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선생님 스무살 같아요.”라던지 “선생님은 왜 이렇게 예뻐요? 공주님이에요?”와 같은 얘기를 할 때면 “정말? 고마워요!!” 했다가 “얘들아, 다른데 가서는 얘기하지마... 선생님 욕먹어...”라고 신신당부를 하게된다. 하지만 입가의 미소가 잠자리에 들기 전인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 보면 나도 참 어지간히 양심도 없고 주책맞은 선생님인가보다. 아이들에겐 나이 개념도 없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멋지다고 생각하기에 별 의미없는 말인걸 알면서도 말이다.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은 똑같은 여덟살 이어도 천차만별이고, 매해 다른 빛깔로 나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그래서 나도 매해 아이들과 다른 빛깔의 사랑에 빠진다. 공무원이 월급 따박따박 받아가며 무슨 아이들과의 사랑을 논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월급인으로서 일하는 거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할까?’싶을 때가 많다. 노력한다고 월급봉투가 더 두툼해지지 않는 공무원이니 더더욱.
그래서 사랑에 대한 진부하고 철학적인 사유가 아닌 사전적 정의라면 부끄럽지 않게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슬프게도 지금은 그런 마음가짐이어야만 교사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시대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대한민국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선생님들 중에는 그저 월급으로는, 안정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습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아이들한테 정 안줘.”라고 말하는 한참 선배 선생님이 계셨다. 하지만 나는 그 선생님이 업무처리하기에도 빠듯한 방과후 시간을 쪼개어 구구단이 되지 않는 학급내 아이를 따로 남겨 지도하시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다.
며칠간 야근을 했던터라 오늘만큼은 야근을 하지 않겠다던 동료 선생님은 종업식을 앞둔 날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영상을 제작하며 야근을 하셨다. 같이 학년 연구실에 남아 컵라면을 먹으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거 만들고 있냐.”라고 스스로 자조하면서도 “그래도... 내일 애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네.”라며 편지와 영상을 완성하셨다.
때로는 그 애정이 화살로 돌아와 “왜 우리 아이를 스트레스 줘가며 방과후에 남겨 지도하느냐.”라거나, 밤을 새워 정성스레 선물한 영상에 “왜 다른 아이는 두세번 나오는데 우리 아이 사진은 한 번 나오느냐. 우리 아이만 차별한다.”는 민원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고마워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쉽게 놓아버리지 못하는게 교사, 아니 선생님의 마음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들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다. 일부 자질이 부족한 교사들로 인해 전체가 가리워지기도 하지만.
몇 해 전의 일이었다. 쉬는 시간 마다 아이들끼리 모여 한참 무엇인가를 그리며 저희들끼리 소곤거렸다. 뭐하고 있나 싶어 다가가니 지율이가 한사코 등을 떠밀며 절대 오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 허술함에 눈치를 채긴 했는데, 이 정도로 로맨틱할 줄은 몰랐다.
이 사진은 정말 수년째 내 핸드폰 배경화면.
알림장을 쓸 때도 그들의 로맨틱함을 볼 수 있다. 어떤 해에는 알림장을 쓰는 순간순간 나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주던 아이들이 있었다. 줄줄이 사탕처럼 서 있는 아이들 중 한 명이 알림장 검사를 맡을 때마다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내가 댓글을 달아주자 한 명은 두 명이 되고, 두 명은 세 명이 되고, 나중에는 열 댓명이 되었다. 이내 나는 ‘사랑수치과다’로 답글을 달다 쓰러질 뻔했다.
8살의 로맨틱함은 공부를 할 때도 멈추지 않는다. 교과서에 문장 완성하기 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여러 제시어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수업시간에_________.”였다. 발표하고 싶은 사람 손을 드는데 실물화상기에 교과서를 펼쳐 보여주다 난 또 그만 사랑에 빠졌다.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을 돌봄교실에 보내 놓은 뒤, 6교시 보결수업을 들어갔다. 보결수업이란 동료교사가 개인사정등으로 수업에 차질이 생겼을 때, 서로서로 돌아가며 대신 수업을 들어가는 일종의 수업 품앗이다. 수업을 들어가게 된 반은 마침 4학년, 내가 이 학교에 처음 발령받고 맡았던 아이들이었다.
‘얘네들이 벌써 이렇게 컸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과 반가운 마음에 잠시 인사를 나누고 수업을 시작했다.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4학년 아이 중 한 명이 말했다.
“선생님, 누구 왔는데요?”
앞문을 바라보니 불투명 유리 사이로 조그만 그림자 하나가 머리통 하나만큼 아른거렸다.
‘누구지?’
“네~ 들어오세요~”라고 하자 앞문이 열리더니 아라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아라는 문틈 사이로 4학년 언니, 오빠들을 흘긋 보더니 얼굴을 내민채 날 보고 ‘흥칫뿡!’표정으로 소리치듯 말했다.
“선생님! 사랑해요!!”
“네?;; 갑자기요?!”
“네에.”
“고... 고마워요; 서... 선생님도요~ ^^”
“네에.”
그 날 오후 돌봄교실이 끝나고 통학버스를 타러 나가는 아라가 나에게 인사를 하러 다시 교실에 들렸다. 아까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물어봤다.
“아라야~ 아까 선생님한테 왜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아라가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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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다른 반 갈까봐요!”
내가 이렇게나 소중한 선생님이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