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그들의 절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中
본격적으로 한류의 포문을 연 드라마 '겨울연가'. 드라마부터 OST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분석기관에서는 이 당시 드라마가 가져온 경제효과를 3조 원으로 추산했습니다. 현재까지 'Made in Korea' 문화 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단지 아시아에만 국한될 줄 알았던 한류는 바다 건너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습니다. 가요, 영화, 드라마, 캐릭터 가릴 것 없이 전 산업에서 약진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작은 반도 국가에서 만들어낸 콘텐츠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류가 이토록 성장하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금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많은 아티스트들은 성공을 바라며 어린 나이부터 연습과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역량 있는 이들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기획사들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죠.
지금의 한류는 수십 년간 여러 노력이 빚어낸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선배들의 영광을 잇기 위해 많은 예비 스타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일반인인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되고 험난합니다.
간혹 다큐멘터리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개되기도 하지만 연예인들은 많은 걸 포기하고 대중 앞에 서기 위해 애씁니다. 각종 논란이나 범죄 등에 연루되는 경우를 제외했을 때, 어느 누구도 함부로 이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운동선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성인들조차 견디기 어려워하는 경쟁, 그들은 순수한 그 시절부터 혹독한 현실에 뛰어드는 겁니다. 오로지 꿈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이뤄내고자 하는 바람 하나로.
그럼에도 오염된 커뮤니케이션은 끊임없이 이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습니다. 그저 유명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모욕과 수치를 떠안고 있습니다. 이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거나 회피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재원들, 한 둘이 아닙니다.
유가족, 팬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는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도 이는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경제 파급효과만 언급하고, 간혹 훈장 수여를 할 뿐입니다. 관계 부처에서는 익명의 공격으로부터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다.
BTS의 인기가 워낙 큰 성과를 거두다 보니 정치인들은 '병역 혜택'이라는 하나의 카드를 제시했습니다. 물론 연예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책입니다만, 현재의 위태로움을 먼저 보듬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으로까지 그 피해가 커지고 있는 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이 범죄를 정부나 관련 기관들이 가벼이 여기고 있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특히 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일 텐데 말이죠.
막강한 신드롬을 불러일으킴 BTS의 경제 가치는 어떨까요? 지난해 9월 미국 경제지 美 경제전문지 인터내셔널 비즈니즈 타임즈(IBT: International Business Times)는 BTS에 대한 분석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향후 10년간 BTS가 순수 활동만으로 40조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두리라 예측했습니다.
여기에 파생되는 효과까지 더해지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치닫습니다. 유명인에 대한 경제효과를 분석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국가 브랜드 홍보'입니다. 말 그대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고, 세계인에게 Korea를 익숙케 하는 건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즉각적으로 관광 산업에 영향을 미칩니다. 코로나19 펜더믹이 아니었다면, 2020년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은 엄청났을 겁니다. 'BTS의 나라', '기생충의 나라', '손흥민의 나라'가 바로 한국이니까요. 관광 산업은 실물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국가 위상이 높아지면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죠. 이 과정은 당연히 일자리 창출 등으로 연계돼 취업난과 같은 고질적인 사회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줍니다.
일련의 파급효과들까지 계산한다면,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는 이들은 영웅 대접을 받아야힐 만큼 국위선양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그만큼 존중받거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나요? 물론 국내외 팬들이 끊임없이 응원과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그에 비례하게 공격도 받고 있습니다. 사태가 지속되면 일정 부분 개선돼야만 하는데 현재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운동선수와 관련된 공격에 대해서 구단이나 협회는 원활하게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연예계에 비해 온라인 관련 문제가 최근 들어 부각됐기에 시스템이 온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만큼 운동선수들은 위험에 더 노출돼있는 셈입니다.
