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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인 Sep 12. 2024

통과한 게 입국심사밖에 없어서

Prolog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명쾌하게 도장을 찍어본 적이 없다.

 늘 문턱까지는 가는데 탈락이다. 17살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기를 시작하고 5년 동안 배우지망생으로 살았다. 나를 지탱해 줄 자존감 없이 오디션을 보러 다닌 건 마치 핀 뽑힌 수류탄을 들고 다닌 것과 같았다. 상처받는 말을 듣거나 오지 않는 합격 통보를 기다리다 포기했을 때, 나는 들고 있던 수류탄을 내게 던졌다. 아아, 꽤나 아프고 너덜너덜한 5년이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24살이 된 해, 입시에 뛰어들었고 서울예대 극작과에 지원했다. 수시, 정시 둘 다 실기 1차 합격을 하고도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한동안 나는 뭘 해도 안되네 싶다가도 돌이켜보면 뿌듯한, 양가감정에 시달렸다.


 한국에서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자존감을 갖추고 살기엔 내가 가진 게 너무 없었다. 본인만의 가치관을 튼튼하게 건설하는 법은 어느 잘난 사업가의 명언이나 책의 구절로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그걸 체득할 기회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을 보고 똑같이 흉내 내는 법은 배웠어도. 

 너무 비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지적해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느낀 걸 어떡하나.

 나는 앞을 보기 싫어 뒤를 돌아보았다. 20살, 처음으로 태국 여행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빳빳한 내 여권에 첫 도장이 찍혔던 순간.



 줄을 서는 동안 머리를 정리하거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내 차례가 되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미소를 살짝 비치며 인사한다.

 여권을 입국심사원 쪽으로 돌려 건넨다.

 간단한 질문을 받으면 대답한다. 되도록 짧고 간결하게.

 지시에 따라 유리부스 옆에 달린 카메라를 응시하다가 됐다는 사인이 떨어진다.

 이윽고 내 여권에 쾅하고 도장이 찍힌다.

 이제 나는 새로운 땅을 밟을 자격이 생겼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쾌감은 꽤 오랫동안 신선한 상태로 내 속에 머물렀다. 이 나라에서 나를 정식으로 인정했다는 게 좋았다. 내 여권에 도장이 늘어갈수록 그런 인정욕구가 채워져 가는 듯했다. 그마저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때때로 하지만.


 영국에 갔을 때, 멋모르고 자동 입국 심사를 받았다. 한국 국기가 보이길래 그 줄로 갔는데, 기계에 여권을 스캔한 뒤 지문을 찍고 지나갔더니 끝나버렸다. 나는 그게 참 싫었다. 영국 입국 도장을 못 찍어서 찝찝했다. 얼결에 영국 땅을 밟은 나는 마치 길을 잃은 듯 서성거렸다. 그때 알았다. 그깟 도장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나 의미부여를 하고 있구나.


 그러니까 성장을 하겠다는 대단한 목표도, 다른 문화권에 가서 배워보겠다는 결연한 태도도 전부 꽤 괜찮은 미명 아래 존재하고 결국 내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국경을 넘나 들었던 이유는 통과한 게 입국심사 밖에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게 내 표면적인 이유다. 내면적인 이유는 이렇다.



 나는 내가 싫었다.

 너무 약한 내가 싫었다. 걸핏하면 숨을 헐떡거리며 공황 상태에 빠지는 내가 싫었고 외로운 새벽을 견디지 못해 몇 시간이고 뒤척이는 내가 싫었다.


 내가 싫으면서 싫다고 말도 못 했다. 방금 말한 게 태어나 처음으로 고백한 거다. 이 생각이 너무너무 못나서 차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척하며 살아왔다.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 당당하고 유쾌한 페르소나를 24시간 가동했다. 어쩌다 전원이 꺼지면 그 간극이 세세하게 느껴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싫어졌다. 악순환. 그것을 반복하며 살았고 결국 별것도 아닌 것에 연연하는 어른이 됐다.

 

 어느 날 문득 이 굴레를 끊어 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원인의 원인의 원인을 타고 올라가 보니 결국 못난 생각들의 시초는 외로움이었다. 누가 나 대신 나를 좀 사랑해줬으면 했고 몸부림칠수록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다. 집착 섞인 연애를 하다가 회피형 인간용 동굴에 숨어버리고.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게 많은지 피하는 요령만 늘어가고. 외로워서 우울하고. 우울해서 아프고.


 그래서 외로움과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대판 싸워서 이기면 나 자신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약한 나를 강하게 만들어줄 곳으로 향했다. 아주 멀리멀리.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해 혼자 살아남아야만 하는 곳으로. 기왕이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곳으로.

 이게 내 여행의 내면적인 이유였다. 어리석긴 하지만.






  이거 참 시작부터 우울한 얘기를 꺼내 미안하다. 여러분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


 피곤한 몸으로 건조한 비행기에 앉아 옆 사람이 짐을 내리는 동안 전염병을 조심하라는 문자 폭탄을 받지 않아도 된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승무원에게 퉁퉁 부어 멋쩍은 얼굴로 화답하지 않아도 된다.

 눈치껏 행렬을 따라가다 잰걸음으로 입국심사 줄에 올라타지 않아도 된다.

 내 항공기가 도대체 몇 번 플랫폼에 짐을 던져 내보내는지 눈에 불을 켜고 전광판을 응시하지 않아도 된다.

 모자나 안경을 벗고 불편한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일도 없을 것이니 걱정 마라. 나는 당신들이 이 책을 왜 샀는지, 며칠 동안 읽을 건지, 다음 책은 뭘 고를 건지 물어보지 않을 거다.


 당신은 이미 새로운 세계를 즐길 자격이 있다. 내가 일일이 도장을 찍어주진 못하지만(했다 치고), 다음 장으로 넘겨도 좋다.











항공기 편명을 좀 더 감성적으로 지으면 기억하기 쉬울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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