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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May 14. 2022

나의 해방 일지

20220512

1

시적 언어로만 쓰던 단어를 드라마 대사로 듣게 될 줄은


2

이상하게 몇몇 작품들은 드라마라는 장르가

하급의 대중문화가 아님을 증명한다


3

나의 아저씨는 사실 2화까지 보다가 멈췄다

각 잡고 볼 여유가 없었고 마음이 힘들어서

지난달에 대본집을 샀다 읽고 볼지 보고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의 해방 일지 대본도 사게 될 것 같다


4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는 말이냐 이미지냐

지금까지 이미지에 집착했다면 지금부터는

말의 무게에 대해서 집중하고 싶다


5

내가 살아온 나날들을 되짚는다

나의 아빠 엄마 동생 친구 사랑했던

사람 들고 애증 했던 사람들 나의 세상을

구축하게 만든 소중한 기억들

고마운 개새끼들


6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재능이 많으면

굶는 거라고 네 아빠처럼,

아빠 나는 요즘 다이어트하느라 굶는 거야

아빠 딸은 곡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뿐이라고


7

엄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들 뿐인걸

모든 것에 실패해온 내가 여기까지 온건 당신들이 쥐어준 재능이라는 포크 때문이라고


8

포크로는 찌르는 걸 할 수 있고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려고 태어났습니다


9

급할 땐 노란불에도 갈 수 있는 거잖아 근데 네 아빠는 초록불일 때만 가니까 유턴도 하라는 곳에서만 하고 준법정신 투철한 사람이라 가끔 답답해도 그래서 좋아 바른 사람이니까


10

엄마는 본인의 연애사를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곤 했었는데 잘생긴 기자도 까고 돈 많은 사장도 까고 무튼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아빠에게 반하고 선택한 이유들이었다 이것은 곧 나의 탄생설화가 되고


11

코코를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할 때마다 알아듣고 꼬리를 내리친다 질문도 대답도 정확하다 때론 인간보다 나을 때가 많다 마음을 숨기는 법을 모르니까


12

곧 생일이다 매년 방콕에서 보냈는데 우기라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었지 냄새가 그립다 끈적한 향신료 냄새 뜨거웠던 온도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13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어떻게 시간을

등 뒤로 보낼 수 있을까

보내주는 일이 놓아주는 일보다 어렵고


14

그동안 사람들이 나를 신처럼 추앙하길 바라며

살았습니다 그래야 나의 모든 시절들에 보상이 될 테니까요 부족을 부적처럼 지니며  채워도 채워도 새어나가는 마음의 금을 누르며


15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깊이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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