이에 반해 연예계와 악플 사이의 전쟁은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됐습니다. 그 때문에 빠르게 근거를 수집해 고소를 하는 식의 노하우가 훨씬 많습니다. 스포츠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계적일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각 기획사가 소속 연예인 보호 차원에서 모든 공격을 차단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인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공격 횟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많은 유명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으며, 속 시원하게 하소연하지 못한 채 홀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속적인 비난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유명인이 활동을 중단하거나 은퇴한다면 그 공백은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영역입니다. 21세기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가치가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의 고유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정 유명인이 이탈할 경우 이를 대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오염된 커뮤니케이션의 공세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그들의 외모, 몸매 등 외형적 매력은 물론 가치 측정의 한 기준이 됩니다. 이미지를 사고파는 건 유명인들에게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심지어 운동선수들에게도 말이죠. 그렇지만 이것이 그들의 본질을 판단하는 잣대가 돼서는 안 됩니다.
많은 악플이 외모 지적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그 뒤에 언행, 가치관 등을 볼모로 삼죠. 이와 같은 부정적인 사고 체계는 한 개인의 잘못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언론이 지금껏 구축해온 하나의 프레임에 의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유명인=외모'라는 프레임은 실시간으로 생산되는 포털 내 연예·스포츠 기사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특정 행사장에 등장한 유명인을 담은 사진 기사 그들의 SNS 업로드 현황을 알리는 기사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패턴인데, 이들의 제목은 유명인의 외모나 몸매를 유난히 부각시킵니다.
제목은 기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명인을 묘사하는 기사의 제목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쪽으로 치중되면 이를 보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반복된 기사 제작 방식으로 비단 국내에만 국한된 행태는 아닙니다. 이를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라 부릅니다. 이는 대중들에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주로 보도하는 방식을 일컫습니다. 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등장한 유형으로, 언론사가 여기에 과도하게 몰입하다 보면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하게 됩니다.
유명인을 외적으로만 평가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 역시 그 부작용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대중 앞에 서기까지 해온 노력보다 외적인 요소가 우선적으로 작용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겠죠. 더군다나 이 프레임은 악플러들이 주로 이용하는 만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외적으로 유명인을 바라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일부는 자신과 동일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게 아니라 하대해도 되는 존재로 유명인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까지 말이죠.
제가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희극인(모두가 알 만한,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분입니다)은 한 일화를 들려줬습니다.
'살 것이 있어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무덤덤하게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 앞에 섰습니다. 갑자기 계산하시던 종업원분이 절 알아보시고 대뜸 이러시더라고요. "개그맨이네, 웃겨 봐!" 알아봐 주신 건 감사하지만 갑자기 웃기라 하시니 당황스럽더라고요.'
신비주의로 일관했던 과거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에 많은 유명인들이 우리처럼 평범하게 일상을 즐기곤 합니다. 그렇기에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유명인을 마주치기가 쉽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수준이라면 유명인 입장에서 큰 부담을 가지진 않을지도 모릅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말이죠.
그렇지만 어떤 양해도 구하지 않고 대뜸 요청하거나 누가 생각해도 무례하다고 느낄 만큼 과도한 요구를 하는 건 올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유명인도 각자 사적인 영역이란 게 존재하는 엄연한 인격체입니다. 그들의 영역을 깊숙이 침범해선 안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종의 '선'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개된 연예인의 집을 집요하게 찾아가 민폐를 끼친다든지 스토킹을 하는 식으로 말이죠. 악플러들이 일삼는 비도덕적인 공격이 간혹 이런 식으로 현실화되기도 합니다. 꾸준하게 피해를 입은 몇몇 연예인은 더 이상의 불편함을 막기 위해 공개적으로 호소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유명인을 향한 잘못된 사고방식은 온·오프라인에서 지속적으로 문제 되고 있습니다.
표출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연예인, 운동선수와 같은 유명인들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선사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기쁨,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잠조차 쪼개서 자면서도 팬들을 포함한 대중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전하기 위해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곤 합니다.
네, 맞습니다. 누군가는 오로지 각자의 성공만을 위해 몰입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접할 수 있는 산물들 덕에 우리는 일상에서의 노곤함을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일순간의 안식을 주는 만큼 우리 역시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특히 온라인에선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