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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인 Sep 12. 2024

죽었던 남자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나는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벌써 몇 번째 플릭스 버스를 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이동이 잦은 여행 중이다. 돈은 없고 시간이 많은 배낭여행객이라 무조건 버스를 탔다.


 잠시 버스에 관해 얘기하자면 장단점의 균형이 완벽하다. 먼저 장점부터. 플릭스 버스 앱으로 3초 만에 티켓을 사면 거의 모든 유럽 도시를 오고 갈 수 있다. 먼 공항까지 갈 필요 없이 도시 근처에 있는 정류장에서 타면 되니까 접근성도 좋다.


 가장 좋은 점은 역시 '싸다.' 3달 동안 12개국을 넘나들며 수많은 도시를 방문하는데 대략 60~70만 원이면 된다(비수기 가격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싼 티켓을 고른 결과). 내가 여행했던 시기에 비행기 삯이 말도 안 되게 치솟았다. 한 번 타면 편도 20~40만 원은 나오니 불가피한 버스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단점을 얘기해 보자. 일단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비행기로 1시간에서 2시간 거리를 이동하려면 10시간에서 15시간까지도 버스를 타야 한다. 하루를 통으로 버스 안에 갇혀 있다 보면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탑차에 실려 운송되는 택배 박스가 된 건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다. 10시간 동안 좁디좁은 좌석에 앉아 있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다. 기차는 낭만이라도 있다. 기차가 내는 일정한 소음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지만 낡은 버스의 불규칙한 엔진소리는 두통을 일으킨다.


 화장실도 문제다. 장기간 이동하는 버스엔 대부분 화장실이 있는데, 냄새가 너무나도 끔찍하고 더러워서 차라리 참는 것을 택하게 된다. 도저히 못 참을 때 가보면 늘 변기 커버가 젖어 있다(분명 물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망설이게 만든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조준하는 게 당연히 어렵겠지만, 때때로 바지 속에 스프링 쿨러를 장착했나 싶을 정도로 흩뿌려진 오줌을 볼 수 있다. 운이 좋지 않으면 그런 화장실마저 없을 때가 있으니 기꺼이 바지를 내리는 수밖에.


 아무튼 크로아티아에서도 버스를 탔다. 자그레브에서 스플리트까지 6시간, 18유로.

 뒷자리에 앉은 크로아티아인 남자 두 명이 2시간 동안 쉼 없이 떠들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떠드는 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사람이 내는 소음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어 번 매몰찬 눈길을 주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오른쪽에 앉은 남자가 너무 무섭게 생겼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그는 마른 체형에 키가 크고 머리를 밀어서 뒷골목에서 대마초를 팔아먹고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헤드셋을 끼고 밴드 음악을 골라 볼륨을 높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그마저도 뚫고 들어왔지만.










다 잘라 놓고 보면 흔한 것들인데 모여 있으니 스플리트스럽다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의 남부 해안 도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구시가지와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이 도시에서 영감을 받아 {붉은 돼지}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스플리트는 로마 제국 시대에 설립되어 다양한 왕국과 제국의 지배를 받아 왔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한 뒤에야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로 불릴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


 내가 스플리트에 온 이유는 붉은 돼지나 긴 역사 때문이 아니다. 2년 전 알게 된 슬로베니아인 친구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도시로 스플리트를 뽑았기 때문에 왔다. 내 얼굴에 침을 튀겨가며 아름답다고 강조했기에 안 갈 수가 없었다.


 기대로 가득 찬 마음과 달리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삐딱한 자세로 6시간 동안 짓눌린 허리가 아우성치고 먹은 게 없어 배가 등가죽에 붙었다. 딱히 산 것도 없는데 갈수록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도 한몫했다. 밤의 항구는 멈춰있었고 길거리 장사꾼들이 좌판을 정리하고 있었다. 밤공기에 은은하게 퍼진 바다내음만이 내륙으로부터 멀리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올드타운 중심부에 있는 숙소까지 걸어갔다.

