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3월 개학을 시작한 첫날이었다. 당시 새로 근무하게 된 학교에는 병설유치원이 딸려있어 신입생의 일부분은 이 학교 병설 유치원을 거쳐 1학년으로 입학했다.
“저 녀석 요주인물이야.”
새로운 학교로 부임해 학교 실정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 지나가던 선생님이 한 마디 해 주셨다. 바가지 머리에 복도에서 주먹을 쥐고 허공에 날리는 아이. 그것이 재우의 첫 모습이었다.
며칠 지내보니 그 선생님께서 왜 그런 얘기를 해 주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아이는 정처 없이 떠다니는 철새 같은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그랬고 가정에서도 그런 듯했다.
며칠 뒤 등교시간이었다. 재우가 아침부터 학교 현관에 앉아 교실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화가 단단히 난 채였다. 주변 사람들이 일으켜 세워 보려고도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재우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 시선을 바라보는 내가 다 따가울 만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 가고 재우와 나, 둘만 남았다.
수업도 시작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지만 묵묵부답. 시간은 내 심장소리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다 ‘무슨 일이 이 아이를 이토록 화나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에서
‘왜 이 아이는 지금 여기에 이렇게 서 있을까? 혹시 내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게 있을까?’로 생각이 이어졌다.
입술만 옴짝달싹하기를 몇 번, 봉선화 씨 터지듯 툭 - 말을 던졌다.
“재우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은 재우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
밑도 끝도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재우는 한참 날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말했다.
“선생님은 제 말 믿어줄 거예요?”
아이는 이해를 바라고 있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고작 8살 아이가 이 한마디를 뱉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걸까.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재우 옆에 쭈그려 앉았다. 같이 땅바닥을 바라보며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고 아이는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꽤나 상세하게 나열했다.
대화를 하고 싶었겠지. 답답했겠지. 어른들은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어린이에게 명령만 늘어놓으니까.
“속상했겠다. 선생님이라도 속상했을 거야.”
딱히 떠오르는 위로의 말이 없어서 그저 속상했겠다는 말만 되뇌었다. 오히려 재우는 어른스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것도 잠시 얘기 몇 분 들어준 게 무슨 대수라고 못난 나는 재우에게 못난 어른의 부탁을 했다.
“이제 수업 시작해야 하니 교실에 같이 들어갈까요?”
아이는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게 참 고마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