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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Nov 03. 2022

8살, 그 공개수업의 똥꼬발랄함에 대하여

일 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학부모 공개수업의 계절이 다가왔다. 학교에 따라 횟수는 다르지만, 공개수업의 종류에는 학부모를 초청하는 학부모 공개수업과 동료 교사에게 공개하는 동료장학수업, 그리고 부설초등학교나 실습 대용 학교 등에서는 실습생에게 공개하는 실습 공개수업 등이 있다. 

 사실 학부모님들께는 유감스러운 얘기이지만, 공개수업에서 보이는 자녀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 후훗. 공개수업에서 수업에 집중하고 말을 잘 들었다고 해서 평소에도 내 아이가 항상 선생님 말을 잘 들을 거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만일 공개수업에서 내 아이가 난리를 쳤다면... 평소에는 난리 난리 생난리부르스를 칠 가능성도 있다(!) 차라리 내 아이의 학교 생활이 궁금하다면 공개수업보다는 가끔 내 아이에 대해 걸려온 교사의 전화 한 통화에서 더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교사가 수차례 고민하다 건 전화에 아이의 개선점 하나가 들어가 있다면 정말 꼭 고쳤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용기 내어 전화한 거랍니다.. 정말이에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학년 공개수업은 꼭 참관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면 1학년 공개수업만이 가지는 귀엽고, 빵 터지는 순간들을 1학년 교사들만 보긴 아까우니까.     


 공개 수업하는 날이 되면 1학년 교실에서만 느낄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머리에 잔뜩 왁스를 바른 뾰족 머리 친구들이 보이기도 하고, 공주풍 옷을 입고 아침부터 “선생님, 이 옷 예쁘지요?”라며 재잘거리는 친구들도 있다. 아침부터 의기소침해서 “우리 엄마 바빠서 못 온대요.”라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친구들도 있다. 그럴 때면 “괜찮아, 꼭 오셔야 하는 거 아닌데! 선생님 가족도 아무도 안 오는데!?”라고 그럴싸한(?) 위로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개수업 시작에 앞서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오시기 시작하면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가 생긴다. 때로는 바쁜 일정을 조율해서 긴박히 도착한 엄마를 발견하면, 나에게 매달려 울고 있던 아이가 포르르 엄마에게 달려가 꺼이꺼이 울며 투정의 토닥질을 하기도 하고.


 코로나 시기부터는 제한이 있었지만, 예전만해도 부 또는 모 뿐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까지 온 가족이 대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 1학년 공개수업은 교사, 학생, 학부모 (+ 몰래 염탐하러 오는 관리자분들까지) 도합 100명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학급 대잔치인 것이다. 그래서 1학년 교사에게 공개수업은 입학식 다음으로 신경 쓰이는 연례행사다.     


 학부모님들이 오시고, 수업을 시작하려고 해도 아이들의 눈은 이미 뒤통수에 달려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냥 포기하고 이렇게 얘기한다.     


“얘들아, 뒤에 오신 어른들에게 지금 인사하세요! 지금! 인사하고 나면 선생님 바라보고 멋진 모습 보여주는 거예요. 알았죠? 5초 줄게요!! 안녕하세요~”     


 그 5초간 아이들은 교실 뒤편의 어른들을 바라보며 온 힘 다해 팔을 흔들어 재낀다. 이때만큼은 학부모님도 빙그레 미소를 지어주신다. 그렇게 공개수업을 시작하면 교사에게는 아주 막중한 미션이 생긴다. 바로바로 ‘단 한 명의 아이도 빠짐없이 발표시킬 것!’


 사실 ‘내 아이 발표하는 모습 한 번 보는 것’이 빠듯한 일정을 조정해가며 오는 학부모님의 목적임을 알기에 교사는 더더욱 부담을 느낀다. 그나마 학생수가 적은 소인수 학급이면 발표시킬 기회가 충분하지만, 과밀학급이면 누가 발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암기해야 하는 기억력 싸움이 된다. 게다가 질문별로 난이도가 달라서 쉬운 질문은 손을 잘 안 드는 친구들 위주로 시켜야 하고, 어려운 질문은 평소 발표를 잘하는 친구들을 시키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발표를 잘하는 친구들이 순서가 오기도 전에 토라져 버린다는 것. 그래서 공개수업 전에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얘기한다.     