 어수선한 항구를 지나 올드타운에 들어서 순간 슬로베니아 친구가 왜 그렇게 침을 튀겼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삽시간에 긴 세월을 뛰어넘었다. 중세 시대를 그대로 보존한 듯한 입구를 지나자 작은 광장이 나왔다. 그 공간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재즈 공연을 보고 있었다. 광장 레스토랑 직원이 바삐 움직이며 낭만을 도울 와인과 위스키를 나르고 있었고, 흥에 겨운 사람들이 일어나 춤을 췄다. 나는 그 광경에 심취해 배낭이 무거운 것도 잊고 한참 서 있었다. 티리리릭 하고 영화 필름이 감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느새 나는 스플리트라는 영화 속에 있었다.


 영겁의 세월이 만든 분위기는 숨을 멎게 만든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아 반질반질해진 돌바닥도, 수천 년의 바닷바람이 스쳐 베인 건물의 짠기도, 무너지면 무너진 채로 부서지면 부서진 채로 둔 돌기둥도, 전부 내 마음속을 열고 들어왔다. 잦은 전쟁의 역사를 가진 크로아티아가 이런 곳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하필 밤에 도착한 것마저 운명처럼 느껴졌다.









스플리트의 첫인상







 분위기에 취해 호스텔에 도착했다. 조금은 비틀거리며 걸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호스텔은 하룻밤에 15유로 남짓이라 돈 없는 배낭 여행객들로 득실거리는 곳이었다(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계단을 올라가 대문을 두드리자, 웃통을 벗은 남자가 불쑥 나왔다. 호스텔 생활을 하다 보면 외국 남자의 가슴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첫 만남에 반나체는 좀 그런데.


“미안 미안, 방금 샤워를 하려던 참이었어.”

“안녕.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는 185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덩치에 스크래치가 잔뜩 난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알 코팅이 심하게 벗겨져서 안경을 쓰면 오히려 더 안 보일 것 같았다. 그는 그런 사소한 것에 개의치 않은 듯 코를 훌쩍이며 안경을 추켜올렸다.

 그 밖에도 그에겐 정돈되지 않은 구석이 많았다. 끈이 없어진 조거팬츠, 긴 발톱, 좀 다듬으면 좋을 텐데 싶은 머리길이 등. 장기 여행자들은 그런 분위기를 풍길 수밖에 없다. 오래 떠돌다 보면 그런 법이다.


“리셉션은 여기야.”


 남자는 친절하고 밝은 목소리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사실상 안내랄 것도 없었다. 아주 좁은 현관 바로 옆 더 좁은 틈에 책상을 겨우 욱여넣은 공간이 리셉션이었다.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직원이 예약 번호와 여권을 확인하고 내가 묵을 방을 보여주었다. 

 그 호스텔에는 얼룩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직원을 졸졸 쫓아다녔다. 고양이를 따라가는지 직원을 따라가는지 모를 모습으로 좁은 복도를 지나 방으로 갔다.


 방 안은 습하고 답답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인간을 수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2층 침대를 마구잡이로 들여놓은 듯했다. 그 거구의 반나체 남자도 방 한구석 차지한 채 서 있었기에 정말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여기에서 하루라도 잘 수 있을까? 자다가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죽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나른해 보이는 직원은 나 몰라라 리셉션으로 돌아가고 어찌어찌 가방을 캐비닛에 넣고 있던 그때, 반나체 남자가 어느새 옷가지를 주워 입고 말을 걸었다.


“한국인?”

“맞아, 어떻게 알았어?”

“딱 봐도 한국인처럼 생겼어.”


 그가 찡긋 웃으며 대답했다. 말하는 동안 자신감 넘치고 자유분방한 자기 모습에 약간은 취해 있는 듯한 제스처를 곁들였다. 그게 정확히 어떤 제스처냐고 물으면 표현할 방법이 없지만 실제로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거다.

