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교시 Sep 06. 2022

우리 교실에도 태풍이 왔다.

일 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매주 화요일 2교시. 주당 23시간의 수업 중 유일하게 외부 국악 강사가 와서 수업을 진행하는 시간이 있다. 전담시간이 없는 나에겐 한 몸에 받던 시선을 잠시 분산시킬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국악 시간이 되면 나는 뒤편에 앉아 아이들을 관찰하며 기록하거나, 소고 연주나 박자 치기 등의 신체활동을 따라갈 수 있게 보조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럴 때면 관찰자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강사님을, 수업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 학교에 오시는 국악 강사님은 한 번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무섭게 하신 적이 없지만, 시원시원한 발성 탓에 아이들은 늘 주눅이 들어있다.

 열채를 들고 열심히 선창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면 수업 후 나에게 쪼르르 다가와 귓속말로     

 “선생님, 왜 국악 선생님은 맴매 들고 수업해요?” 라던지

 “선생님, 국악 선생님 무서워요.”라고 하기도 한다.     

“국악 선생님이 왜 무서워요?”하고 반문하면 아이들은 몇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곤 한다.

     

"얼굴이 무서워요." (X) -> ‘응, 아니야. 화장이 진하신 거야.’

"소리를 질러요." (X) ->‘응, 아니야. 국악 창법이 원래 그런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면 국악 강사님 입장에선 꽤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도 그렇다는 사실.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하며 절로 움츠러들게 되는 것은 왜일까. 어찌 됐건 전문성을 가진 예술인의 카리스마에 주눅이 드는 건 나같은 쪼랩 교사나 애들이나 매한가지인 듯하다.     


 검색 포털 사이트 메인과, 뉴스 헤드라인에는 하루 종일 힌남노 태풍에 대한 얘기들이 가득했다. 다행히도 우리 지역은 예상보다 큰 피해 없어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태풍은 아이들 마음에 남았나 보다. 아침 등교의 순간부터 "아, 이게 진정한 태풍의 소용돌이구나."를 몸소 느끼게 해 주었다.

 흠흠. 교사들은 이것을 전문용어로 '날궂이'라고 하는데, 날씨가 흐리면 출퇴근 길에서 먼저 '오늘은 또 애들이 어떤 사고를 칠까.'를 걱정하곤 한다.

 어찌 됐건 등장부터 떠들썩했던 힌남노 태풍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우리 반 아이들은 바다 위에 포류 하는 돌고래 떼가 되어 교실 여기저기를 초음파로 채웠다.


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얘들아, 국악 선생님 곧 오실 시간이에요. 화장실 다녀오고 자리에 앉으세요.”     

그리고 잠시 뒤 국악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다행히도 차분하게 수업은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제재곡(그날 수업의 주제곡)을 몇 차례 반복해 부르자 아이들 마음에 다시 태풍이 불기라도 한 걸까? 소고를 제멋대로 두들겨 대며 음악에 심취해 있는 아이들의 몸부림을 보다 못한 국악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마안!!!!!!!!!!!!”     

교실은 잠시 적막이 흘렀다.     

“여러분, 오늘 왜 이럴까~요? 선생님이 여러분한테 한 번도 화를 안 내서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죠? 선생님이 화가 나면 아~주 무서운데 말이야.”


‘평소에도 무서운데 화를 내신다면?!?!?!’     

 아이들의 머리 위로 생각 주머니가 마구마구 팽창하는 게 보였다. 국악 강사님의 카리스마에 눌린 아이들은 두 눈만 껌뻑이며 국악 강사님을 바라봤다. 강사님은 아이들 눈을 한 명씩 주시하시며 마지막 끝엔 온몸으로 태풍을 표현하던 민준이와 눈을 마주치셨다.     

“너! 그래, 너 말이에요. 선생님이 화나면 어떨 거 같아요?”     

 강사님은 어떤 대답을 생각하고 물어보신 걸까? 머뭇거리던 민준이가 대답했다.

.

.

.

.

.

.

.

.“마.. 마귀 같을 거 같아요!”     


아뿔사,  나는 조용히 뒤돌아서서 입을 틀어막았다.

이전 10화 아주아주 무우서운 이야기 (어린이, 노약자 모두 환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