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ranaim Lee Jun 24. 2022

보장

20220624

1

컨디션이 좋지 않다 물론 곧 대재앙의 날이기도 하고, 오늘 오전 스케쥴은 말아먹었고 오후에 전시회 가야하는데 보고싶은 사람이 둘이나 거기에 있는데 내 몸과 마음이 깊은 강에 있다


2

인간에게 실망하거나 배신감이 들면

마음만큼이나 몸이 아프다


3

타로에서는 나를 시기해서 소문을 퍼트리는 자를 조심하라고 나왔다 나를 시기하는 것도 네 몫이고 욕하는 것도 네 몫이긴한데 그 업보도 네 몫이라는 것만 염두했으면 좋겠다 나는 신처럼 오만해서 진심에는 자비롭고 기만에는 가차없다


4

동생과 일본의 어느 지하철역사에 있었는데 무슨 연유로 나가지 못할뻔 하다가 한국말을 곧잘하는 역무원의 배려로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관광지도를 보며 어디어디를 가야겠다고 그러려면 택시를 타야했고 길건너에서 전형적인 일본 택시를 탔다 어디로 갈까요 기사의 물음에 동생이 지도를 천천히 되짚을 때 꿈에서 깨어났다 간김에 여행이라도 하고 올 걸


5

왜 다들 솔직하지를 못할까 이유가 a라고 말하면 그것이 구차하거나 유치해도 상대방의 마음이 존중되던데 이유가 a면서 @라고 말하는 인간을 보면서 에이 너 a때문이잖아 나는 뻔히 보이는데 아니라고 우기니까 더 없어보이고 나에게 솔직하지 않는 너와는 상대하고 싶지도 않구나 이런 내가 당신에게 폭력이라면 나를 기만하는 당신도 내게 폭력인 거라고


6

우리는 서로를 기망하며 실망을 하고


7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 씻고 준비하고 나가야하는데

아직 나는 일본에 있는 것 같아 밤의 도로 위에서 여행의 들뜸으로 가득했었는데


8

그 일본 여행 이전의 꿈이 생각났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용변을 보려는데 자꾸만 사람들이 방해하는 꿈 칸을 옮겨봐도 벽이 없어 사람들이 자꾸 침범하는,


제발 좀 나가줘 볼일봐야하니까


결국 나는 변기가 아닌 곳에 볼 일을 봤다 오브제처럼 황금빛의 결과물을 낳았다 좋은 꿈인데 오늘 로또라도 사야하나 이억으론 한국에서 어림없다 이십억은 있어야 뭐든 시작하니까


9

여전히 이 고통을 짊어지고 그곳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괴롭다 나의 마음과 몸이 분리된 채 집안을 누비고 있다 시간만 흐른다 시간을 잡고 싶다


10

시간도 물리적으로 잡힐 수 있다고 백규가 말했지 잡을 수 있다면 되돌릴 수도 있겠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한달 전 만이라도 돌리고, 아니 좀만 더, 아니 좀만 더 더 그러다보면 처음으로 돌아가야겠지 태어났을 때는 지금보다 지옥이었고 되도록 돌아가지 않는 편이 나으므로 차라리 미래로 미래로 가자고 그렇지만 미래가 나을 거라는 보장은 없고


11

보험에도 보장은 까다롭다 보장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말이든 사랑이든 믿음이든 미래든 나든 너든


12

이상하지 꿈에서는 누구와 연애하든 잔걱정이 없으니까 수업시간 내내 우리는 둘만 존재하는 듯 함께했다 미래도 과거도 재고 따질 것도 없이 사랑만 존재하는 그곳에서 나로 가득하던 그 사람의 눈을 잊을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