 1층 침대에 고개를 구기고 앉아 있던 할아버지와 방금 이를 닦고 와 세면도구를 정리하고 있던 젊은 남자도 뉴페이스인 나에게 반응했다. 이런 관심은 오랜만이다. 최근 묵었던 호스텔은 눈짓으로 인사할 뿐 어떠한 교류도 없는 정적인 분위기였다. 같은 호스텔이라도 그 시기에 묵고 있는 사람들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편이다. 아마 저 반나체 남자(지금은 옷을 입었지만) 덕에 생긴 교류가 아닐까 싶다.


 뜻밖의 관심이 반가웠지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나는 빠르게 샤워를 한 뒤 간단한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크로아티아 음식은 대체로 맛있다.

 스플리트에 오기 전 자그레브에서 며칠 묵는 동안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블로그에서 맛집을 검색한다던가, 구글맵 리뷰를 보고 가는 편이 아니다(여러분에게 미안하지만 맛집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나는 대게 번화가로 가서 주린 배를 붙잡고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예약은 안 했는데, 자리 있어요?”하고 묻는 편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철저한 성격도 아닐뿐더러 우연히 찾은 레스토랑에서 좋았던 기억이 더 많기 때문이다.


 괜히 검색해서 찾아간 곳에서는 대체로 실망했다.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검색을 잘 못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아무거나 달라는 식으로 먹은 날에는 어찌 됐든 괜찮다는 미소를 띠며 집으로 돌아갔다. 공을 들인 프로젝트에서 실패하는 것과 랜덤 뽑기에서 꽝이 나오는 것은 아주 다르니까. 설령 음식이 별로라도 ‘에이 꽝이네’ 하고 툴툴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이번에도 나는 올드타운을 걷다가 발견한 해산물 레스토랑에 기습적으로 방문했다.

 야외 화단 옆에 배치한 알록달록 철제 의자가 마음에 들어서 그냥 앉아버렸다.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내가 주문을 하고 몇 분 뒤 몇몇 외국인이 자리를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해산물 파스타가 나왔다. 나는 시원한 라거 맥주와 함께 파스타를 먹었다.


 이럴 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자작한 크림소스에 연어살과 새우, 홍합이 듬뿍 들어가 맛이 깊고 진했다. 납작하고 굵은 면도 한몫했다. 면의 찰기가 예술이었다. 간도 딱 맞고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나는 열차 꼬리 칸에서 일등석으로 넘어온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파스타를 해치웠다. 먹는 중에 흰 셔츠를 입은 잘생긴 셰프가 나와 음식이 입에 맞냐고 물었다. 나는 엄지를 척 올려 보이며 너무 맛있다고 대답했다. 25유로를 냈지만 저어어어언혀 아깝지 않았다.





또 먹고 싶다








 훈훈하게 채운 배, 적당히 올라온 취기, 올드타운의 진득한 분위기까지 섞여 완벽한 기분으로 밤거리를 걸었다.

 이대로 그 이산화탄소 방으로 돌아가기엔 조금 아쉬웠다. 다른 바에 가서 위스키를 한잔할까 싶어 떠돌던 그때, 호스텔에서 만났던 반나체 남자와 길에서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말을 걸었다.


 “안녕! 너만 괜찮으면 술 한잔 하러 갈래?”


 순간 망설였다. 검은 의도는 없어 보이지만 잠깐 스친 남자와 둘이 술을 마셔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술이 당겼다. 그리고 혼자 마시기엔 외로웠다.


“둘이?”

“호스텔 사람들도 올 걸? 일단 가자.”


 얼버무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얼떨결에 그를 따라갔다. 그는 재고 따지고 망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키면 그냥 하는 식의 사람. 

 그는 멀끔한 흰 티를 입고 나왔는데, 정리되지 않은 턱수염이 그 옷을 무력화시켰다. 이해할 수 없다. 저 수염 정리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흥미와 호기심은 이런 포인트에서 생긴다. ‘나랑 너무 다른데?’ 싶은 구석.




