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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Oct 03. 2022

아주아주 무우서운 이야기 (어린이, 노약자 모두 환영)

일 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일 학년이 들려주는 무우서운 이야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참! 무서운 이야기 못하는데, 자꾸 무서운 얘기 해달라고 하는 주변 사람에게 누구나 한 번쯤은 사용할 수 있는 꿀팁도 알려드리니 끝까지 정독 필수! 




 오늘처럼 먹구름이 잔뜩 끼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만국 어린이 공통법 1조 28항이라도 되는 듯 아이들은 “선생님, 무서운 이야기 해 주세요.”라고 한다.

 사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어렸을 적 겁이 워낙 많기도 했고, 타의에 의해 무서운 이야기를 듣게 될 때면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린 채 “음~~음~~” 소리를 내며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이야기가 끝났나 싶어 손을 조심스럽게 떼면 “웍!!!!” 하는 선생님의 소리에 놀라 뒤로 나동그라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도무지 무서운 이야기가 어떻게 내용이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다. 

 겁쟁이 어린이는 커서 겁쟁이 어른이 되었다. 그런 내가 교사가 됐으니 무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은 잘 모르는데~ 무서운 이야기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개중에 이야기꾼 한 명이 나와 “이건 내가 아는 언니가 겪은 이야기인데 ~” 라며 운을 띄운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겁쟁이 어린이들은 주먹을 꼭 쥐거나, 당장이라도 두 귀를 틀어막을 수 있게 양손을 얼굴 근처로 올려대거나, 고개를 숙인 채 두 눈을 치켜뜨고 이야기꾼을 바라보며 세모 눈썹이 되곤 한다. 하지만 1학년이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만큼 무섭지 않은 이야기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때만큼은 용감한 선생님(?)이 되어 겁쟁이 한 두 녀석을 양팔에 품고 이야기꾼을 바라본다.     

 

“이건 내가 아는 언니가 실제 겪은 이야기래.”

“누구? 민지 언니?”

“아니? 딴 언니 있어.”

“누구?”     


 교실에서 들을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는 중간중간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스무고개가 되곤 한다. 그래서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즈~~언혀 무르익지 않는다.     


“자, 얘들아. 이야기 들을 때는 질문하지 않고 일단 들어보는 거에요.”

“네~”     

 다시 한번 분위기를 잡아주면, 동그랗게 모여 앉은 아이들은 다시 온몸을 잔뜩 웅크린 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지솔이 언니가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리창 너머로 까만 뭔가가 보였대! 그게 뭐였는 줄 알아?”

“뭔데?”

“창밖에 귀신이었대.”

“진짜?”

“그래서?”

“끝인데요?”

“그, 그... 래?”     


 보통의 8살 입에서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는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묘사라던지, 이야기의 기-승-전-결에서 '승'또는 '전'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품에 폭 안겨있던 겁쟁이 어린이들은 김이 팍 샜다는 듯 품을 빠져나온다.      


“에이, 시시해.”

“또 다른 무서운 이야기 아는 사람?”

“저요!!”

“그래, 지혜가 해보자.”

“어떤 마을에 빨간 마스크를 쓴 사람이 있었대.”

“나 그거 알아.”

“나도, 나도”

“얘, 얘들아, 알아도 들어보는 거에요!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잖아.”

“네~”

“근데, 그 빨간 마스크를 쓴 사람이 돌아다니다가 사람을 만나면 "나 예뻐?"하고 질문을 한대. 그럼 어떻게 하는 줄 알아?”

“예쁘다고 하면 똑같이 입을 찢어버리잖아.”

“응, 그리고...”

“안 예쁘다고 하면 칼로 찔러 죽이지?”

“응...”     


 결국 이야기는 모두에 의해 완성이 돼버리고, 이야기를 시작한 아이는 멋쩍어지고 만다. 아이들은 실망감을 가득 담아 고릴라처럼 가슴을 치며 “재미없어!”를 연달아 외친다. 그럴 때 즐겁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수업을 시작하는 나만이 써먹는 무서운 이야기 필승법이 하나 있다.      


“얘들아, 선생님이 지인짜 지인짜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

“네!!!!!!”

“흐음~ 불을 꺼야 하는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교실 불이 후다닥 꺼진다. 동그랗게 몰려 앉은 아이들의 잔뜩 긴장한 어깨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모두가 조용해질 때까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을 시키는 것은 필수이다. 교실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모두의 눈동자가 나를 온전히 바라볼 때 비로소 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얘들아... 이건... 선생님이 대학교 때 실제로 겪은 일이야..."

"그날.. 선생님은... 도서관에서... 새벽 늦게 까지... 공부를 했지..."

"그리고 밤 12시쯤 되었을 때... 서둘러 짐을 챙겨 기숙사로 향했어..."

"기숙사로 가는 길은... 아주... 어둡고... 중간중간... 가로등 불빛만 어쩌다 있었어...."

"비도...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지... 마치... 오늘처럼 말이야..."

"그런데... 저... 멀리... 어떤 여자 한 명이... 걸어오는 거야... 비를 맞으면서..."

"뭐지? 하면서 그 여자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

.

와아아아악!!!!!!!!!"


모두가 조용해진 그 순간 갑자기 와악!하고 외친 나의 고함에 교실은 온통 울음바다가 된다. 


"선생님 미워요. ㅠㅠㅠ "

"선생님때매 놀랐잖아요. ㅠㅠㅠㅠ "



"푸하하하. 놀랐죠? 자, 이제 공부합시다."


훗.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매해 아이들을 놀라게 하는 데 성공했던 성공률 100% 겁쟁이 교사의 무서운(?)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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