 풍겼다.

 항구에 하얀 요트가 둥둥 떠 있었고, 그 뒤로 색색깔 건물들이 주르륵 있었다. 옐로우, 핑크, 버건디, 라벤더. 톤이 전체적으로 다운되어 있는 이유는 해풍을 맞아서일까 프랑스 사람들의 취향일까.


 언뜻 보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떠오르지만 프랑스는 프랑스다. 햇살마저도 발랄하지 않은 곳. 어느 화가의 눈물을 모은 듯한 바다색이 다채로운 건물 색과 어울렸다.

 메인 광장 부근에는 반질반질하고 흰 돌바닥이 깔려 있었다. 그 패턴에서도 예술을 볼 수 있었다. 가로수 나무 사이로 얼룩덜룩하게 스며든 햇살 모양이 좋았다. 돌바닥이 깨끗해서 그 모양이 잘 보였다.







 작은 분수에 젊은 부부와 아이가 앉아 젤라토를 먹고 있었다. 그들이 시시덕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야외 좌석이 있는 카페에는 낮부터 맥주를 즐기는 중년들의 여유를 엿볼 수 있었고, 라벤더 향이 나는 비누가게와 엽서나 마그넷 따위를 내놓은 가판대가 여행객을 반겨주었다.


 그곳을 지나가자 해변이 나왔다. 마르세유의 해변과는 딴판이다. 알록달록 수영복을 입고 썬텐을 즐기는 프랑스인들로 가득해 활기가 느껴졌다. 그들은 비치 타월을 깔고 누워 하루종일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잤다.

 나도 그들을 따라 해변에 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라비올리, 그린올리브, 베이컨칩, 양상추, 크루통에 올리브오일과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뿌린 샐러드. 한통을 싹 비웠다. 착즙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살라미와 함께 바게트 빵을 몇 입 뜯어먹은 뒤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길이 멀다.









구름은 시시때때로 변하며 비를 몰고 다녔다









 나는 트레킹 코스로 향했다. 프랑스의 정취를 완전히 느끼고 싶었기에 드뷔시의 음악과 함께였다.

 내가 잘 모르고 하는 말일 수 있는데, 꺄시스 마을은 백인들만 사는 동네 같았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근사한 별장이 모여있는 부촌이 나왔다. 이야, 이 집에서 나오는 세금이 얼마일까 궁금할 정도로 럭셔리한 주택도 꽤 보였다. 그럴만한 게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푸른 지중해 바다가 보였고, 커다란 협곡에는 요트가 정박해 있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 속 길을 걸었다. 그곳에 찾아온 사람들은 편안한 미소를 띤 채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과 눈짓 인사를 주고받으며 1시간쯤 걸었을 때, 트레킹 코스 끝자락 ‘Sentier du Petit Prince’에 도착했다. 절벽 끝 바위에 앉아 다이어리를 펼쳤다. 지중해 수평선을 보며 시 한 편을 쓸 생각이었다.


 우리는 꺄씨스로 가는 기차역에서 만났다.


 갑자기 튀어나온 문장이다. 그 문장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려 나온 오늘, 잠깐 만난 그의 얼굴이 떠올라 시 한 편을 못 쓰고 있다니. 다이어리를 덮어버리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영겁의 시간 동안 그대로 있었을 바다가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우두커니 훑었다.





 커다란 유람선 한 대가 바다에 획을 그리며 지나갔다. 요트에 탄 사람들이 절벽 위에 있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서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에 골몰해 있던 무렵 드뷔시 음악 플레이리스트의 마지막 곡이 끝났다. 나는 다음 곡을 고르는 대신 그에게 보낼 말을 고르고 골랐다.


[ 저기, 너만 괜찮다면 시간 있을 때 우리 만나서 놀래? 나 이번주까지 마르세유에 있거든. ]


 그에게 디엠을 보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지기 전에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며 놓쳤던 들꽃이나 바위틈에 난 버섯을 들여다보았다. 아씨, 그딴 디엠 보내지 말걸 하면서 돌멩이를 걷어 차기도 했다. 20분쯤 지났을 때,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 헐 너무 좋지! 근데 오늘은 내가 피곤해서 힘들 것 같고 내일 어때? 나 수업 끝나면 저녁에 만나자. ]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계단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설렘은 사랑이 아니라고 정의했다. 지극히 일시적인 감정이며 누구를 만나든 사라지게 마련이라고.

