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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Oct 22. 2023

미끄럼틀 위에서의 한시간

일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일 학년 아이들은 교육과정상 입학 초기 적응활동 시간을 가진다. 3월 한달간 학교 생활에 필요한 기본이 되는 모~든 것들을 익히는 시간이다. 그 시간들 중에서도 학교 공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각 공간의 명칭은 무엇인지, 각 공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이해하는 수업이 있다. 그리고 그 수업의 마무리는 항상 놀이터이다(!)

 달콤한 보상은 가장 마지막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으레 경력 좀 있는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담보로 협박(?)을 한다.     


“여러분, 지금부터 우리 학교에 어떤 공간들이 있는지, 그 공간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알아볼 거예요. 그런데 지금 다른 반은 무엇을 하고 있지요?”

“공부요!”

“맞아요. 그럼 우리 반이 지금부터 복도를 지나갈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조용히 해야 해요!”

“그렇죠. 열심히 공부하고 나면 마지막 장소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고, 가고 싶어 하는 곳을 갈 거예요. 어딜까요?”

“놀이터요!!!!!!!”     

 약속한 것도 아닌데 매해 같은 대답. 아이들은 돌고래 소리와 함께 폴짝폴짝 뛴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괜히 으름장을 놓는다.     

“과연 우리반은 미션을 끝내고 최종 장소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친구들이 얼마나 끝까지 잘하나 지켜봐야지~ 복도에선~~?”

“조용히! 사뿐사뿐!”     

 우렁찬 구호가 교실에 울려퍼진다. 내가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 비장한 임무를 수행하는 첩보요원처럼 살금살금 앞서 나가면, 아이들은 너도 나도 첩보요원이 되어 따라나선다. 따라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검지 손가락도 꼭 입술에 댄 채.     


 학교 장소를 구경시켜주는 것은 나에게도 꽤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이다. 각 장소에 도착해서 내가 "하나, 둘, 셋."을 외치면 아이들은 "안녕하세요."를 외치고 각 실을 들어선다. 각 장소에 도착하면 각 실에서는 세상 귀엽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맞아주시는데, 장소를 돌 때마다 생기는 사탕이나 캐러멜은 덤이다. 이럴 때면 왠지 모르게 내 어깨도 으쓱거린다. 그렇게 학교를 한 바퀴 쭉- 돌고 운동장으로 나오면 이미 아이들 엉덩이는 시동이 부릉부릉 걸려있다. 미소를 애써 감춘 뒤 안전교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근엄한 목소리로 "선생님을 앞서가지 않아요."라고 하면 신나서 앞서가던 아이들도 이내 내 옆쪽으로 뱅그르르 돌아온다. 너무 신나는 바람에 운동장 저만치 가 있어도 괜찮다. 꼭 깍쟁이 같은 친구가 "야! 선생님이 앞서 가지 말라잖아!" 라며 나 대신 쫓아가 핀잔을 주며 데려온다.

 아이들이야 1초라도 빨리 놀고 싶겠지만 나는 교사인데 어떡하랴. 놀이터에 가서도 이 기구의 이름은 뭔지,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교육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선생님, 상훈이 저번에 미끄럼틀 거꾸로 올라갔어요!”라는 밀고(?)를 접수하기도 한다.     

“그으래에~? 이상하다~ 우리 상훈이가~? 이제부턴 안전하게 놀 거예요. 그렇죠?”     

이름이 호명된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잠시 이른 친구를 째려봤다가 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결백해보이는 저 반짝이는 눈빛을 보라!     

‘그래, 오늘은 그럴 리 없다.’     

나도 덩달아 비장한 표정이 되어 눈빛을 주고 받는다.     

“얘들아, 지금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안전하고 즐겁게 노세요!”

“와아아아아!!!!!”     

 뛰어 노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난 일학년 전문교사야. 그러나 언제나 일학년은 나의 예상을 뒤엎는다.     

 놀이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일들이 있을까.‘뭐... 다치거나, 싸우는 정도 아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일학년은 늘 엄청나다.


