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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보너스 받는 아이들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것이지요.

by 늘봄

브런치에서 만난 한 작가님께서 올 추석을 보내는 소회를 글로 쓰시며 남겼던 어릴적 에피소드를 읽고 내내 내 머리속에 남아있었다.


중학시절 아버지 형제분들께서 추석에 조카들에게 용돈 쥐어주는 것을 더이상 하지말자고 합의하였다는 말에 청천벽력 같았다는 어릴적 에피소드가 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우리 막내 아가씨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그 옛날에도 있으셨구나 싶어 다시 한번 씁쓸한 미소를 짓게 했다.


꽤 오래전 일이다. 그날도 추석날 오후에 아주버니 댁에 온 막내 아가씨 가족과 저녁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가는 길에 서로 마치 통과 의례처럼 아이들에게 용돈을 건냈다. 아이들은 입으로는 안주셔도 되는데 하면서도 두손은 기분좋게 만원짜리 몇장씩 받아들고 있었다.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우리 막내 아가씨가 " 어차피 그 돈이 그 돈인데 앞으로는 이런 거하지말자"고 농담처럼 툭 던지고 문을 나서는데 내 귀에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꼭 준비해 온 멘트 같이 느껴쪘었다. 그래서 그 말에 나는 용돈 받는 어린애도 아닌데 내 빈정이 더 상했다. 거기서는 아무말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울 제비아빠에게 몇마디 던졌다.


"아가씨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도통 이해할수가 없어. 애들 만나면 일년에 몇번이나 만난다고.... 애들이 그 맛에 집안 행사에 따라나서는 거 아냐? 애들이 평생 애들이야? 용돈받는 것도 한때지! 하여튼 누가 짠순이 아니랄까봐......" 솔직한 심정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못고, 못형편 어렵던 그런 옛날도 아닌데 아이들의 젊은 막내 고모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게 두고 두고, 아니 지금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건 아니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오만원권을 호기있게 주시고, 입학이나 졸업 같은 특별한 날에는 따로 넉넉히 용돈을 챙겨주신다. 나 역시도 그렇게 마음을 담아 특별한 날엔 조카들에게 특별하게 마음을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쓸데없는 데만 기억력이 엄청? 좋은 나는 그럴때마다 귓가에 그때 아가씨가 했던 말이 맴을 돈다. 아마 우리 막내 아가씨는 자신이 그런말을 한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다.


그리고 2년전 아버지 장례식을 끝내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옛 이야기에 젖어 있었을 때 우리 오빠가 꺼낸 얘기가 참 가슴 아팠다. 장례식 마무리하고, 흰 봉투에 30만원씩 준비해서 조카들에게 건냈다.

"할아버지 장례식 치르느라 애썼다. 이 돈은 할아버지께서 너희들에게 주는 마지막 용돈이다 생각하고 다들 받아서 필요한데 값지게들 써!"


그리고 조용히 옛날 얘기를 했다.

학교다닐때 친척분들이 집에 한번씩 오시면 기대감에 부풀었단다. 혹시 작은 아버지들이 오랫만에 만나는 조카에게 용돈 좀 쥐어주실까 싶어서. 행여 자기가 집에 오기도 전에 가고 없으실까봐 그런 날은 부랴부랴 서둘러 집에 왔는데, 작은 아버지들께서는 항상 공부 열심히 하라는 덕담만 남기고 휑 하니 가버리는데,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고. 집안 형편상 정해진 용돈이 없었고, 그때 그때 필요한 돈만 겨우 받아쓰던 때라 작은 아버지들께서 주실지도 모를 그 용돈이 엄청 간절 했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사다주시는 시장표 옷도 좋아라 하던 우리와 달리 그 시절 메이커가 반짝이는 옷이나 신발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던 폼생폼사 우리 오빠! 참고서 산다고 용돈 받아다 책 대신 폼잡느라 늘 공부는 뒷전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그런 오빠를 학생이 가방에 책도 없이 도시락만 싸들고 학교에 놀러다닌다고 흉을 봤었다.