 그를 따라 올드타운 광장을 지났다. 걷는 동안 여행가들이 처음 만났을 때 하는 전형적인 대화를 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어쩌다 스플리트에 왔냐, 며칠 동안 머물 예정이냐 등. 그는 크로아티아 사람이다. 스플리트에서 배로 한 시간 떨어진 흐바르섬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근데 왜 여기 호스텔에 있는 거야?”

“말하자면 복잡한데, 아직 받아야 할 돈이 들어오지 않아서 여기에 있어. 흐바르섬으로 가는 뱃삯만 20유로인데 여기는 하루에 15유로면 잘 수 있잖아.”


 그의 말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갔다. 세상 사람들은 각자 너무도 복잡한 사연을 갖고 있다. 그의 사연을 더 들어보기 전 길거리 술집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끊겼다.







 올드타운 마지막 골목 구석에 관광지나 휴게소에서 볼 법한 테이크아웃 술집이 있었다. 푸드트럭처럼 뚫린 직사각형 프레임 안으로 바텐더가 보이고 그 앞에 스탠딩 바가 있어 몇몇 손님들이 서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선반에는 테킬라, 위스키, 칵테일 제조용 리퀴드, 각종 브랜드 맥주까지 없는 게 없었다.


 그는 거기서 일하는 여자와 아주 반갑게 인사했다. 여자는 보통 반가운 게 아닌지 그를 보자마자 쪽문으로 달려 나와 온몸을 꽉 끌어안았다. 그들의 포옹은 길고 뜨거웠다. 나는 왠지 불청객이 된 것 같아 뒷걸음쳤다. 내가 어색하게 쭈뼛거리는 동안 그들은 크로아티아어로 대화했다. 그녀는 붉은 곱슬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진한 화장을 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나오는 클레멘타인이 히피족과 결혼해 늙는다면 저런 모습일 것 같다.  


“맥주 두 병만 줘.”


 그가 뒤늦게 나를 의식했는지 갑자기 영어로 주문했다. 둘은 오래 알고 지낸 듯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로컬 맥주를 골라 병뚜껑을 시원하게 땄다. 내가 눈치껏 지갑을 꺼내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집어넣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여자에게 계산은 나중에 하겠다며 그냥 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는 웃으며 손을 휘휘 저어 보였고 그녀는 멀어지는 그에게 뭐라 뭐라 소리쳤다. 크로아티아어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대충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저 새끼 또 저러네! 안 갚으면 죽을 줄 알아!”














스플리트 항구 거리










 그는 마치 가이드라도 된 양 나를 공원으로 데려갔다. 그곳에 가면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이 있는데, 거기에서 소원을 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올드타운 외곽 성벽 길을 걸으며 맥주를 홀짝였다. 그러다 담배를 말 요량으로 잠시 벤치에 앉았다.


 “사실 난 죽었었어. 네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담배를 말던 그가 이상한 말을 했다. 맥락도 뜬금도 없는 소리를 대뜸 하길래 몇 번이고 되물었다. 죽었었다고? 죽었다 살아난 거야? 발음이 어려워 잘 쓰지 않는 ‘Literally(*말 그대로)’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물었건만 그는 아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몇 번이나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24살이 되던 해에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어. 이상한 일도 아니었지. 나는 부모님의 강요 때문에 하루에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을 했었거든. 병원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내 심장이 멈췄어. 6시간 동안.”


 그는 점심으로 먹었던 파스타가 맛있었다고 말하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얘기를 수없이 해왔던 게 분명했다. 믿으려면 믿고 말려면 말라는 태도가 엿보였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의사 말로는 뇌에 무슨 문제가 생겼었대. 물론 내가 죽었던 시간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절대 못 잊어. 절·대·로 못 잊어. 내 심장이 멈췄던 6시간을 1분 1초 단위로 전부 기억하거든.”


 솔직히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완강하게 무시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던 어딘가 껄렁한 구석이 사라지고 단호하고 진지한 눈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뱉은 말이 한 마디 한 마디 늘어갈 때마다 이 만남의 흐름이 예상치 못한 길로 나아갔다.   


