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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Dec 06. 2022

첫눈 내리는 날의 추억

대작을 그리다. ㅎㅎ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

대한민국 vs 브라질  다시 뜨겁게~~

사진 연합뉴스

이른 새벽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고자 꼬맹이만 빼고 온 가족이 일어났다.  기적이라도 일어났으면 하는 맘을 모아 경기에 집중해갈 무렵, 비몽사몽 정신이 채 들기도 전에 두골을 먹었다. 김이 빠져 버렸다.

 '어! 이거 아닌데....'

3:0쯤 되자 하나둘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선수들은 열심을 다하고 있었지만 대세는 기울었고, 졸음이 솔솔 더 이상 우리들의 응원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선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경기 결과가 궁금했다. 과연 몇 골이나 먹었을까? 4:1 다행이다 싶었다. 이번 경기에서 브라질은 실력도 탁월했지만 운도 참 좋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덕분에 즐거웠노라고.


첫눈이 왔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참 포근해 보였다. 첫눈치고는 제법 소담스레 내려 사람들의 발길 닿는 곳을 빼곤 온 세상이 하얀빛으로 깨끗했다. 오전 내내 눈발이 흩날렸다. 창밖으로 보는 눈 오는 날의 풍경은 그 포근함에 항상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눈오는 날의 풍경


창문 너머 학교 운동장에 펼쳐진 하얀 도화지가 나의 맘을 더욱 설레게 했다. 달려 나가 또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설레임에 젖게 했다. 시간이 지나자 개미만 한 꼬맹이들이 운동장으로 모여들어 첫눈 내리는 날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소리도 즐겁고 움직임도 즐겁다. 겨울엔 역시 눈이 좀 와야 한다.

첫눈오는 날의 포근한  즐거움


저녁 준비로 분주한 때 우리 꼬맹이가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전한다.

"엄마! 오늘 애들이 예전에 운동장에 그림이랑 글씨 써있던 것 얘기하더라?"

"그래?"

"뉴스에도 나오고 그랬는데,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왜? 친구들한테 니가 했다고 자랑 좀 하지 그랬어?ㅎㅎ"

"그냥, 나는 미스터리 한 채로 남겨두고 싶었어.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

"하긴 니가 했다고 해도 친구들이 아무도 안 믿었을 거야. 장난치는 줄 알았을 걸? 그래도 자랑 좀 하지 그랬어. 이번 기회에"

운동장을 가득 채운 귀여운 눈사람


2020년 12월 첫눈이 내리던 날!

그날도 첫눈치곤 너무도 멋진 함박눈이었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오전 내내 함박눈이 그칠 줄 몰랐다. 코로나로 꼼짝 못 하고 있었던 답답함이 눈이 오자 못 견디게 나를 설레게 했다. 이른 아침부터 눈에 취해 눈 속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아이들은 눈이 오는 줄도 모르고 늦잠을 자고 있었다. 눈 온다고 일어나라고 아이들을 깨우면서 거실 창 블라인드를 걷어올리는데, 눈이 소복이 쌓인 운동장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엄청 큰 하얀 도화지가 떡하니 어서 와하고 말이다. ㅎㅎ


"애들아! 빨리 일어나! 눈 엄청 온다. 나가자!"

아들들은 시큰둥하게 추운데 뭐하러 나가냐고 거절하고, 우리 꼬맹이만 들떠서 좋다고 따라나섰다.


그렇게 함박눈이 첫눈이 되어 내리던 2020년 12월 어느 일요일 아침!

우리 꼬맹이와 엄마는 넓은 운동장을 도화지 삼아 장장 두 시간여를 그림 그리는데 빠져 엄청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늘에선 함박눈이 내리고, 긴 막대기와 두 다리를 이용해 운동장 가득 눈사람을 그리고, 간절했던 소원을 그림 속에 담았다. 아들들에겐 밖을 보라고 우리가 뭘 하는지.... 영상으로 멋지게  좀 찍어달라 주문을 했다.

그림 그리느라 즐거운 개미인간 두사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창밖으로 저 사람들 뭐 하는 거지? 하고 지나쳤던 사람들이 완성된 그림을 보고 사진으로 찍어 여기저기 전송했던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아침 일찍부터 아빠랑 아들이 열심히 그리더라 하는 확인 안 된 소문만 돌았다.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학생들 사이에서도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작 그린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재미난 대화거리가 됐던 모양이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우리 꼬맹이 친한 친구 엄마의 카톡 프사에 이 그림이 예쁘게 올라가 있었다. 장난치기 좋아하는 엄마는 전화를 해서는 웬 사진이냐고 시침 뚝떼고 물었다.

"언니! 전에 살던 곳 친구가 우리 동네 아니냐고 사진을 보내왔더라구요. 언니 못 봤어요?"

"그래? 내가 그 그림 그린 사람 잘 아는데....ㅎㅎㅎㅎ"

"그래요? 언니 누구예요?"

"자기도 아주 잘 아는 사람!ㅎㅎ"

"설마 언니가 그렸어요? 어머어머~ 애들아 너네 운동장 그림 ㅇㅇ이랑 이모가 그렸대?"

아이들을 향해 외치는데 그 집 초등 1학년 아들은 아니라고, 자기네 담임 선생님이 미술선생님이 그렸다고 했다고 거짓말 하지말라고 외치는 소리가 핸드폰 넘어  들려왔다. ㅎㅎ


눈 오는 날, 우리 꼬맹이와 엄마의 즐거운 놀이가 사람들 사이에 가슴 훈훈해지는 여운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 기분 좋은 추억이었다. 아쉽게도 날이 너무 포근해 하루를 못 버티고 녹아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나 역시 오늘 첫눈이 오자 그때 생각이 났다.

학교에서도 몇몇 아이들이 재작년 겨울에 있었던 일을 꺼내 들었던 모양이다. 울 꼬맹이는 아이들의 얘기에 정작 그 그림을 자신이 그렸음에도....ㅎㅎ

귀여운 우리 꼬맹이


매년 겨울이면 아마도 이 기분 좋은 추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젠 눈이 오면 눈앞에 펼쳐진 창문 밖 하얀 도화지 에 뭘 그려볼까 상상만 해본다. 선뜻 그때처럼 무모한 용기가 나질 않는다. 괜한 관심을 끌게 될까 봐 조심스럽다. ㅎㅎ


우리 꼬맹이와 엄마가 첫눈 오는 날이면 항상 소환해 내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2022년 12월 06일 화요일 첫눈 오는 날! 옛추억에 젖어......늘봄 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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