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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Dec 02. 2021

원칙

원칙이라는 것이 있었다

신앙에 따른 원칙도 있었고 그것은 쉽게 깨지지 않았지만 내가 변하니 원칙도 변하곤 했다 원칙은 신념을 대변하기도 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 혹은 계약금이 들어오기 전까지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원칙


이전의 나는 뭐든 열정적인 사람이었고 종이보다 사람 간의 신뢰를 중시하는 어리석은 믿음을 갖고 있었다 매정하게 꼭 그렇게 해야되냐고 나조차도 반문하고 살았지만


알잖아요 믿음이 산산히 부서져온 과정을


신기하게 신이 어디 있는지 의심하고 반문하기 시작하자 인간에 대한 믿음도 줄어들었고 그만큼 상처도 줄었다 보이지 않는 신도 믿었던 내가 보이는 인간은 얼마나 믿어온 걸까


인간은 말을 하잖아 말은 얼마나 달콤한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잖아 뱀의 말처럼 나를 욕망하게 하고 신으로 만들어주기도 하잖아


사람에게는 체취가 아닌 영취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영혼이 풍기는 냄새 그러니까 어떤 사고를 하는지는 말이 아닌 냄새에 있고 구린내는 아무리 여러겹으로 포장을 해도 완벽하게 숨기기가 어렵다


인간은 고장난 신처럼 실수를 달고 살지만 근본은 바꾸기 어렵다 내게 다가온 의도에서 선함과 악함의 결과값을 도출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나의 선함을 이용해 내 능력을 빼앗으려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이것이 나의 약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픈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내 이타심이 내게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거든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이었으니까


내가 있고 그 다음에 타자가 있는 것


내가 지워진 자리에 타인이 그려진 세상은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나부터 행복하고 나부터 평안해야 주변을 다스리고 안아줄 수 있다는 것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애인이 있고 친구가 있고 부와 명예가 있어도

내가 지워지면 삶에 의미가 없어지므로


어떻게 사건적으로만 재단할 수 있겠니

웃는표정의 가면을 쓰고 바닥을 기면서

사랑이 어디있냐고 믿음이 어디있냐고 킁킁대며 사는게

인간이라고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죽고 싶다는 너

응 나도 죽고 싶다 어제보다 행복해졌는데 여전히 마음은 죽음과 가까워졌구나


모두가 죽고 싶을 거다 다들 그럴거야

매일이 재난이고 마음은 전쟁인데 그럴거야 다들

우리 방공호로 들어가자 책으로 쌓은 문자들 속으로 숨어버리자 아무도 찾지 못하게 길을 지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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