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소환과 느리게 걷기
<추억소환과 느리게 걷기>
느리게 걷기 / 외별
한 발이 온전히 땅에 닿기 전엔
뒷발을 떼지 않기로 한다
저 음울한 살얼음의 땅이
먼지처럼 일제히 내려앉을지
모를 일이기에
뒷발이 땅을 떠날 때까진
앞발로 굳건히 몸을 세우기로 한다
빠르게만 내달리는 저 땅 위에서
넘어져 쓸려가지 않기 위해선
한결같은 보폭으로 중심을 세워
뿌리 같은 걸음 내딛기로 한다
어디쯤 서있는지 돌아다보며
어디로 가는 건지 눈여겨보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이가 들어 입대해서 마음 고생할 울아들 상욱아!
아빠가 아주 여렸을 때, 겨울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동네 형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둘러 언 땅을 파헤쳐서 여기저기에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신문지를 덮어놓고 분무기로 살짝 물을 뿌려주면 낮은 기온 덕분에 신문지는 이내 살얼음이 되어 팽팽해지고 그 위로 눈이 덮여 주위의 튼실한 땅과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다.
.
그렇게 해놓은 형들은 몰래 모퉁이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고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 재수 없는 사람은 무심코 발을 내디뎠다가 구덩이 속으로 속절없이 빠지게 되어 때로는 발을 삐거나 찰과상을 입게 되곤 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형들은 좋아라 웃어대고 구덩이에 빠졌던 사람에게 붙잡히기 전에 냅다 달음박질쳐서 도망가곤 했었다.
가끔, 형들은 꽁지 빠지게 도망치다가 자신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빠지기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저기에 파놓은 구덩이의 위치를 스스로도 잘 몰랐던 것이었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구덩이에 빠졌던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단단한 땅이라고 믿고 힘차게 내디뎠던 땅이 힘없이 허물어지는 구덩이었다니!
.
이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구덩이들, 식성 좋게 믿음을 삼켜버리는 구덩이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 누군가가 파놓은 것일 수 있고, 때로는 나 스스로 파놓은 것일 수도 있는 구덩이들...
그 곁에서 무작정 뛰어가기만 하는 '나' 그리고 내 동무들. 무시로 섞여 뛰어가다가 내가 파놓은, 혹은 남이 파놓은 그 구덩이에 빠지게 되면 삶을 걷는 다리가 염좌상을 입게 되는 것은 명확한 이치이건만, 누구를 탓해야 하는 것인지.
속도가 미덕이고, 속도가 경쟁력이고, 속도가 키워드가 된 21세기의 하늘 아래, 어쩌면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세태 속에서 모든 것에 대한 안정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은 불안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 사이의 관계도 불신의 바탕 아래 외양적 관계 양식만 너무도 빨리 변모해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어제의 가치가 오늘의 가치와 다른 시간 속에서, 늘 새로운 관계양식을 추구하게 되는 관계로 근원적 가치나 믿음에 대한 심려한 고민의 흔적은 이제 전설이 된 듯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 세태 속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휘둘리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내 나름대로의 보폭과 속도를 유지하면 직립보행을 하고자 한다면, 그건 시대착오적 발상일까?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아빠는 아빠 걸음의 속도와 보폭을 유지하고 싶다.
내가 선 땅, 내가 서야 할 땅을 디지털 정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몸으로 하나씩 하나씩 확인하면서, 내 발과 땅이 교감하는 그곳에 내 이름으로 내 몸으로 올곧게 서있고 싶다. 앞서가는 이의 등을 바라보면서 느리게 걷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상욱아, 조급증이 걸음을 재촉한다. 조금만 여유를 갖게 되면 주변도 둘러보고, 내가 걷고 있는 땅과 그 위의 하늘도 찬찬히 살피게 되는 법이지.
.
그러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 내가 선 땅은 어떤 모습인지를 알게 되고, 나의 걸음은 하나하나가 확신이 되고, 기록이 되고, 내 삶의 역사가 된다.
군대에 있는 시기는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느리게 걷는 시간이 될 것이다. 느리게 걷는 것이 뒤처지는 게 아님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눈이 밝은 사람에게는 말이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눈이 언제나 밝았다고 아빠는 믿는다. 그 밝은 눈으로 지금의 느리게 걷는 걸음이, 자신을 향해 담담하면서도 거침없이 나아가는 힘찬 행진이기를 아빠는 소망해 본다.
아빠가 사랑하는 우리 상욱이에게
아빠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전해본다.
사랑한다 울 아들, 울 막내
2023년 03월 02일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