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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Sep 25. 2022

간장게장 vs 돼지족발

황후의 밥, 걸인의 찬......꼬맹이 딸의 입맛을 사로잡다.

오늘은 간장게장에 쓱싹쓱싹 밥 비벼먹을래?

돼지족발 바삭하게 구워서 쌈 싸 먹을래?

당연히 족발을 먹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우리 집 꼬마 아가씨는 간장게장을 선택했다.


슈바인학센 냉동팩을 냉동실에 넉넉히 쟁여두고, 족발이 생각날 때 에어프라이어 20분씩 돌려가며 조리해서 겉바속촉의 독일식 족발 맛을 보곤 했다. 색다른 맛에 처음엔 일주일에 두 번은 먹었다. 그래서 질렸나? 아무튼 오늘은 간장게장이다.


우리 엄마는 이 돌게간장게장을 싸주시면서도 주의를 주시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집게발은 단단하니까 칼 손잡이로 조사서 간장 살짝 끼얹어 쪽쪽 빨아먹으라고.... 이빨로 깨 먹을 생각 말고, 귀찮으면 몸통이나 먹고 앞다리는 버리라고 말이다.


잘못먹다 이 부러지면 큰일 나니까, 간장에 밥만 비벼먹어도 맛나니께 간장이나 먹고 말라고 전화까지 주셔서 주의를 또 주시며 당부를 하셨다. 행여 먹다가 이빨이 어떻게 됐단 소리 들릴까 봐 엄청 신경이 쓰이신 모양이다. 것도 그럴 것이 여수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이 돌게장은 정말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게딱지도, 집게발도 말이다.


칼 손잡이 끝으로 가볍게 쳐서는 깨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간장 맛이 기가 막히다. 짭조름한 감칠맛이 밥도둑이다. 초등 우리 꼬맹이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고실고실 갓 지은 흰쌀밥에 간장게장 한 사발..... 오늘은 이걸로 땡이야. 어서 와! ㅎㅎ


엄마의 장난기가 돈다.

자! 오늘은 황후의 밥에 걸인의 찬이다. 우리 꼬맹이 순간 둥절한다.  

정말? 설마? 이게 다야?

그럼 뭣이 더 필요헌디! ㅋㅋ


울 꼬맹이는 게딱지에서 장을 싹싹 발라내 참기름 한 방울 톡 떨어뜨려 쓱쓱 비벼서 갓 구운 생김에 싸서 낼름낼름 잘도 먹는다. 배부르다면서도 한 숟가락만 더 달란다. 너무 맛있다. 나도 덩달아 한 공기 반을 먹었다.

도둑은 도둑일세. 밥도둑


옛날에 읽었던 김소운 시인의 에세이가 갑자기 떠올랐다. 시인이 아내를 위해 차려냈던 가난한 시절의 밥상이 말이다. 간장게장을 꺼내면서 문뜩.


먹을 것 귀하던 시절, 아침밥도 못 먹고, 일하러 간 아내를 위해 시인은 어찌어찌하여 쌀밥 한 그릇은 마련했다. 나 그에 걸맞는 찬을 마련할 형편은 못됐다. 작은 소반 위에 하얀 쌀밥 고봉으로 담고, 간장 한종지 올리고, 정성스런 쪽지 한 장을 남긴다. 그리고 신문지로 상을 덮어놓고는 돌아올 아내를 뒤로 하고 집 밖으로 나선다. 집으로 돌아와 상위의 신문지를 걷어내고, 남편이 남겨둔 쪽지를 읽는다. 입가엔 미소가, 눈가에는 촉촉한 눈물이.....


"황후의 밥, 걸인의 찬! 이걸로 시장기나 면해두시구료"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황후의 밥과 걸인의 찬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가난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밥상위에서 그려지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신혼 시절 우리 택상이 생각나네!

혼자서 자취생활을 오래 한탓에 밥을 곧잘 해 먹었던가 보다. 울택상은 결혼해서 여섯 달 동안 아침에 일어나 꼬박꼬박 밥을 했다. 6개월쯤 되니, 이제 하산할 때쯤이라 생각했는지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잘 배웠지? 이제부터 네가 해봐" ㅎㅎ

내가 배우긴 잘 배웠지. 그 뒤로 우리 택상이 밥을 했던 기억은 없다.

그때 잘 배워 그런지 난 지금도 밥은 참 잘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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