 “나는 이상한 상태로 병실 안을 떠돌았어. 쉽게 설명하면 영혼의 상태였겠지? 죽어있는 내 모습을 내려다봤고 울부짖는 가족들 소리도 들렸어. 나는 조그맣고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가 폭발하며 짙은 안개가 됐어. 내가 원하는 형태로 변신할 수 있었지만, 현실 세계에 내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전혀 없었어.”

 “고통은?”

 “엄청난 고통도 느껴졌지. 하지만 깃털보다 가벼운 상태였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흙바닥을 응시했다. 그러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진한 대마초 냄새가 났다. 가로등 불은 주황빛이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옅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했다. 텅 빈 눈동자를 하고 한동안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그 표정에서 아득함을 느꼈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 뒤 말했다.


 “믿을게. 왠지 네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이것도 믿을 수 있을까? 그때 죽었다가 살아난 이후로 생긴 능력이 하나 있어.”

 “뭔데?”

 “나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어.”


 등골이 오싹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뻥긋거리자 그가 웃으며 안심하라고 했다.


 “귀신같은 거 말고. 이런 거. 그 사람의 아우라가 무슨 색이고 어떤 형태를 띠는지. 그리고 가끔씩 감정도 볼 수 있어.”


 믿거나 말거나 그는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맑고 깨끗한 색과 우아한 형태의 아우라를 갖고 있고, 타락한 사람은 검고 짙은 색과 불규칙한 형태의 아우라를 갖고 있다고. 그리고 감정은 소리의 파형처럼 보인다고 했다. 우울한 사람은 느린 파도 형태, 화난 사람은 빠르고 격한 가시가 그 사람 주위에 빼곡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듣는 동안 만약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당장 굿판을 벌였을 텐데- 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거 엄청난 능력인데?”

 “하지만, 나는 그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왜냐면 괴로울 때가 많거든. 예를 들어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면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어. 세상엔 몰라도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


 나는 왠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이만 소원을 빌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골목에 달아 둔 국기를 좋아한다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은 크로아티아어로 예배를 볼 수 있게 투쟁한 주교의 동상이다. 동상의 크기가 무려 4.5m에 다다를 정도로 거대해 올드타운 성벽 외부에 자리 잡고 있다.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주교의 동상은 역동적이었다. 기묘할 정도로 커서 밑에서 올려다봤을 때 마냥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었다. 특이한 점은 동상의 엄지발가락 부분이 반짝거렸다. 사람들이 하도 만진 탓에 칠이 벗겨져 금빛 구리가 드러난 것이다.


“이 발가락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돼.”


 나는 들고 있던 맥주병을 내려놓고 동상 앞에 가까이 다가갔다. 무교지만 여행 중엔 늘 신을 찾는다. 간사하고 의리 없을지언정 그렇게라도 해야 이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내 기도는 늘 이름 모를 누군가를 향한다.

 ‘저기, 님….’하고 조심스레 물꼬를 튼다. 님이라고 불리는 모든 신에게 향하는 편지니까 도착하자마자 스팸 메일함에 들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잃지 않게 해 주시고, 이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차가웠던 동상이 내 손의 온기로 따듯해질 때쯤 눈을 떴다.


 “너 정말 간절하게 빌었구나. 진심으로.”

 “어? 어떻게 알았어?”

 “네 아우라가 보였어. 처음에는… 주황색이었다가 점점 노란빛으로 변했어.”


 나는 그의 말에 흥분했다. 노란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기쁨과 행복, 창의력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세상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노란색이야!”

“그래? 신기하네. 노란색 아우라는 보기 힘들어. 네 소원이 이루어지려나 보다.”


 그의 말을 믿고 싶어졌다. 아니, 어쩌면 이 대목에서부터 그의 말을 믿기로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동상 근처에 자리 잡고 남은 맥주를 마셨다. 조금은 알딸딸해졌다.

 맥주를 마시던 그의 팔 안쪽에 특이한 타투가 보였다. 갈색 털에 묻혀 선명하진 않았지만, 타투이스트 디자인 북에 있는 정형화된 느낌이 아니었다.


