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24가지 지혜
# 나를 찾아야 삶의 중심이 선다.
진정한 내 삶에서 찾아야 할 단 하나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살기도 바쁜데 뭐 하러 이런 걸 하세요?" '어른답게 말하기' 강의를 시작할 무렵,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이 제게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정말 그분 말씀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뜬금없이 나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른답게 말하기'도 결국은 나 자신을 알아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 우리를 가두는 '거짓된 믿음들’
나를 찾기 전에 현재 우리의 삶을 먼저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태어났지만, 사실 누군가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거짓된 믿음'과 '패러다임'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많은 거짓된 믿음을 받아들이고 그 믿음이 우리를 꽁꽁 옭아매도록 내버려 둔 채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부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뇌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이를 깨닫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수많은 경험으로부터 배운 각자만의 '뇌 공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공식이 곧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틀입니다. 우리는 이를 '신념'이나 '관념' 또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가치들도 따지고 보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저 내 것처럼 보여서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할 뿐이죠.
# 편안한 삶의 진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 우리가 원하는 삶에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 한, 내 삶이 힘들다고 느끼지 않는 한, 내 안에 깊이 박혀 있는 신념이나 믿음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지 못합니다. 삶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주어진 삶과 무의식에 나를 온전히 맡겼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저 주어진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더 이상의 진화도 없이 생존만을 신경 쓰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 '나를 찾기' 여정의 시작' 어른답게 말하기와 예상치 못한 기회
'나를 찾는다'는 제목으로 어느 카페에 강의를 올렸을 때의 일입니다. 만약 제가 이런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저도 "내가 나를 어떻게 찾아? 이거 좀 사기 아니야?" 하고 등을 돌렸을지도 모릅니다. 반응은 예상대로였죠. 그래도 참가하신 두 분이 계셨는데, 이분들이 좀 특별한 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좀 더 사람들에게 친근한 제목으로 바꾼 것이 '어른답게 말하기'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여전히 추상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른답게 말하기'는 결국 나를 찾는 여정의 마지막 관문이라 생각해서 올린 제목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상황에 맞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우리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바도 이것이라고 믿고 시작한 일들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저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저의 약한 추진력과 사람들의 소극적인 반응을 바꾸기에는 제 능력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제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는 벌어진 모든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물론 생각만으로는 제 삶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생각도 꾸준히 그리고 절실하게 하면 우주와 자연, 그리고 나의 무의식이 해결 방법을 찾는다는 말을 긍정적으로 믿고 하는 행동입니다. 이 글을 쓸 때도 책을 내는 게 목표였지만 정말 책으로 나올지는 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올해 이 책이 나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요? 어느 날 우연히 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습니다. '소중한 자기만의 책을 갖자'는 내용으로 시에서 책 출판 비용을 지원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로 17년째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거죠. 이렇게 저의 바람이 우주의 에너지와 만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에너지를 받아 써놓았던 글을 수정하고 있는 중입니다.
# 타고난 나의 본성, 그리고 지켜온 나의 기준
사실 저는 나를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 강의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의 자아는 셋이고 저의 자아도 셋이지만 저의 자아는 많은 부분이 겹쳐 있어서 세 자아가 거의 비슷합니다. 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책을 읽어서 향상된 부분도 많지만 유전적으로 좀 가지고 태어난 부분도 있고 다행스럽게도 제 삶의 기준을 지켜온 덕분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저학년 남학생이 여학생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제 일은 아니었지만 혼내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대 때는 회사에서 외부 사람이 돈이 없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 분이 부산에 갈 차비가 없다고 해서 빌려줬는데 사기였어요. 사람을 믿고 싶은데 그 사람 때문에 제 믿음에 금이 갔습니다. 큰돈이 아니라 빌려주지만 꼭 갚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 믿음이 틀렸다고 다시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얼마 후에 그분이 정말 음료수를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또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13년 정도 강의를 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계신 분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자세히 몰라도 대충은 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리자가 새로 오셔서 여러 가지를 바꾸면서 강사들도 새로운 조건으로 계약을 해야 했습니다.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새로 오신 관리자 한 분과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무실 선생님 한 분(저보다 나이가 좀 어린 분)이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셋이 앉아서 면접을 봤는데 질문은 단 하나였습니다. "우리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대답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였습니다. 그런데 관리자분이 이러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대답을 하셔야 한다고, 다른 분들도 다 그러셨다고요. 순간 머리가 띵했습니다. '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인데, 여기서 뭘 더?' 그리고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저는 했던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제 자존감에 금이 가고 있었고 나보다 어린 직원분을 보기도 민망했습니다. 그렇게 그곳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습니다.
# 나를 믿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
저는 제 삶의 방향과 맞지 않으면 가끔 계란으로 바위 치는 듯한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행동이 삶을 살아가는 데 좋지도 않고 저에게 아무 이득이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들을 하는 이유는 그게 제 삶의 방향이고,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저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나 자신을 믿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행동들입니다. 지금도 같습니다. 강사라는 신분은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협을 보면 상황을 잘 넘길 수 있지만 그러려면 제 삶의 기준이나 가치관들을 바꾸어야 합니다. 만약 그래야 한다면, 저는 좀 불편하더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택하는 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선택하고 지켜나가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