 그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단 하루 주어졌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나는 설레기만 하겠지. 그렇다면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떠오르는 복잡한 생각을 흩트려버리곤 결국 '그래, 즐기자 즐겨.'정도로 마무리 지었다. 어찌 됐든 하루뿐이니까.

 속으로 ‘얘 너무 착각하는 거 아니야? 아서인지 뭔지는 뜨뜻미지근 하구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번 편은 읽지 말아 주시길. 너무 상처잖아.





 약속시간 한 시간 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수업을 마치고 조별과제 때문에 잠시 회의를 하느라 늦을 것 같다며 약속을 1시간 정도 미룰 수 있냐고 물었다. 장문의 디엠이었다. 구구절절.

 영화관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마르세유대학 영화과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를 만나기 전에 알아서 참 다행이었다. 얼굴이 화악 달아올라 혼났다.

 나는 괜찮다며 만날 장소를 정하자고 했다. 그러자 그가 7시까지 ‘Le Petit Nice’라는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낮동안 공원에 있다가 그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피크닉을 끝내고 슬슬 일어날까 싶었던 찰나에 약속이 미뤄져서 애매해졌다.

 일단 그가 만나자고 했던 곳을 구글 맵에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웬 호텔 레스토랑이 뜨는 것 아닌가.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1.7유로 하는 기차값도 아끼려는 짠돌이가 갑자기 이런 호텔 라운지 바에서 만나자고? 그렇게 십시일반 아낀 돈을 한꺼번에 쓰는 편인가?


 나는 캐리어에 있는 내 옷가지를 떠올렸다. 편한 카고 바지나 등산 바지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난 운동화 밖에 없는데? 더치페이하자 하면 어쩌지? 이 정도로 쓸 돈은 없는데… 더치페이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비싼 밥을 얻어먹긴 부담스러웠다. 다른 데 가자고 하면 실망하려나? 데이트를 위해 그가 열심히 알아본 것이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쓸데없는 추측을 멈추기 위해 그에게 호텔 라운지 바에서 만나는 게 확실하냐 물었다.


[ 미안! ‘ Au petit Nice ‘ 였어! Wtf 이름이 똑같은 바가 두 개나 있다니. 네가 다시 물어보길 잘했다. ]

[ 그러게,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었어 ㅋㅋㅋ ]


가식적인 나 자신에게 정이 떨어졌다. 은근히 기대도 했으면서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극혐.











몇 날 며칠 찾아봤지만 서울은 없었다 나쁜 프랑스 호텔












 약속 시간 30분 전, 허리라인이 드러나는 가디건으로 갈아입었다. 없는 살림에 고르고 고른 옷이다. 이럴 땐 서울에 있는 내 옷장을 소환하고 싶다.

 준비를 마치고 마르세유 다운타운에 위치한 ‘Au petit Nice’로 향했다. 다운타운은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걷다 보니 건물 벽에 벽화들이 많이 보였다. 영국의 브리스톨이나 독일의 베를린이 떠오르는 분위기였다.


 어떤 벽에는 꽃다발을 든 소녀가 수줍게 볼을 붉히고 있는 그림이 있는 반면, 한 블록 사이에 욕지거리를 퍼부어 둔 문짝이 있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과 예술에 분노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거리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사랑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과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예술을 하는 사람. 포괄적인 예술만이 그 둘을 받아줄 수 있나 보다. 갈수록 촘촘해지는 그림의 향연을 따라 걷다 그가 알려준 바에 도착했다.







삐딱하게 촬영지 아닙니다 마르세유 다운타운 뒷골목입니다









 그곳은 모던한 호텔 라운지 바와 정반대로 힙한 펍이었다.

 낡은 건물 2층, 파란 간판에 Au petit Nice라는 흰 글씨와 파울라너 맥주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건물 앞 꽤 넓은 공간에 버건디색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이 쫙 깔려 있었고, 이른 시간임에도 좌석은 거의 차 있었다. 젊은 프랑스인들이 저마다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프랑스 버전 가성비 포차라고 보면 된다. 한국과 다른 점은 그 누구도 안주를 먹지 않았다.