아무튼 서울서 돈좀 벌었다는 작은 아버지들은 우리집보다 형편들이 다들 좋으셨는데도, 오셔서 돈 냄새만 폴폴 풍기고 어린 조카 맘속에 서운함만 한가득 남기시고 그리 가셨었나 보다. 한참이나 어렸던 나와 내 동생은 아무 생각없었는데 말이다.ㅎㅎ


그래서 그때 그게 한이 돼서 조카들한테는 만나면 꼭 용돈을 준다고. 그런데 쓰는 돈은 안 아낀다고. 알고 나니 오빠가 조카들에게 용돈이며, 옷이며, 신발이며 그렇게 팍팍 잘 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제 그 아이들은 가정을 일꿨고,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은 외삼촌을 만날때마다 신사임당님도 같이 만난다. 일이 있어 한달에 두세번이나 간 달은 오빠도 주머니가 꽤 가벼워졌을 터. ㅎㅎ 그런 가슴 짠한 이유가 다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에야 울집 아이들에게는 친척분들이 주시는 용돈에 큰 아쉬움이 없다. 필요한 건 엄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해결해 주니, 그렇게 형편이 좋지 않았던 우리 어릴적 때와는 용돈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긴 하다.


어른들께서 용돈을 주시면 쪼르르 달려와 엄마에게 건내던 좋은 시절도 다 갔다. 막내만 빼고 이제 오빠들은 자기가 받은 용돈은 다들 알아서 관리한다.


큰아들은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누가 자져가도 모르게 대충 관리한다. 필요한 물건은 엄마카드로 결재하고, 자기는 현금 쓸일이 별로 없다며 엄마 필요하면 쓰시라고 10만원씩 막 준다.


둘째는 지갑을 사서 제대로 관리한다. 모든 돈은 자기 필요한 곳에 알뜰하게 쓴다. 고등학교 입학후 정식으로 공식 용돈을 요청하길래 매월초 10만원을 준다. 5만원은 차비 명목이고, 5만원은 필요한데 쓰라고. 큰돈 필요할땐 따로 그때 그때 얘기하라고는 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차비도 아깝다며 매일 걸어 다닌다.

일상을 꾸려가는데도 독립적이지만 경제적으로도 독립적이다. 집안 어른들이 주시는 용돈을 모아뒀다가 책도 사고, 옷도 사고, 영화도 보고, PC방도 가고, 밥도 사먹고....


혼자하기 힘든 공부! 학원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권해도, 이번 중간고사까지 혼자 알아서 해보겠다는데 그런 모습도 안쓰럽다. 그럼 학원 안가는 대신 인강을 한달동안 매일1강씩 듣는 조건으로 학원에 냈어야 할 돈을 울 둘째에게 주었더니, 열심히 해보겠다며 입이 귀에 걸린다. 돈을 참 좋아하는 녀석이다.


학창시절 나도 우리 언니한테 형부한테 용돈 참 많이 받았다. 스무살에 고향 떠나와 처음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할땐 형부와 언니가 부모님 같았다. 처음 기숙사 들어갈때도 요것조것 알뜰하게 한살림 챙겨주셨고, 주말마다 언니네 집에 갔다가 기숙사로 돌아갈땐 항상 내 손에 만원짜리를 서운찮게 쥐어주었었다. 그때는 고마운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가정을 이루고 살다보니, 외벌이에 두 남매 키우는 빠듯한 살림에 동생 하나 그렇게 살뜰이 챙기는 것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세상은 돌고 돈다.

돈도 돌고 돈다.

우리 아이들도 자라면서 받았던 용돈의 의미를 알고, 먼 훗날 태어날 조카들에게 용돈 인심 넉넉한 어른들이 되어있을 것이다.

언니랑 형부가 더 나이들면 그땐 내가 두 분들의 주름진 손에 넉넉히 용돈을 쥐어드릴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언니랑 형부가 더 부자가 돼서 내가 또 그때처럼 용돈 받는 꿈을 꾼다.ㅋㅋ

우리 형부는 춘천 땅값이 엄청 오르면 나를 위해 오천쯤은 써준다 했다. ㅎㅎ

증인도 있으니 나는 오늘도 춘천 땅값 좀 많이 올라라 기도해야 할 참이다. ㅍㅎㅎ


2022년 09월 16일 금요일....... 가을날~~용돈이 궁한 늘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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