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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Oct 22. 2022

8살의 엉덩이에는 편견이 없다.

일 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교직경력의 대부분 저학년을 맡다 보니, 자연스레 어느 순간부터 저학년 지도와 관련하여 동료 선생님들의 질문을 받게 됐다.     

“선생님, 1학년은 원래 수업시간에 이렇게 돌아다녀요?”     

 그 질문을 받고서야 ‘아, 그게... 이상한 거겠지?' 싶었다. 내 생각에... 1학년의 목표는 아마도... 입학 전 자유분방했던 엉덩이들의 자리를 찾아주는 게 아닐까?’싶을정도.


 8살의 엉덩이에는 편견이 없다. 편견이 없을 수밖에 없다. 7살까지 어린이집(혹은 유치원)에서 좌식 생활을 주로 했는데, 8살이 되어서 갑자기 엉덩이를 둘 곳은 ‘자기 의자’밖에 없다고 하다니, 8살의 엉덩이 입장에서는 여간 당황스러울 수밖에.

 흠흠. 이건 엉덩이 입장에서 얘기하는 건데, 학생용 의자에도 쿠션이 생기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지난 30년간 눈부신 발전을 해오고, 교육 예산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데, 왜 학생용 의자는 아직도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지 모르겠다. 책상과 의자의 소재가 바뀌어 가시 찔리지 않게 반질반질해진 것 정도? 그래. 그게 30년간의 발전이라면 발전일 수 있지만... 눈부시진 않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8살의 엉덩이는 자꾸만 탈출을 시도한다.     


  모둠 활동 시간이었다. 분명 모둠활동을 하고 있는데 친구들의 얼굴과 나란히 맞대고 있는 엉덩이가 보였다. 재훈이의 엉덩이였다.


‘재훈아, 아니야, 거기는 너의 엉덩이 자리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책상에 앉아있는 재훈이를 들어 의자에 도로 앉혀놓자 이번에 재훈이 엉덩이는 의자에서 미끄럼틀을 연거푸 탔다. 재훈이뿐이랴. 의자에서만 미끄럼틀을 타면 좋으련만 이 자유분방한 엉덩이들은 교실 바닥에서도, 복도에서도, 심지어 계단 난간에서도 자유분방하다. 아이들의 엉덩이가 하늘 높이 치솟을수록 나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아침시간 내 의자에 앉아 있던 미소의 엉덩이에도 편견은 없었다. 교실 문을 활짝 열었을 때 내 의자에 앉아 색칠놀이를 하고 있는 미소가 보였다. 내가 “여긴 선생님 자리예요. 자기 자리로 가서 활동하세요.”라고 하자 미소는 “선생님, 그런데 왜 선생님 의자만 좋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뭐? 이 의자가 좋다고? 이 의자는 말이지, 너희가 자꾸 잡아당겨서 등받이가 등받이 노릇을 하지 못할 정도로 뒤로 휘어진단 말이야. 게다가 여기 보이니? 이 너덜너덜해진 가죽 말이야. 이 가죽의자는 너희보다도 오래전에 태어난 의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소말이 맞았다. 낡았긴 해도 아이들 의자보다는 백만배 좋지 않은가? 나에게 아이들 의자처럼 좁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근무하라고 하면 난 울어버릴거다. 하지만 여덟살의 엉덩이에게 세상은 조금 가혹한 것 같다. 어떤 엉덩이에게는 아침부터 5교시가 끝날 때까지, 때때로 어떤 엉덩이들에게는 오후4시 반 돌봄교실이 끝나기까지, 어떤 엉덩이들에게는 그 이후에도 수많은 학원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부모님을 기다려야 하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교사 의자는 반에서 유일무이의 쿠션 의자. 8살 엉덩이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아이들은 아프면 하루에도 수십 번을 말한다. 감기에 잘 걸리는 환절기 시즌이 되면 하루 거짓말 조금 보태(거짓말 아닐 수도) 100번은 시달리곤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아침 시간, 각 교시 끝나고, 우유급식 시간에도, 수업 중간중간, 집에 가는 그 순간까지 교실 앞으로 나와 이렇게 얘기한다.     

“선생님, 목 아파요.”혹은 “선생님, 아파서 글씨 쓰기 못 하겠어요. 근데... (눈치를 살피며) 이따 체육은 할 수 있어요.”등.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늘 교육시키는 것이 있는데, 겉으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세 가지 선택지를 알려주고 의사를 표현하는 연습을 시킨다.     

“몸속이 아플 땐 세 가지 중에 얘기해주세요. 

 첫째, 어디가 아파서 엎드려 있고 싶어요. 

 둘째, 어디가 아파서 보건실에 가고 싶어요. 

 셋째,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어요. 어떻게 하고 싶나요?”     


 그러면 대부분 이 세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얘기한다. 사실 세 번째 선택지가 나오면 먼저 보건실로 보내지만. 그런데 미소는 달랐다. 미소는 내 선택지를 듣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머리가 아파서 선생님 의자에 앉고 싶어요.”     

결론이 이상한 것 같지만 그만큼 교사의 의자는 매력적인 것이다(?)


 그래, 사실 의자의 쿠션 때문은 아닐지도. 왜냐하면 너희 엉덩이들은 푹신한 영화관 의자에서도 들썩들썩거리곤 했으니. 그래도 하루의 대부분을 40cm x 40cm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너희들의 엉덩이가 조금은 불쌍하단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써본 거야.     

나는 오늘도 탈출하는 엉덩이들에게 “바른~ 자세~”를 외치며 엉덩이 소환 주문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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