 나는 구석에 있는 2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추운 것도 아닌데 몸이 떨렸다. 순도 100% 긴장으로 인한 떨림이다. 서울예대 면접 볼 때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결이었다.

 1분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여 내가 그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니겠지. 잠깐 본 것뿐이라 벌써 기억 속 얼굴이 흐려지는 중이다. 다행인 건 아서는 보자마자 나에게 올 것이다. 이 부근에 동양인은 나 밖에 없으니까.





 그는 늦어진 약속 시간보다 5분을 더 넘기고 나서야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흰 티에 연갈색 슬랙스, 나이키 에어 포스 운동화, 작은 백팩. 한 손에는 집에서 급하게 주워왔을 검은색 나이키 후드티. 프랑스 대학생 룩을 여실히 보여주며 등장한 아서는 날 보자마자 뛰어왔다. 그러고는 너무 프랑스인 같이 굴어서 미안하다고 했다(사실이다 프랑스인들은 지각 패시브가 있다). 나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괜찮다며 웃었다.


 나는 그가 숨을 고르는 틈을 타 찬찬히 바라보았다. 낮에 기차역에서 봤던 말간 얼굴 그대로였다.

 얇고 밝은 갈색 머리칼이 바람에 날렸다. 그를 훑고 온 바람이 내게도 불었다. 낮에 향수를 뿌렸는지 옅은 우드향이 풍겼다. 상상만으로 뛰던 심장이 이제는 그를 앞에 두고 뛰었다.











그날의 분위기











 잠시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항상 이런다. 긴장이 되면 나 긴장돼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될 것을, 숨기기 위해 더 큰 에너지를 쓰고 만다. 자꾸 머리카락을 넘기고 아무것도 없는데 먼 산을 바라보고, 볼 안쪽 살을 잘근잘근 씹고.  


 우리는 라거 맥주를 주문했다. 검은 립스틱을 바른 고트족 스타일 서버가 3분도 채 되지 않아 플라스틱 잔에 담긴 맥주를 가져다주었다.

 우리의 대화는 맥주 한 모금과 함께 시작됐다.


 “사실 나도 지금 정신이 없어. 너처럼 여행하는 느낌이야. 어제 말했지? 마르세유 대학 영화과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다고."

 “응, 기억나."


 만약 그가 오늘 늦은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면 이 대목에서 놀랄 뻔했다. 나는 아직도 미리 알게 된 걸 천운이라 생각한다.


 “오늘 한국영화에 대해 배웠다고 했지?"

 “맞아! 그러고 널 만나니까 신기하다."

 “그러게. 나도 영화 좋아해. 사실 어릴 때 배우가 꿈이었거든."

 “정말? 와...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제일 재밌게 본 영화가 뭐야?"


 기생충, 오징어게임, 아가씨, 올드보이. 그는 내가 대는 유명한 영화와 드라마를 전부 재밌게 봤다고 대답했다. 특히 ‘아가씨’ 얘기를 하며 우리는 열을 올렸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신선한 전개에 놀라 3번 이상 본 영화라며.

 그는 내게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한국인과 대화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것은 기억나는 대로 추린 아서의 질문목록이다.


 -한국 문화와 프랑스 문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인 시선으로 프랑스를 봤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

 -한국 정치는 어떤 편인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 물어봐도 되나? (이 질문, 듣자마자 말문이 막혔다)

 -지금 한국 대통령이 나랏일을 잘하고 있는가?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이렇게 말하진 않았다 농담이다)



 그 모든 질문들에 대답하다 보니 그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를 짐작하게 됐다.  

 한국인 인터뷰를 하는 게 그의 과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감독이 되려면 많은 문화권 사람을 만나보는 게 좋겠지. 그의 질문들은 흥미로웠지만, 그 질문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기대를 차츰 내려놓게 되었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이 자리에 나왔구나.

 그리고 확실한 포인트.


 “이제 네 차례야."


 두 번째 잔을 가져온 서버에게 그가 한 말이었다.

 첫 잔을 본인이 자연스럽게 계산해서 데이트라 생각했던 나의 착각을 단단히 깨 주는 말이었다.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며 알게 된 사실인데, 유럽에서는(다른 나라도 그럴지 모르겠다) 대체로 첫 데이트는 남자가 내는 게 국룰이라고 한다.


