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시장을 다시 짜는 실험들
스타트업 생태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업자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팀을 꾸린 뒤 투자자를 찾아가는 흐름이 자연스러웠죠.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릅니다.
이제는 VC(벤처캐피털)들이 창업 이전 단계부터 직접 창업을 설계하는 ‘배치(batch) 프로그램’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중에서도 글로벌 배치 프로그램의 대표 주자라면 단연 ‘앤틀러(Antler)’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VC 배치 프로그램이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리고 앤틀러는 왜 유독 주목받고 있는지, 또 그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배치 프로그램이란 무엇일까요?
쉽게 말해 VC가 잠재력 있는 예비 창업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일정 기간 동안 아이디어를 만들고 팀을 짜고 MVP(최소 기능 제품)를 만들 수 있도록 밀착 지원하는 구조입니다.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정해진 기간 운영: 보통 3~6개월 단위로 코호트를 나눠 운영됩니다.
공간·리소스 제공: 사무공간부터 법률·회계·기술 컨설팅까지 제공하죠.
초기 자금 지원: MVP를 만드는 단계에서 약 2천만~1억 원 정도의 초기 투자금이 지급됩니다.
데모데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투자자 앞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습니다.
이러한 배치 프로그램은 2017년 이후로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특히 동남아, 유럽, 중동 VC들은 부족한 창업 인프라를 메우기 위해 이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죠.
미국에서도 Andreessen Horowitz, Sequoia Arc 등 굵직한 VC들이 직접 배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앤틀러는 이런 배치 프로그램을 가장 정교하게 구현한 글로벌 모델입니다.
2017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작된 앤틀러는 “훌륭한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을 실천합니다. 그래서 앤틀러는 아이디어가 없어도 지원할 수 있습니다.
기업가 정신, 문제 해결력, 실행력을 보고 사람을 뽑고, 이들이 함께 팀을 짜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죠.
앤틀러의 기본 흐름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창업자 선발: 아이디어·팀 없어도 지원 가능, 사람 중심 평가
팀 빌딩 & 아이디어 탐색: 서로 어울려 팀을 짜고 시장과 문제를 찾아냅니다.
제품 개발 & 피칭: MVP를 만들고 투자위원회에 발표합니다.
투자 & 글로벌 연결: 초기 투자금(약 $100K~$150K)을 받고, 후속 투자자와 연결됩니다.
앤틀러는 현재 뉴욕, 런던, 베를린, 싱가포르, 서울 등 전 세계 30개 도시에서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8천 명 이상의 창업자가 이 과정을 거쳐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탄생했죠.
대표 포트폴리오로는 리퍼브 마켓플레이스 ‘Reebelo’, 법인 설립 SaaS ‘Sleek’, 로보틱스 스타트업 ‘Cognicept’ 등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실험적인 모델이 늘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앤틀러의 운영 방식에는 장점만큼이나 논쟁거리도 존재합니다.
첫째, 짧은 시간 내 팀 구성은 신뢰 형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불과 몇 주 만에 서로의 가치관과 일하는 방식을 파악하고 팀워크를 쌓기란 쉽지 않죠.
결국 초기엔 잘 돌아가다가도 갈등이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둘째, 사람 중심 구조의 맹점입니다.
앤틀러는 아이디어보다 사람을 우선시하지만, 이는 충분한 시장 검증이나 기술적 기반 없이 사업이 시작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결국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투자 유치에서 유리해지고, 장기적인 비즈니스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셋째, 초기 투자와 지분 구조 문제도 있습니다.
$100K 투자금과 맞바꿔 약 10%의 지분을 넘기는데, 이는 향후 추가 투자 라운드에서 창업자 지분이 빠르게 희석되는 출발점이 됩니다.
게다가 개발·마케팅 비용이 실제로는 더 들어가 자금 운용에 애를 먹는 팀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앤틀러는 혼자서도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올스타형 인재’를 선호합니다.
내성적이거나 연구 중심의 딥테크 창업자에게는 이 속도 중심 방식이 오히려 잘 맞지 않을 수 있죠.
결국 모든 창업자에게 정답이 될 수는 없는 셈입니다.
앤틀러는 최근 후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에도 더 큰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초기 창업팀 발굴뿐 아니라 시리즈 A 이후 성장 지원까지 확장하며, 더 많은 엑싯 사례를 만들어내려는 것이죠.
물론 그 실험이 반드시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VC가 더 이상 ‘돈만 대는 곳’에 머물지 않고 창업 자체를 설계하고, 초기 시장의 룰을 다시 짜는 실험에 나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창업자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누구나 창업의 방식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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