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ranaim Lee May 14. 2022

알고리즘

20220504

1

전주영화제를 가지 못했다 지난번에 조연출로 참여한 작품이 후보에 올라가서 내려가기만 하면 감독님도 뵙고 축하도 드리고 영화인들과 술도 퍼마시고 싶었는데 그 시즌에 로케이션 문제로 부산에 있었지


2

큐어를 보지 못했다 가장 좋아하던 호러영화였는데 영화가 재개봉할 때쯤에는 콘티를 짜고 있겠다고 그렇지만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는 총알과 같고 불행은 피하려 해도 관통당하는 총상과 같아서


3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하고 싶은 일들도 미뤄둔 채 오월을 맞이했다 늘 그렇듯 생일이 피날레인 오월에는 일주일간 거하게 파티를 한다 일 년에 한 번쯤은 호들갑을 떨며 살아있음을 증명하곤 하는데 판데믹으로

태국은 가지 못했고 예약해둔 호캉스만 기다리고 있는데 이게 다 뭔 짓인가 싶고


4

유튜브 알고리즘에 앞으로의 나의 미래에 대해 타로가 뜨길래 리딩을 들어봤는데 죄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이직해서 대박이 난다는 거다 웃기네 지금 웹드 끝나려면 6월은 지나야 하는데 뭔 이직이냐고 비웃었는데 오늘에서야 소름이 끼친다 때로는 무의식의 흐름으로 선택한 미래가 나를 구성하는 것만 같구나


5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나면 타자의 말, 표정, 행동으로 구별한다 나에게 위험한 존재인가 아닌가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파악하기가 모호하다 그럴 때는 인내를 갖고 꽤 오래 지켜보는데 어느 시점에서는 결국 그가 추구하고 집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관계 가까울수록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이 가능하므로 대입할 퍼즐 조각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6

모든 것에는 백 퍼센트가 없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단순히 물과 기름이 아니듯 마음을 구성하는 것들 역시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 미묘하다


7

지금 기분은 사실 반반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베개를 적셨고 지금은

육 개월의 엿같은 시간을 견뎌낸 내가 대견스럽고 그래


8

이제 책을 실컷 읽을 수 있구나

영화도 드라마도 언제든 마음 편하게 보면서 구상했던 새로운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고 이르고 너무 이른 파도에 쓸려가 남은 흔적이 없구나


9

천만 원 못 번다고 내가 죽는 것도 내가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나를 믿고 기다려준 많은 마음들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미안합니다


10

씻어내지 못한 해수욕으로

끈적한 밤들이 이어지고


11

미친 인간들도 견뎠고 고집스러운 인간들도 견뎠고 견디는 것을 견뎌가면서 이것이 내가 갈 길이고 가야 하는 길이구나 십자가를 진 구원자처럼 확신만 얻었습니다


12

그래서 누나가 원하는 게 뭐예요?

칸에 갈 거다 지금은 웃기는 소리 같겠지만

너 재능과 확신이 있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 아냐 똑같이 손에 진흙을 쥐어줘도 다 다르게 만들어내는 게 인간이야 내 손에 진흙이 들어왔고 난 그것으로 세상을 만들었다


13

자신을 힘들게 하며 사는 사람들을 안다 자신의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 나는 처음에 그것이 불운이라고 생각했다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 거라고 그렇지만 그 역시도 선택이더라 자신을 괴롭게 하는 부모에게 선을 긋지 못하는 것도 자신의 선택, 혹은 그런 부모를 핑계 삼아 타인에게 이기적으로 사는 자신의 삶도 선택,  나는 더 이상 타인을 동정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특히 아가페에는 동정이 필요해도 에로스에는 빠져야 할 덕목이라고


14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 게 좋은가요

과거는 어떻게 썰어 드리면 좋을까요

졸라주세요 나의 덕목을 골라주세요

나의 입술을


15

여러 자아들이 목소리를 낸다

누가 이기는지 차마 볼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