 나는 빛의 속도로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하는 동안 ‘내가 내는 줄 알고 있었음’이라는 얼굴을 유지했다. 한 잔에 3유로. 아마 마르세유에서, 아니 이 프랑스에서 제일 싼 곳이겠지. 어디에서도 이 가격을 본 적이 없다. 프랑스라서 오해했는데, 한국으로 치면 지금 우리는 ‘역전 할머니 맥주’라던가 ‘비어킹’에 있다. 누가 첫 데이트에 이런 곳을 고르겠나?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편하게.










이 부근에 아서의 미들 네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거리가 있다














 “너는 어쩌다 여행을 하게 된 거야?"

 “사실 지금은 글을 쓰고 있어. 글의 좋은 소재나 영감을 찾아서 여행 중이고."

 “와, 그거 멋지다."

 “그리고… 알고 싶은 것도 있거든. 나는 전부터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늘 생각해 왔어. 여행을 혼자 하다 보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 마음속에 있는 것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내 말을 듣는 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본인이 상상한 가장 완벽한 대답을 들은 것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날 보는 눈을 반짝였다.


 “너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네? 나도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지금 마르세유에 있는 거야. 파리에서 취직하기 좋은 과에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영화가 하고 싶어서 다 포기하고 내 마음을 따라 선택했거든."


 나는 편해져서 나온 대답이었다. 그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런 속마음을 편하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대답을 기점으로 늘어졌던 대화가 점차 팽팽해졌다.


 “우리 게임 하나 할래?"

 “무슨 게임?"

 “저기 네 뒤 오른쪽에 있는 테이블 보여? 남자 3명."


 그가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자 프랑스 남자 셋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 사람들의 직업을 예상해 보는 거야."

 “뭐? 어떻게?"


 그는 지목한 사람들은 천천히 훑어봤다.


 “벙거지모자, 흰 티, 금목걸이, 카고 반바지, 발목까지 올라오는 흰 양말, 조던. 저 사람은 분명 음악 하는 사람일걸. 래퍼라던가.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안경, 청바지, 검은 티와 검은 카디건… 라코스테네? 아마 금융업이야. 그 옆에 장발은.."

 “예술가?"

 “아마도. 다운타운에 있는 벽화 하나쯤은 저 사람이 그렸을걸."









 대화가 무르익었다. 그가 유추하는 사람들의 직업과 재산은 신기하게도 그럴듯했다. 직접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그는 20분 만에 주변 모든 사람들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해석해 냈다. 마치 피노키오를 만들어낸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하나하나 세세하게 캐릭터를 조각해 냈다.

 저런 눈으로 영화를 보는구나.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이 순간이 영화처럼 상영되고 있는 듯했고 나는 Au petit Nice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졌다. 한국인으로서 과제도우미까지 자처했는데,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거 알아? 동양과 서양에서 색깔의 의미가 다르다는 거."

 “정말?"


 그는 흥미가 생겼는지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


 “예를 들어 노란색은 한국에서 기다린다는 의미야. 우리는 먼저 간 사람들을 위해 노란 리본을 달아두고 기다려."

 “그래? 내가 생각하기에 노란색은… 기쁨? 즐거움? 행복한 느낌인데."

 “초록색은? 나는 자연이라 생각해. 초록색을 보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어."

 “우린 독약. 포이즌."

 “보라색은?"

 “보라색이라… 좀 애매한데. 멜랑꼴리?"

 “멜랑꼴리? 나 그 단어 알아!"


 그는 내가 멜랑꼴리라고 말할 때마다 웃었다. 내 한국식 발음이 웃긴 듯했다. 한바탕 웃은 그가 몸을 내 쪽으로 기울여 앉더니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야 이거 재밌다. 또 무슨 색이 있지? 아, 빨간색은?"

 “열정. 너는?"

 “사랑."

 “나 그거 알아. 프랑스어로 사랑해. 쥬뗌므. 맞지?"

 “맞아, 한국어로는 뭐라그래?"

 “사랑해"

 “사라… 해? 싸랑해. 사아. 랑. 해."


 그가 서툰 발음으로 내 말을 따라 했다. 이로써 그가 처음으로 말한 한국어는 ‘사랑해’가 되었다. 나도 그가 알려주는 발음을 따라 쥬뗌므, 쥬뗌므 하고 말했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고 한 두 번 더 말했다. 참 얕은 술수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3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말했다. 플라스틱 컵에 담긴 라거 맥주 6잔과 함께.











