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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Feb 27. 2022

8살 아이가 봄을 말했다

일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아주 작은 시골 학교이다. 도보권 내에 사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 대부분 통학버스를 타고 다닌다. 버스 기사님과 승하차 도우미분도 계시지만 종종 승하차 도우미의 결원이 생길 때 교사들이 번갈아가며 통학버스에 타기도 하는데, 그날은 내가 아침에 버스를 타는 날이었다.

 버스 제일 앞쪽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등교하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지우네 집 근처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구나. 다음에 얘기해봐야겠다.’

‘민지는 일찍 타는 구나. 아침에 학교에 와서도 멀미를 하는 이유가 있구나.’     

 이른 아침부터 어떠한 대가 없이 근무외 시간에 버스를 타야만 하는 것이 내 업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장점을 찾자면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얻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차에 타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깜짝 놀라며 반가워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교실에서와는 달리 낯설어하는 아이도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체온을 재며 말한다.     

“자, 지금 탄 친구들 안전벨트 매세요. 선생님이 확인합니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철컥’ 안전벨트를 채우면 차는 다시 출발한다. 


 빌라 앞 공터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우리 반 지율이었다. 똑같은 8살이어도 지율이는 더 순수한 면이 있는 아이였다. 말없이 옆에 다가와 내 팔을 조심스레 쓰다듬는 아이. 손이 여물지 못해 연필을 깎을 때마다 나에게 연필깎이 채 들고 오던 아이. 복도 코너에서 옷자락을 보이며 숨어있다가‘왁!’하고 놀래키기에‘으아악!’하고 내가 놀란척하면 아주아주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이.

 이내 버스가 멈추자 지율이가 누나 손에 이끌려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지율이가 무엇을 했을지 눈에 그러졌다. 지율이는 한 손에는 누나 손, 다른 한 손에는 하얀 민들레를 꼭 쥐고 있었다.      

“지율아! 안녕? 잘 지냈나요?”     

 반가운 마음에 지율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율이는 토끼 눈이 되어 나를 바라보더니 망설임도, 아무 말도 없이 민들레를 건넸다.     


지율이가 알려준 봄


“이거 선생님 주는 거예요?”

끄덕끄덕-

“고마워요.”     

 창가를 바라보며 민들레를 바라보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지율이 덕에 나도 한 손에는 체온계를, 다른 한 손에는 민들레를 들고 가게 되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아, 지금 봄이구나.’     


 교사가 되고부터 3월은 늘 가장 정신없고 바쁜 달이었다. 아이들에게‘봄’교과서를 가르치면서도 정작 나는 봄을 잊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 내게 8살 아이가 봄을 말했다.

 버스는 어느새 달리고 달려 학교 앞에 도착했다. 버스가 멈추자 먼저 내려 아이들 하차 지도를 하려고 서 있는데, 지율이가 누나를 따라가지 않고 내 옆에 와서 팔을 만지작거렸다.     

“선생님이랑 같이 갈까?”     

 지율이는 말없이 끄덕였다. 함께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교실로 들어가는데,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학교 화단에 피어있는 봄꽃들이 보였다. 아마 지율이 아니었으면 정신없이 교실로 향했겠지.     

‘정말 봄을 선물받았네.’     

 봄에 취해 지율이와 손을 잡고 신나게 흔들며 가는데, 내 손을 향한 지율이 시선이 느껴졌다. 지율이에게 민들레를 도로 건네며 말했다.     

“지율아, 선생님은 지율이한테 이미 선물 다 받았어. 그러니까 이 민들레는 다시 지율이한테 돌려줄게. 후~ 하고 불어 봐.”     

 지율이는 내가 민들레를 채 입에 갖다 대기도 전에 허겁지겁‘후! 후!!’하고 홀씨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녀석, 선생님이 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지율이 모습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나 너에게 소중한 민들레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나에게 건네줘서 고마워. 이 추억은 평생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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