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단념할 수 없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유서
"참 부끄러운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인간 실격>이라는 다자이 오사무의 유서와도 같은 소설의 전체를 관통하는 첫 문장이다. 비록 소설 속 주인공이 하는 대사이지만 문장 속에는 작가의 심리와 정서를 엮은 심연이 담겨있다. 마치 작가가 주인공에게 본인을 투영한 것처럼, 아니 주인공을 본인으로 설정하여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심리, 그 심연을 어릴 때부터 깊게 통찰하였고 그 결과 허무주의에 빠져 살아가기 위한 익살의 페르소나를 낀 채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시대와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리가 너무나도 이해되고 공감이 되었다. 나도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사회에 나를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만만한 웃음을 택했고, 적당한 웃음과 리액션은 나를 상처 입히지 않는 보호막으로 작용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렇게 나를 맞추며 살아왔다. 그가 익살로 자신을 감춰야만 하는 현실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녹여낸 모든 문장들을 감상하면서 자책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는 그의 본질을 꿰뚫어 본 친구에게 오히려 정을 느끼게 되는데, 가족들에게조차 숨겼던 그의 본질을 유일하게 알아봐 준 친구이기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남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남과의 관계 형성으로 얻게 되는 본인의 이득과 심리적 안정감만을 중요시하는 각박한 이 현대 사회에서 남의 본질을 알아봐 주는 친구는 우리에게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에게 죽음은 구원과도 같다. <인간 실격>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라고 하면 죽음 또는 자살이다. 그는 삶도, 죽음도 모두 희극 명사라는 말을 한다. 그는 죽음으로써 스스로 구원받고 싶음과 동시에 그럼에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정확하게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애인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가 삶과 죽음에 모두 애착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신은 그의 애인에게 신뢰라는 죄를 선사했고, 신뢰는 그를 죽음으로 인도했다.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은 비극인 것일까.
<인간 실격>은 명작임을 떠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읽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그 정도로 본인의 심연에 몰입해 본 적이 없거나 심연이 없는, 즉 마음의 우물 속에 들어가 본인의 삶에 대해 고찰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작가의 심리가 이해되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성격과도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의 내면에 몰입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IN 유형에게는 작가의 사고방식이 반갑게 느껴질 수 있고 자신만 그런 어찌 보면 반사회적인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반면 그러한 생각들을 해본 경험이 없고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 집중하는 ES 유형에게는 작가의 심리가 깊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인간 실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자책은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둘째, 작가의 우울감과 허무주의가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기에 그의 무서운 통찰력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끼고 있는 페르소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부정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인간의 본질이 본인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고, 삶에 대한 이유를 찾아서 그 목적만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허무주의를 비추어 독자들이 하여금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수 있기에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한 작가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인간에 대해 잘 알았기에 <인간 실격>을 읽다 보면 나의 본질을 파헤쳐 나체가 드러난 것 같은 부끄러움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파고듦이 나에게는 깊은 영감과 통찰력을 안겨주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인간 실격>의 서문을 읽자마자 이 책은 내 인생 책 TOP3 안에 들 거라고 확신했다. 그만큼 나에게 깊은 영감과 문체에서 느껴지는 희열을 안겨주었고 인생에 대해서 고찰해 보는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감상문을 읽고 독자분들도 내 취향인지 아닌지 바로 느낌이 와닿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는 걸 추천한다. 앞으로도 종종 인생 책에 대한 감상문을 심도 있게 써볼 테니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대사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의 손에 죽고 싶다고 간절히 원한 적은 몇 번인가 있었습니다만, 남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무서운 상대를 오히려 행복하게 해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