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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May 14. 2022

매장된 매장

20220314

1

홍대에 청바지 사러 나왔는데 매장이 매장되었다 여기까지 일부러 나왔는데 그래 밥이나 먹은 셈 치자 오랜만에 규슈 가정식으로


2

처음 홍대에 규슈 가정식이 생겼을 때 정식에 나온 돈지루라는 일본식 국을 맛보고 그 맛에 반해 매년 겨울이 되면 돈지루를 직접 해 먹었다 오랜만에 그곳에서 정식을 먹었는데 맛이 조금 변한 것 같았다 그래 사람도 사랑도 맛도 세상도 변하기 마련이지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돌아가고


3

오늘의 플라잉 요가는 해먹을 이용한 스트레칭, 수업은 여섯 시, 들고 나온 책 한 권조차 읽지 못한 채, 아니 피검사를 하러 가야 하는 일정을 지키지 못한 채, 밥만 먹고 집으로 돌아가 운동 갈 채비를 한다 밥만 먹고 밥만 먹고 인간은 밥 없이는 못 사는 동물인가 밥만 포기했어도 피검사도 받고 카페에 앉아 수플레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책 한 권을 읽어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한 끼는 먹어야지 그래야 인간답지 이런 쓸데없는 관념과 고집들이 오히려 오늘 나의 일정을 엉망으로 만든 건 아닐까 나는 유독 예민해져서 말을 더듬고


4

양말 하나를 샀다 검은 양말로 한 켤레에 삼천 원 다섯 켤레에는 만 삼천오백 원 그렇지만 한 켤레만 산다 이제 쓸데없이 쟁여두는 일은 지양한다


그렇지만 1+1은 언제나 설레는 걸


5

양쪽 귀에 꽂은 피어싱을 새것으로 갈았다 바빠서 미루게 되는 일들을 하나둘씩 해치우는 중이다 왼쪽 귀는 연보랏빛으로 오른쪽 귀는 연분홍빛으로 그렇지만 이것은 나를 위한 힐링, 누군가에게라도 좋으니 자랑하고 싶어 나의 작고 반짝이는 귀들을


6

비가 오면 감각은 예민해진다 축축한 흙냄새 비릿한 물 냄새 기름진 음식 냄새 살 냄새 숨 냄새 온갖 냄새에 시달린다 빠져든다 추적이는 빗소리 흐르는 물소리 버스가 서고 달리는 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 속삭이는 소리까지도 몸은 젖은 종이처럼 축축 쳐지고 가라앉고 그래서 이런 날은 꽃봉오리처럼 몸이 기지개를 킨다 물에 흠뻑 취하고 싶어서 젖어들고 싶어서 자꾸만 자꾸만 고개를 꽃잎처럼 열어젖히고 싶어서


7

사방이 안개 낀 듯 뿌옇습니다

내일은 어제보다 뿌옇습니까


8

다시 춤을 추고 노래를 할 생각 하니 좋으니?

사람은 먹던 걸 먹고 뱉던 걸 뱉으니까

게처럼 개처럼 걔처럼


9

나의 아름다움이 사방팔방으로 너울진다

그 어떤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오로라처럼 밤하늘을 뒤덮은 채 은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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