 손목 대동맥 부분에 클래식한 포켓워치로 시작된 타투는 작은 별들로 이어져 나무가 됐다. 섬세한 가지가 팔 중간 부분까지 뻗어 있었다. 그 끝엔 태양계 행성이 떠다니는 우주가 있었고, 철새 3마리가 그 주위를 줄지어 날아다녔다. 내가 타투에 관해 묻자 직접 그린 그림이라며 뜻에 대해 말했다.


 “나는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태어나 가지를 뻗어 나갔어. 시계와 나무 사이 별은 내가 죽었던 6시간을 의미해. 그래서 별이 6개야. 나는 엉켜있는 가지를 타고 올라가 결국 우주 속에 작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돼. 대충 그런 뜻이야.”

“그럼 이 나무속에 있는 얼굴은 뭐야?”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뭇가지 속에 여자 얼굴이 숨어있었다. 마치 심리테스트 그림처럼 동물이 먼저 보이는지 사람 얼굴이 먼저 보이는지 골라야 할 것 같았다.


“이 여자는…”


 무슨 말을 하든 막힘없던 그가 처음으로 뜸을 들였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아니 사랑하고 있어.”


 그가 멋쩍은 듯 웃었다. 내가 그 여자에 대해 궁금해하자 그는 로맨스 영화 시놉시스를 브리핑하러 온 신인 감독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브라질에서 처음 만났다. 여자는 브라질 사람이고 그는 여행 중이었다(어쩌다 사랑에 빠지게 됐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성격과 특징을 미루어 봤을 때, 분명 첫눈에 반했을 것이다).

 그는 그녀와 함께 남미를 여행하며 한 달 동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여행이 끝난 뒤 그는 다시 크로아티아로 돌아갔고, 여자는 브라질에 남았다. 그렇게 헤어진 듯싶었으나 이상하게도 연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유가 생겼다 하면 나라를 골라 함께 여행했다. 베트남, 스페인, 인도, 캐나다… 그들에게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나라에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쉬운 일이었다. 어려운 건 늘 헤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럼 지금도 연락하고 있어?”

“물론이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엔 인도네시아에서 만날 거야.”


 처음 보는 유형의 사랑이다. 그들은 만났을 때 오직 서로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 그러나 떨어져 있을 땐 누구보다 자유롭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깊은 구석에는 언제나 서로가 있다. 그는 그녀와 함께인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때때로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묻자 흔쾌히 팔을 내줬다









 나는 이 대목에서 밀란 쿤데라가 떠올랐다. 체코의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인간을 정의했는데, 그가 마침 가장 희귀한 유형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밀란 쿤데라가 정의한 인간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익명의 무수한 시선. (대중의 시선을 추구하는 연예인 유형)

 두 번째, 주변 사람들의 시선. (친구나 파티 없이 못 사는 유형)

 세 번째,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유형)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유형. 부재한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 밀란 쿤데라는 이 유형을 몽상가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곁에 없는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상상하며 행동한다. 염두에 두고 있는 그 사람이 마음속에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짓을 한다던가, 자신과 그 사람 사이가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있더라도 운명적인 끈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내 마음속에도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힘든 날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 그를 생각하며 내린 수많은 결정들이 머릿속을 스쳤다(자세한 내용은 이제 그만, 훗날 내 미래 남편이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그와 내가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니 긴밀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내 속에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 있는데, 나는 왠지 오래 못 살 것 같아. 그냥 내 느낌이 그래. 한 50살이 되기 전에 죽을 거야.”


 내 말에 그가 크게 공감했다. 인생은 너무도 짧다면서.


 “내가 다시 살아났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거였어.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어쩌면 그 공포심이 내 원동력이 되어버린 거지.”


 미친 듯이 일만 하던 그의 삶은 그 죽음을 기점으로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엄마 말에 그는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미래가 도대체 어디 있냐고. 그는 뇌에 있는 100억 개의 뉴런 중 하나가 언제든 다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떠돌기 시작했다.