엑상 프로방스에 있는 옛 영화관












 취기가 올랐을 무렵, 우린 다운타운을 구경했다.

 좁은 골목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아치형 네온사인 조명이 걸려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가로등 사이로 빛나는 색색깔 네온사인이 내 시선을 끌었다.

 조명 가운데에는 프랑스 단어가 있었다. 나는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뜻을 물어봤고 그가 말해주었다. 인생, 행복, 사랑, 소원. 낭만적인 단어들 뿐이었다. 마르세유 골목에서 워낙 범죄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걸어두었다고, 그가 설명했다.




 밤이 되자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를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따라갔다. 취기가 올라 그런지 사람들에게 치이느라 자꾸 그와 멀어졌다.

 그의 손을 잡고 싶었다.

 절대 못한다고 못 박는 나와 오늘 이 저녁이 지나면 다신 볼 일 없는데 뭐 어떠냐는 내가 싸웠다. 한참 그렇게 걷다가 결국 중립을 택했다. 팔짱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기회를 엿보다 그에게 살짝 팔짱을 꼈다. 그가 어색하게 내 손을 받았다. 나는 부쩍 취한 티를 내며 두 블록을 걸었다. 그러나 이내 계단이 나와 팔짱이 풀어졌다. 내 손은 갈길을 잃었고 그는 다운타운을 보여주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Rio Pizza라고 불리는 길거리 피자집에 갔다. 그가 주문한 베이컨 치즈 포테이토 피자가 구워지는 동안 우리는 가게 앞 거리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았다. 그는 내가 몇 개 알고 있는 프랑스 단어나 그가 말하는 프랑스어를 따라 할 때마다 크게 웃었다.

 그는 잘 웃는 편이었는데, 웃음소리가 조용해서 얼굴을 보지 않으면 어느 정도로 웃긴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갓 구운 피자를 들고 먹을 곳을 찾아 걸었다. 우리가 갔던 바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11시가 다 된 시간이라 양아치 무리가 근처에서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지만, 아서와 함께 있으니 무섭지 않았다(아서가 그들을 이길 만큼 덩치가 크다는 뜻은 아니다 오해 말아주시길).

 우리는 저녁을 맥주로 때워서 아주 배고픈 상태였다. 그래서 개중 가장 깨끗한 벤치에 앉자마자 한동안 말없이 피자에 열중했다. 나는 느끼해서 핫소스를 들이부었고 그는 3방울 찔끔 뿌려 먹고는 맵다며 펄쩍 뛰었다.





 시간이 흐르고 두 조각 남은 피자 박스를 덮었을 때, 근처에서 풍기던 대마초 냄새도 사라졌다. 나는 별 하나 없는 하늘을 자꾸 올려다봤고, 그는 모기에 물렸는지 발목을 벅벅 긁었다. 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지금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기에 물려 가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내 옆에 앉아 있다.


 이런 간단한 사실만으로 지독한 외로움이 가라앉는데, 나는 왜 지난 5일 동안 사람들에게서 달아났을까. 왜 이렇게 미련할까.

 나는 오기로 외로움을 견뎠다. 혼자서 잘 이겨낸 순간들이 나한테는 화약으로 가득 찬 총알 같았다. 그 총알은 내 속 깊은 곳에 박혀서 기내반입이 가능하다. 한국으로 가져가 외로울 때 이 총알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나는 프랑스에서도 혼자 잘 견뎠어’라는 소리와 함께 외로움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 총알은 값이 비싸서 쉽게 얻을 수 없다. 그래도 이곳은 여행길이니 무너질 것 같으면 아름다운 풍경이나 와인 한잔에 기댔다. 나름 잘 해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마르세유라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 어디 하나 기댈 구석이 없었다. 척박한 이곳에서 본 유일한 색은 해변 거위의 노란 부리와 아서의 초록빛 눈동자였다. 결국 사람이 살기 위해선 사랑이 필요해,라는 어느 철학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 헤어질 때가 오고 있었다. 나는 오늘의 그를 기억하고 싶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카메라를 들이밀 용기가 없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냈다.


 “너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데, 너에 대한 글을 써도 될까?"