 정글짐을 올라가다 흙을 튀겼다며 투닥거리는 아이들을 중재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아이들이 나를 급하게 찾았다.     

“선생님, 동훈이 울어요.”     

바라보니 동훈이가 미끄럼틀 위에서 용가리 불 뿜듯 단전에서부터 울음을 끌어올려 하늘로 내뱉고 있었다. 미끄럼틀로 향하며 알려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누가 때렸나? 어디 다쳤나?'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갔다.     

“동훈아, 무슨 일 있었어요?”

“......”

“흐음~ 동훈이~ 무슨 일일까~아요~?”

“......”     

몇차례 묵묵부답이던 아이는 한참 동안 안아주자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동훈이 왜 울었어요?”

“...무..서..”     

으잉? 무섭다고? 혼자 올라온게 아니었나?     

“동훈아, 여기 어떻게 올라왔어요?”

“혼자.”

“여기에 왜 올라왔어요?”

“미끄럼틀 타려고.”

“그런데 무서워?”     

 아이는 말없이 끄덕이며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아차, 나 말실수 했구나. 그래.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 있지. 엄마나 영양사 선생님이 주시는 한숟갈이랑 내가 먹겠다 했던 한숟갈이 다를 수도 있는 것처럼. 30년 넘게 산 내 인생은 뭐 얼마나 예상대로 흘러갔나. 8살은 더 하겠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달콤한 유혹을 해본다.     

“동훈아, 선생님이랑 같이 내려갈까요?”

도리도리-

“그럼~ 동훈이가 방금 올라왔던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볼까? 선생님이랑 같이!”

도리도리-

“그럼~~ 눈 딱 감고 한 번만 내려가볼까? 오늘 급식 맛있는거 나오는데~”     

 이런. 내 말에 겁에 질린 아이는 바닥에 납작 누워버렸다. 진짜 눈 감으라는거 아닌데... 아이는 미끄럼틀 난간을 부여잡으며 온 힘을 다해 내려가기를 거부했다. 이제 곧 급식시간인데... 열체크도 해야 하고... 손도 씻기고... 알림장도 오래걸리는데...     

한참을 밑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 배고파요.”     

그래. 나는 동훈이만의 선생님이 아니라 우리반 모든 친구들의 선생님이다. 안되겠다 싶어 동훈이 아버지께 전화 드리기 위해 핸드폰을 가지러 도로 내려가려는데 동훈이가 무섭다며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놔주지 않는다.      

“동훈아, 잠깐만 갔다올게.”

“으-어어어어어어어어엄마아아아아.”     

 어떡하지. 동훈이와 함께 미끄럼틀 감옥에 갇혀버렸다. 내려쬐는 햇살에 잔뜩 찌푸린 얼굴로 미끄럼틀 위를 올려다보며 세아가 말했다.     

“선생님,  언제 가요?”

‘얘들아, 나도 가고싶어...아니... 울고 싶다. ’     

아니, 괜찮다. 나는 노련한(?) 일학년 교사니까.     

“흠흠, 선생님한테 핸드폰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

“저요. 저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영이에게 핸드폰을 전달받았다. 아버님께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으셨다. 교무실도 마찬가지.


‘이런. 교무실은 벌써 급식시간이구나!’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다시 미끄럼틀 아래를 향해 외쳤다.     

“급식실에서 아무 남자 선생님 놀이터로 데리고 와줄 수 있는 사~람~”

“아무나요?”

“네. 남자 선생님이요!”     

 이름을 호명하자마자 씩씩한 준수가 총알같이 달려갔다.     

‘여기서 급식실 가는 방법을 알려나?’     

 걱정도 잠시 준수는 의기양양하게 남자 선생님 한 분을 모셔 왔다. 남자 선생님이 놀이터에 들어서자마자, 미끄럼틀 아래 있던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몰려들어 쫑알쫑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미끄럼틀 위로 올라오신 선생님을 바라보는데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인가. 아까 학교 돌며 어깨 으쓱했던 거 취소.     

