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상상할수록 나는 지금을 살아야 했다
1. 사후세계가 있다면 좋겠지만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강아지들이 달려오고,
먼저 간 이들이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할머니를 다시 보고 안아볼 수 있는 그런 곳.
사후세계가 있다면 죽음이 덜 두려울지도 모른다.
떠난 이들과의 이야기들이
다시 이어질 수 있다면.
나는 사후세계가 있기를 바란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내 진심이다.
하지만 그 바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후세계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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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든 생명에게 사후세계가 있다면
나는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생명을 먹고, 밟고, 잊고 살아왔다.
닭, 돼지, 소, 감자, 쌀 한 톨, 풀잎 하나까지
그 모두가 한때는 살아 있었던 존재들이다.
그들에게도 사후세계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 문을 통과하자마자
기억조차 못한 생명들에게 둘러싸일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너무 많은 것을 짓밟으며,
너무 많은 욕심을 품고 살아온 건 아닐까.
모든 생명에게 사후가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닌 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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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만의 사후세계는 정의롭지 않다
만약 사후세계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라면
그건 위안이 아니라 오만이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소비하고,
그 모든 책임을 외면해왔다.
그런 우리가 죽은 뒤에도
구원을 독점하려 한다면,
그건 사랑도 정의도 아니다.
신이 있다면 우리에게만 상을 주지 않을 것이고,
신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삶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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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끝이라는 사실이 나를 살게 한다
나는 여전히
사후세계가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상상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이 생을 더 절실히 붙잡게 된다.
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상실과 외로움, 불안과 불만,
살아 있다는 건
견디는 일에 가까울 때가 많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때때로 찾아오는
기쁨과 웃음,
아주 짧은 순간의 충만함은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다.
나는
이 생의 끝이 정말 끝이라 믿기 때문에,
그 고통조차 감각하며
살아 있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끝이 있다는 사실이,
지금을 살아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