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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Dec 24. 2022

나는 하나도 안 건강해지는 건강검진

일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1학년 생활 중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가장 무시무시한 날을 꼽으라면 건강검진 하는 날이 1순위이지 않을까.     

 학교에서 진행되는 건강검진에는 노말모드와 하드모드가 있다. 난이도를 결정하는건 채혈검사의 방법에 따라 달렸는데, 어떤 해에는 손끝만 따끔하게 채혈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해에는 무시무시한 주사기로 피를 뽑기도 한다. (관계자 여러분, 어린이 채혈은 손끝 검사로만 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나마 손끝으로 하는 채혈검사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이 역시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겁에 질린 어린이와 함께 하는 즐거운(?) 채혈검사 순서는 다음과 같다.     



<겁에 질린 어린이 채혈 검사 순서>

1) 겁에 질린 채 숨어있는 어린이와 교사는 한바탕 숨바꼭질을 한다.

2) 교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진정시킨 뒤 품에 안고 채혈검사를 시도한다.

3) 바늘이 다가오면 활어처럼 파닥거려 채혈검사가 중지된다.

4) 교사는 부모님께 전화를 건 뒤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려주어 안심시킨다.

5) 아이는 부모님께 설득되어 포기하거나, 부모님을 설득하여 '채혈거부권'을 획득한다.

6) 설득된 아이는 아직 무섭기 때문에 ‘교사 무릎 좌석 이용권’이나 ‘손 사용권 ’등을 당당히 요구한다.

7) 교사의 OK사인이 떨어지면 품에 안겨 덜덜 떨며 주사를 맞는다.

8) 아이는 보상으로 교사의 가슴팍에 반짝반짝 눈물 콧물 훈장을 달아준다.

9) 맞고 보니 ‘하나도 안 아프다.’ 며 허세 가득 담긴 입장문을 공식 발표하며 마무리한다.


 이렇게 해서 채혈검사를 끝나면 다행인데, 부모님은 원하시는데 아이는 절대 안한다고 버티는 경우도 한 해 걸러 한 번씩 만난다. 나는 그저 힘없는 일개 교사. 공포에 질린 아이는 내 그림자에도 놀라 발길질을 하기도 한다. 작은 체구의 아이한테 맞아도 아프지만, 우람한 친구라면 더 아프다. 그래서 건강검진 날 나처럼 쪼랩 교사는 대부분 만신창이가 된다. 한 번은 자지러지게 울다 아이가 체육관 바닥에 토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하하. 그런 경우 체육관을 가득 매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은 담임교사의 몫이 된다.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채혈검사 외에 시력검사, 청력검사, 키와 몸무게 측정 등은 수월하게 넘어가지만 예상외의 복병은 소변검사이다. 남자아이들이야 교사의 별다른 도움 없이 소변을 잘 받아오지만 (아, 물론 잘 받아오는 것이 안 흘리고 온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자 아이들은 소변을 받아오는 것부터 고난의 시작이다. 일단 소변이 나오기 전 단계에선 긴장을 해서 또는 아침에 그렇게 말했건 만 이미 화장실을 갖다와서 소변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옆에서 계속 "쉬이이----- 쉬이이이-------" 소리를 내며 '소변 기원 쉿쉿송'을 열심히 불러준다. 마침내 신호가 와서 소변을 봐도 테스트기에 묻지 않아 다시 소변을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변컵을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변컵 역시 어느 위치에 놔야하는지 몰라서 직접 소변을 받아줘야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때 종이컵을 쥔 손에 느껴지는 따뜻함은 참... 기분이 묘하다. 그래서 나는 '1학년 담임교사는 그래도 여자선생님이 동성이라 더 낫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건강검진과 비슷한 류로는 불소검사가 있다. 요새는 예전처럼 강제적으로 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신청하시는 편이다. 나 때만 해도 불소검사는 입에 불이 날만큼 매웠던 것 같은데 요새는 하나도 맵지 않다. 그냥 쓴 바나나향 같은게 첨가되었고 이에 이질감이 느껴지고 끈적끈적하다. 어떻게 아냐구요? 그야 불소검사 할 때 "하나도 안 매워요. 얘들아."라고 하면 "선생님이 먼저 해봐요. 그럼 할게요."라며 꼭 물귀신 작전을 펼치니까 알 수 있답니다. 허허, 녀석들 이럴 때만 아주 효자, 효녀에요.     


 그래도 새삼 느끼는 점은 우리나라 의료복지시스템이 참 좋다는 것. 8세 이전에는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는 이상 별다른 건강검진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일학년 때 받는 국가차원의 건강검진은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때 종종 지병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년 아이들과 함께하는 건강검진은 힘. 들. 다. 증. 말.     


tip: 건강검진날은 되도록이면 아침에 오자마자 물을 마시러 보내고, 화장실을 가는 것은 잠시 참도록 얘기할 것! 그리고 교사는... 콧물 묻어도 되는 옷 입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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