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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Jul 31. 2022

나도 모르는 사이 어마어마한 숙제를 내버렸다.

일 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어렸을 적 “선생님은 도대체 숙제를 왜 내주는 걸까? 나는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 절대 숙제 내주지 않을 거야!”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지금은 나도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이 되었다. 하하.      

 내가 숙제를 많이 내는 선생님인가? 생각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지역별 편차가 있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숙제를 별로 달가워 하시진 않는 것 같다. 소도시의 작은 시골 학교니까. 그래서 나는 보통 수학 진도를 나간 날에는 수학 익힘 1장을 내거나,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받아쓰기 시험 준비를 위한 글씨 쓰기를 두 차례 정도 내는데 가끔은 국어활동 숙제를 내기도 한다.

     

 '국어활동이 무엇이지?' 궁금할 수도 있어 교과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초등학교 1~2학년의 경우 국어/ 수학/ 통합교과/ 안전한 생활 총 4과목으로 교과서가 구성되어 있고 좀 더 자세히는 국어 가, 나, 국어활동/ 수학, 수학 익힘 / 통합교과는 계절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성되어 있다. 통합교과는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이 짬뽕된 교과서이다.

 그중에서도 국어 활동은 국어 교과서에서의 내용을 복습할 수 있는 내용인데, 비슷한 류로는 수학 교과에서 수학 익힘이 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국어시간이었다. 국어 한 단원이 끝나서 국어활동에 있는 문제를 풀며 마지막 문제를 개별로 검사를 해주었는데, 열이면 열 푸는 속도가 제각각이었다.     

“선생님. 다 풀고 뭐해요?”     

제일 먼저 문제를 푼 준수가 나에게 물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9시 30분. 1교시가 끝나려면 10분이 더 남았군. 잠시 고민은 했지만, 나는 언제나 노련한(?) 1학년 교사다.     


“네, 문제 다 푼 사람은 긴 바늘이 8에 갈 때까지 국어활동 94쪽 바른 글씨로 쓰세요.”     


 국어활동 책 가장 뒤편에는 저학년 아이들의 바른 글씨를 위한 글씨 쓰기가 부록처럼 들어가 있는데, 아이들의 푸는 속도가 제각각일 때 쉬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종종 활용한다.      

‘에휴, 애들 좀 놀게 내버려 두면 안 돼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끝나가는 아이가 한 명, 두 명 늘 수록 교실이 혼돈의 카오스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면 결국 깍쟁이 친구들이 꼭 “선생님,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하겠어요.”라고 하니까. 그리고 꼭 일찍 끝내주면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쉬는 시간 확보를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국어책에 글씨를 휘갈긴다.      


‘얘들아... 이거 바... 바른 글씨 쓰... 기인데... ’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꼭 덧붙이는 주의사항도 있다.     

“선생님이 나중에 확인할 거니까 또. 박. 또. 박. 써 주세요.”라고 덧붙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인다. 또박 또박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또. 박. 또. 박.이라고 입으로 망치질 좀 해 줘야 아이들은 한숨을 지으며 지우개를 집어 든다.     


‘와하하! 아이들의 눈에는 이런 나의 천사 같은 미소가 악마의 미소처럼 보이겠지?!’   

  

 그렇게 정신없이 개별 채점을 하던 중 9시 40분이 되었다.      

“쉬는 시간입니다. 화장실 다녀오세요.”     

 그때 민수가 손을 들고 얘기했다.      

“선생님, 저 다 못 썼어요.”     

하지만 나는 노련한 일학년 교사다. 당황하지 않은 척,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응한다.     

“네, 지금 국어활동 가방에 넣으세요. 알림장에 써줄 테니 94쪽 다 써오세요.”

“네~”     

 내 책상 앞에 쫄래쫄래 줄을 서서 국어활동을 검사 맡으려던 아이 세네 명은 소리를 지르며 국어활동 책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때 좀 더 친절했어야 했다. 일학년은 늘 상상 이상이니까.     


다음 날 아침 1교시 국어시간이 되었다.      

“지난 시간 국어활동 다 써왔나요? 94쪽 확인할게요. 숙제 안 해온 사람?”     

몇몇 단골손님(?)을 제외하고 새로운 손님이 생겼다. 나는 토끼눈이 되어 상현이를 바라봤다.     

“어? 상현이 왜 숙제 안 했나요??”

“자꾸자꾸 해도 숙제가 너무 많아서요.”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뭐?!!! 말도 안 돼.  너 인생을 아직 8년밖에 안 살아봤다지만 너무 양심이 없는 거 아니니? 고작 국어활동 반쪽이었는 걸!? 인생이란건 훨씬 더 힘들다고! 국어활동 반쪽 정도 숙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 선생님이 아침에 숙제할 시간 줬는데? 그때 숙제 하고 있는 거 다 봤는데!? 근데 왜 못했지!? 20분이면 할 수 있는 건데 어째서!?’     

 요동치는 마음속으로 무한 따발총을 내뱉으며 나는 상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상현이 책을 확인하기 위해 들었다. 그때 상현이가 말했다.     


“열심히 해봤는데 34쪽까지 밖에 못 풀었어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듯 웃는 저 김상현을 보라.

      

‘으... 응? 34쪽...?? 그... 그러니까.. 우리가 어제 1단원 끝나서 국어활동을 13쪽까지 풀었단 말이지...? 그런데... 34쪽까지... 풀었다고..? 어째서...? 왜?.... 아, 아아.... ’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상현이는 34쪽까지 모두 풀어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이었다. 아이는 어젯밤 날 얼마나 원망했을까. 마귀할멈 같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국어활동 한 권을 하루 만에 다 풀라고 한 셈이니 말이다. 때로는 어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떤 아이들의 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미안하고 몸 둘 바를 몰라 그저 상현이 손만 조물조물 주물러주었다. 


“에고, 손 많이 아팠지?”

“괜찮아요.”

“당분간 국어활동 숙제 안 해도 되겠네...”

“오예~”     


 내 미안한 표정을 본 녀석은 밝게 오예를 외쳤다. 그 어마어마한 숙제를 내준 악마 같은 선생님에게 다음날 아침 등교해서 씩씩하게 인사하고, 아침시간까지 최선을 다해준 녀석의‘오예~’를 나는 아마 교직이 끝날 때까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꿀팁!     

*그 뒤로는 숙제를 내며 학기초 몇 번 정도 숙제 페이지마다 동그라미 치는 연습을 시켜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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