 “그럼. 당연하지."


 나는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우리 사이에 두었던 피자 박스를 치우고 그에게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그의 특징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초록빛이 도는 헤이즐넛 색 눈동자, 굵고 진한 일자 눈썹, 긴 속눈썹과 짙은 쌍꺼풀 큰 눈, 애교 살이 깊어 웃을 때 눈이 반달 모양이 된다. 짧은 턱수염이 있다. 얼굴이 말갛고 하얀 편이라 멀리서 보면 수염이 옅다. 입꼬리가 늘 올라가 있고 입술 색이 붉다. 웃을 때 하프 물범이 떠오른다.]


 “머리 만져봐도 돼?"

 “응."


 내가 그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를 만지자 그가 수줍게 웃었다. 모질이 아주 얇고 빽빽한 게 민들레 홀씨 같았다. 안돼. 더 만지면. 나는 얼른 메모장에 뭔갈 적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맞춤법도 틀리고 뭘 적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적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가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보다가 얼굴에 있는 점을 세어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관자놀이부터 턱까지 이어진 크고 작은 점은 총 6개. 별자리는 하늘이 아니라 그의 얼굴에 있었다.


 “프랑스어로 아무 말이나 해볼래?"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뭔갈 말했다. 한 마디면 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꽤 오랫동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발음이 센 프랑스어 단어들도 그의 목소리를 타고 닳아 부드러워졌다.

 한 두 문장을 더 쓰고, 더 이상 생각나는 단어가 없어 글을 멈췄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어......"

 


 그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네가 예술적인 눈으로 이렇게 관찰하며 글 쓰는 게 흥미로웠고, 나도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거라고 얘기했어. 그리고… 네가 귀엽다고 했어."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웃었다. 그 어색한 웃음 뒤에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덜컥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단어였다. 마르세유의 찬바람도, 멀리서 들리는 취객의 고성도, 더러운 벤치의 끈적함도, 잊을만하면 드러난 곳을 노리는 모기도, 전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설렘과 사랑의 경계선 근처를 위태롭게 서성였다. 분명 수채화처럼 묽은 설렘만 느끼기로 했는데, 그와 있던 모든 순간에 독한 향의 유화 물감이 묻어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때, 그가 내 볼을 쓰다듬었다.

 아아, 여기까지만 써야지. 뭔갈 기대한 여러분에게 유감이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빠흐동(미안하다는 뜻)












마르세유를 떠나기 직전 그 피자집을 보러 갔다












 그와 손을 잡고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내가 못 물어본 게 있었는데, 파란색의 의미는 뭐라고 생각해? 난 바다가 떠올라."

 “파란색? 믿음."


 파란색은 믿음의 색이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걸었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아직도 물어볼 색이 많은데, 그만 도착해 버렸다. 호스텔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모두 자고 있는 늦은 시간이라 다시 다운타운으로 돌아갈 아서가 걱정되었다.


 “돌아가는 길, 괜찮겠어? 다운타운은 위험하다며.”

 “에이, 괜찮아. 나는 돈 없는 프랑스 학생이라 아무도 안 노려.”


 우리는 대문 앞에서 어물쩍 서로를 바라보았다. 공기 중에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퍼져있어 우리 사이에 흐르던 무언가를 잡아먹었다. 순식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지내, 아서. 오늘 너를 만나서 참 좋았어. 언젠가 네 영화가 나오면 꼭 말해줘. 알겠지?”

 “예인, 너야말로 책이 나오면 알려줘야 해. 내 얘기가 나오면 더더욱.”

 “하하, 한국어로 나올 텐데 읽을 수 있으려나.”

 “그때까지 한국어를 마스터해야겠는 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어느새 호스텔 대문 앞 계단에 앉아 못다 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다. 아쉬움이 농밀한데, 이젠 정말 작별해야 한다.


 나는 멀어지는 아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코너를 기점으로 그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끼익, 하며 낡은 대문이 열리고 호스텔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꿈같았던 차원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와 재회하는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영화가 개봉한다 해도 내 책이 출판된다 해도 그런 순간에 서로를 떠올리기엔 무위한 추억으로 끝났다.

 하지만, 만약 내가 믿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면 파란색 볼펜으로 쓸 것이다. 그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파란색은 믿음의 색이니까.















믿음의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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