 영국, 미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일본…

 그는 50개국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경험을 통해 좋은 조언을 할 줄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부정적 에너지를 물리칠 수 있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너 정말 멋있다.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 네 나이쯤 되면 너처럼 될 수 있을까?”


내 말에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나는 혼자야. 나처럼 되지 마. 난 누군가를 만나 정착할 수 없어. 좋은 점들을 갖고 있어도 소용없어. 사람들은 언제나 떠나가거든. 내 좋은 점만 갖고서.”













바닥이 정말 반질거리는 재질이라 자칫하면 미끄러진다









 우리는 거리에 아무도 없는 늦은 밤이 돼서야 호스텔로 돌아갔다.

 사람이 사라진 올드타운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종말을 맞아 지구상에 남겨진 모든 인간이 죽고 흔적만 남은 모습이었다.

 그와 나는 짧은 시간 너무나 많은 대화를 나눠서인지 아무런 말 없이 걸었다. 호스텔은 조용했다. 그 많던 사람들은 전부 이불 속에 들어가 숨죽인 채 밤을 보내고 있었다. 코 고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기숙사 방에서 몰래 빠져나온 학생들처럼 부엌에 갔다.


 그는 공용 냉장고에서 언제 사놨는지 모를 맥주 한 병을 꺼냈다. 이 맥주도 외상으로 가져왔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찬장에 있던 머그잔을 꺼내 맥주를 조금 나눠줬다. 나는 커피를 마시듯 홀짝거렸고, 그는 병째 들고 마셨다.


 부엌문 옆에 금연 구역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지만, 그는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부엌 안이 매캐한 말보루 골드 연기로 가득 찼다.

 그가 조용해진 것이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암시로 다가왔다.


 “흐바르섬에 간다고 했지? 내가 안내해 줄게. 어디 레스토랑이 맛있는지, 어디 해변이 가장 아름다운지 다 알아.”

 “고마워, 근데 난 내일 아침 바로 떠날 거야. 일정이 좀 빡빡하거든.”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말없이 창밖을 보며 담배를 태웠다. 그의 말이 맞았다. 다음 날 아침, 건너편 2층 침대에서 자는 그를 두고 떠나며 생각했다. 나도 떠나는구나. 그의 이야기, 이 글을 위한 아이디어만 갖고 서.






 블레즈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자신의 방에 혼자 앉아 있지 못할 때 생긴다고.

 나는 모두가 잠든 밤 혼자 침대에 누우면 숨이 턱 막히곤 했다. 그럴 땐 방문을 살짝 열어두고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잠든 엄마가 코고는 소리를 들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그 소리에 안정감을 얻으면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훗날 그 소리도 멈출 것이다. 언젠가는 이 집에서, 이 세상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또 어딘가로 도망가는 상상을 했다. 외로움이 묻어있지 않은 새로운 곳으로. 아무런 흔적이 없는 곳에 가면 새로운 밤을 맞이할 수 있겠지. 그러면 엄마의 코골이 소리 없이도 잠에 들 수 있겠지.

 그런 생각에 빠져 골골거리는 시간이 늘어나면 외로움이 증식했다.


 내가 오래 살지 못할 것만 같다고 말했던 이유는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손가락질받지 않는 나이다. 20대 때에는 이것저것 다 해봐야 해 라는 말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으니까. 외로움과 싸우겠다며 떠도는 지금도 용감무쌍한 기행문(紀行文)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30대가 된다면. 또 40대가 된다면, 그때도 이렇게 기행(奇行)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나에게 그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도 외로움에게서 도망갈 수는 없다는 증거를 내 눈앞에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그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언제나 오늘이라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고 그 대가는 수많은 이별이었다. 나는 짙은 밤들을 견디지 못해 새로운 태양을 쫓았고 그 대가는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또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뱃삯이 없어 어딘가에 발이 묶이진 않았을까.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떠올리며 이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돈이 많아지면 또 찾아갈게, 스플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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