“선생님, 식사 중에...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대화를 길게 할 시간은 없다. 점심시간은 이미 시작되었으니까! 그러나 선생님과 아무리 낑낑거려도 아이는 요지부동. 동훈이의 발차기는 이소룡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안...되겠는데요..”

“그러게요... 어쩌죠...”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 싶어서 우선 기다리는 아이들의 급식 지도를 부탁드렸다.     

“선생님, 애들 손씻기랑 열체크를 못해서요. 부탁드려요 . 진짜 죄송해요~”


 남자 선생님을 쫄래쫄래 따라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동훈이 아버지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버니임!!!!!”

‘오. 신이시여, 아버님과 통화가 연결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동훈이 아버님이시죠~ 지금 동훈이가 미끄럼틀 위로 올라왔는데, 내려오는게 무섭다고 그래서요.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예? 미끄럼틀이요?”     

 아버님은 적잖이 당황하셨고, 동훈이는 전화기를 건네받자 들려오는 아버님 목소리에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전화 통화 내내 들썩이는 동훈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손그늘을 만들어줬다.     

 긴- 통화 끝에 아버님이 학교로 오시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동훈이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어색해 동훈이에게 말을 걸었다.     

“하핫, 동훈이랑 둘이 대화할 시간이 생겼네~”     

 묵묵 부답. 선생님이 눈치가 없었네. 지금 넌 얘기하고 싶지 않겠지. 멋쩍은 마음에 운동장만 바라보는데, 그새 밥을 먹은 학생들이 너도나도 달려나왔다.     

“선생님, 거기서 뭐하세요?”

“응~ 동훈이랑 동훈이 아빠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은 미끄럼틀 못 타겠다.”

“네.”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다 이해한 듯 다른 쪽으로 가서 놀았다. 우리 반 아이들도 몇 명 나와 나를 응원하고 돌아갔다. 잠시 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자동차 옆으로 모래바람이 일었다.     

“아버니임! 여기에요~~!!”     

 조난된 사람 마냥 미끄럼틀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헐레벌떡 달려오신 아버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린 뒤 서둘러 아이들이 있는 급식실로 달려갔다.     

‘안 싸웠나, 밥은 잘 먹고 있나.’     

급식실 문을 벌컥. 아이들은 아무일 없다는듯 얌전히 앉아 잘 먹고 있었다.     

'다행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급식 검사를 맡고, 동훈이의 안부도 물어봤다.     

“잔반 밥알 한톨도 없이 정리해서 다시 와 주세요.”

“네, 동훈이는 아버지랑 같이 있어. 괜찮아요~”

“글쎄? 집에 갔을진 잘 모르겠는데...”

“주세요~ 요구르트 까줄게요.”     


 정신없이 밀려있던 퀘스트를 수행했다. 채 몇 술도 뜨기 전에 동훈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급식실로 왔다. 아버님은 오늘은 수업 참여가 어려워 집으로 가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눈물+콧물 자국으로 얼룩진 얼굴을 보며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배웅을 하고 자리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 끝나기 오분 전.      

‘안돼! 5교시 아직 준비물 다 못 챙겼는데!!’     

 부리나케 한 숟갈을 털어넣고 교실로 향했다. 다음 시간 준비물을 급히 챙기고 있는데, 세아가 쪼르르 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힘들었죠?”     

 머리를 쓰담쓰담. 순간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5교시를 준비하는 손놀림이 더 바빠진다.     

“고마워요. 사실 선생님 힘들었는데 세아가 방금 위로해줘서 힘이 났어.”     


 오늘도 노련한(?) 일학년 교사는 엄청난 일학년에게 당했다. 각 교실을 돌며 배우고 성장해야 했던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쩌면 나였을지도. 매해 일학년을 해도 매해 새로운 일이 있고 매해 아이들은 나에게 또 다른 성장과 감동을 준다. 이래서 일학년 교사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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