“여러분, 우리 반은 모두 몇 명이지요?”

“28명이요.”

“맞아요. 그러면 여러분이 손을 몇 번을 들어야 선생님이 모두에게 발표를 한 번씩 시킬 수 있을까요?”

“28번이요!”

“맞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손 들었었는데, 선생님이 안 시킨다고 토라지지 않고 28번 동안 마구마구 손 들어주세요!”     

 이렇게 신신당부를 해도 몇 차례 손을 들던 아이는 이내 토라져서‘나 삐졌어요.’를 온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때로는 부담감 때문에 수업 내내 요지부동으로 발표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의 경우 보통 평소에도 발표를 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공개수업처럼 시선이 집중될 수 있는 발표에는 손 들기를 더 어려워한다. 그럴 때 나는 죄송함의 눈빛을 학부모님께 보내기도 하는데, 어머님도 그러려니 이해해주시는 것 같지만 아쉬운 눈빛이 역력하다.


 어찌 됐건 머리 쥐 나게 발표를 시키고 나면 어느새 수업이 끝나 있고, 학부모님들은 담임 교사에게 인사를 하러 오시기도,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기도 한다. 종종 아이의 가방을 챙기며 “이제 가도 되나요?”라고 물어보시는 부모님도 계신다. 그럴 때면 “학부모님! 정규수업은 5교시까지입니다. 평소랑 똑같이 귀가합니다.”라고 말씀드리는데, 그런 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를 보면 괜시레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보통의 공개수업은 이 정도로 마무리되긴 하지만, 때때로 공개수업에서도 1학년은 똥꼬 발랄하다.




 그날도 교실 뒤에는 가득 학부모님들이 오셨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바른 자세로 허리를 세워가며 내 말에 집중하는 척(!) 했다. 하지만 고개는 자꾸만 뒤를 향했다. 그래서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얘기했다.     

“얘들아, 뒤에 오신 어른들에게 지금 인사하세요! 5초 줄게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신 뒤에 계신 부모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아이들 사이로 규영이가 벌떡 일어났다. 인사를 하던 어른들의 시선이 모두 규영이에게 향하자, 규영이는 씨익 웃더니 두 손을 모아 권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손목을 까딱거리며 학부모님 한 명 한 명에게 사랑의 총알을 쐈다.     


“피융! 피유웅!”

“규, 규영이... 뭐하나요..?”

“총 쏴요!”

(아니...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

“규영이 자리 앉으세요.”

“네.”     

 자리로 돌아가는 척하던 규영이는 아직 총알을 못받은 모두에게 사랑의 총알을 쏘다 나에게 재지당했다. 아쉬웠던 규영이는 수업 중간 중간 일어서서 개다리 춤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옆반 선생님의 동료 장학 시간이었다. 가족과 있었던 즐거웠던 경험을 떠올려 활동지에 써보는 시간이었는데 뒤 쪽에 앉아있던 민재가 활동지를 골똘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민재야. 활동지 다했니?”

“아니요!”

“가족과 즐거웠던 경험을 쓰는 거야.”

“즐거웠던 경험이 없는데요?”

“흠, 흠.”     


 당황하신 선생님께서는 골똘히 생각하시더니 다시 질문하셨다.     


“최근에 가족과 있었던 일 중에 기억나는 일은 없니?”     

골똘히 생각하던 민재가 별안간 떠올랐다는 듯 얼굴이 밝아졌다.     

“있어요!”

“뭔데?”

“아빠가 음주운전을 몰래 해가지고요~ 엄마가 아빠 등짝을 쫙! 때린 거요.”

“아...”

.

.

.

.

.

.

(아버님. 음주운전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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