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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Mar 06. 2022

발령 첫날, 꼰대가 되어버렸다.

일 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입니다.

발령 나던 첫 해의 일이다. 나는 중간에 발령이 난 케이스여서 제자들을 남들보다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제자가 생기는구나!’     

 설레는 마음도 잠시, 걱정이 몰려왔다. 4년 간의 교육대학교 과정에서 실습을 통해 아이들을 세 차례 정도 만나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교대에서는 2,3,4학년 때 총 세 번의 실습을 통해 수업 실연을 하게 된다.) 내가 학급을 운영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왜냐! 교사생활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생활지도이기 때문이다!          

‘몇 년간은 학부모님이나 학생들한테 저경력 티 내지 마.’     

 지나가는 조언에 바짝 긴장을 하고, 풀셋팅 된 정장을 입고, 도보로 헐레벌떡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누가 중견 교사라고 생각하겠느냐 싶겠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옷을 차려입으면 어른스러워 보일 줄 알았나 보다.


 내가 얼마나 첫날 긴장을 했냐면, 복도에 지나가는 6학년 학생에게 두 손 모아 90도로 꾸벅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동료 교사에게 한동안 놀림도 받았다. 하하! 어찌 됐건 갓 발령 났지만, 노련한 교사이고 싶었던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잡을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디서 주워듣고 ‘첫날, 첫 주는 웃어 보이지도 말고 확실히 잡아야 돼.’라는 말이 진리인 것 마냥 입 속으로 되뇌길 여러 번, 결의에 찬 눈으로 교실에 들어서며 문을‘벌컥’열었다.


‘만만해 보이지 않겠어!’     

 일찍 도착해있던 아이 몇 명이 순수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선생님이 우리 반 선생님이에요?”

‘이 귀여운 눈망울에 속으면 절대 안 돼!’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개를 치켜들며 우아하게 대답했다.          

“흠흠. 네, 선생님이죠.”     

 경련이 날 것 같은 입꼬리를 애써 내려가며 여유 있는 척 교실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1학기 동안 근무하고 퇴직하신 선생님께서 잘 지도해 주셔서 아이들은 착하고 태도도 좋았다.


‘아, 혼낼 게 없잖아!? 애들이 너무 말을 잘 듣네... 어떡하지?’     

 천방지축일 줄 알았던 아이들이 너무 말을 잘 들어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내게 물었다.          

“선생님, 손 씻고 줄 서요?”

“어?! 으, 응...”     

 아이들에게 급식실 위치를 안내받으며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고 나서도 혼자 어색해 괜히 교실에서 컴퓨터만 두드렸다.     

‘이렇게 하루가 끝나는 건가...’하는 생각도 잠시, 5교시를 시작할 시간이 다가왔다. 꼬꼬마 아이들 28명으로 가득 차야할 교실에 절반 정도밖에 아이들밖에 없었다.


‘옳지! 이거다! 군기를 확 잡아야겠어!’          


 나는 있는 힘껏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지금 안 온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거죠??!?”

“놀이터요!”

“화장실이요!”

“데려올까요?”     

 나는‘선생님 지금 화났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친구들을 재빨리 데려왔다.     

“지금 들어오는 친구들은 모두 교실 뒤편에 서세요.”          

 나는 마지막 한 명이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교실에는 정적만 흘렀다.          

‘좋아! 나 지금 아주 무서운 선생님 같겠지!?’           

 마지막 아이가 교실 뒷문을 빼꼼 열더니 내 손짓에 뒤편으로 섰다. 56개의 눈동자는 두려운 눈망울로 내가 무슨 말을 할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분, 선생님은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을 아~주 싫어해요.”

“네~”     

‘아냐, 그거 아냐. 눈치 없이 너무 착하게 대답하지 말란 말이야.’     

“흠흠, 뒤에 서있는 친구들, 대답해보세요. 우리는 5교시 수업이 있어요. 그. 런. 데. 지금이 몇 시죠!?!?!?!?”


 내가 교실 시계를 바라보자 아이들 시선이 모두 교실 시계로 향했다. 시계는 수업시작 시간인 1시를 넘기고 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교실 뒤편의 아이들은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1시?”

“3시?”

“아냐~ 작은 바늘도 봐야 돼. 3시 5분?”     


풍선에 바람 빠지듯 내 얼굴 터질 것처럼 불어넣었던 화가 푸쉬쉬- 사라져 버렸다.

이내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여, 여러분 시계 볼 줄 모르나요?! ........그렇겠네? 그렇구나??!”     


 당황한 내 질문에 세모 눈썹으로 축 쳐져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이들. 아이고야, 나 진짜 실수했구나. 시계도 볼 줄 모르는 꼬꼬마 녀석들을 데리고 나는 똥 군기나 잡으려 한 꼰대 교사였던 것이다. 그것도 발령 첫날부터.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얘들아, 선생님도 교사가 처음이라.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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