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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Feb 24. 2021

악플러들의 공격 양상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악플러

'요즘엔 뭔가요 내 가십', 'Hello stuP I D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Stop it 거리 유지해', '깜빡이 켜 교양이 없어 너'. - 아이유 '삐삐' 中


고요 속의 외침


실력뿐 아니라 꾸준한 미담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아이유. 그녀는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삐삐'라는 곡을 공개했었습니다. 어느 분야든지 10년간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10년 단위로 장기근속을 표창하는 곳도 있을 만큼 대단한 업적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발표한 '삐삐'는 그간의 발자취를 축하하거나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습니다.


가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자신의 행보를 주제로 삼는 호사가, 혹은 극성인 악플러들을 저격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앞장서 악플러와 전쟁을 펼치고 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인 만큼 의미심장한 곡을 발표한 겁니다. 10주년이 되기까지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들에 대한 경고를 곡으로까지 표현했을까요? 그것도 10주년 기념으로.


악플러들이 다는 악플을 보다 보면 인간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게 하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지켜보는 것 자체만으로 불쾌감을 뿜어냅니다. 범죄자들이 남긴 발자취는 그만큼 피해자에게 치명적이고, 위협적입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주저하는 이들은 더 이상 악플을 달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대개 공허한 메아리로 끝납니다. 절절한 호소를 들어야 하는 당사자가 눈과 귀를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와 이를 통한 조율은 이성적인 대상끼리만 가능한 합리적인 소통 과정입니다. 비이성적인 이들과 대화를 하려는 건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것 이외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끊어내야만 합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에겐 어떤 여지도 줘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유명인들의 강경한 대응을 우리는 지지해줘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악플의 일반적인 형태를 살펴보면서 피해자들과 공감대를 조금이나마 형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악마의 발자취


악플의 대표적인 특징은 집요하다는 겁니다. 최근 뮤지컬 배우 겸 가수 배다해 씨에게 2년간 수백 건의 악플을 단 악플러가 구속 기소됐습니다. 20대인 이 악플러는 무려 24개의 아이디로 악플을 달아왔으며, 스토킹까지 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언론 발표에 따르면 악플러는 심지어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으면서도 배 씨에게 '벌금형에 그칠 거다', '합의금 1000만 원이면 되겠냐'는 식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평범한 상식으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일반적 형태의 범죄기도 합니다.

악플러들은 자신만의 타깃을 지정해 악랄할 만큼 꾸준하게 공격을 가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결과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브레이크 없는 스포츠카처럼 앞만 보고 달립니다. 


한, 두 번 하다가 멈추겠거니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멈출 줄 모릅니다. 법적 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벌금형을 받은 뒤에도 재차 행동을 감행하는 악플러조차 존재합니다.


악플을 적으면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뭘까요? 단순한 흥미나 호기심, 우월감, 성취감. 유형에 따라 여러 감정을 느낄 테지만 그들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목한 피해자가 자신의 악플에 어떤 반응을 보인다면 이에 동기부여를 받기도 합니다. 


둘째, 범죄자들은 피해자의 자아를 붕괴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아는 성격·성향을 포함하는 내면과 외모·몸매로 대변되는 외면으로 구성되죠. 자아를 침해받는 건 인간이 참기 힘든 압박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보통 가해자와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충돌합니다. 


우리가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외부의 침범으로 자아가 위축되는 걸 큰 '위협'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자아란 그 자체만으로 숭고한 가치입니다. 자아는 그 누구도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는, 깎아내려서도 안 되는 인격적 마지노선입니다.


그렇지만 악플을 감내하고 있는 유명인들 모두가 자아를 침해받고 있습니다.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지, 목소리가 거슬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지속적으로 자아를 공격받으면 사람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아가 100이라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외부의 자극은 풍파가 돼 이를 점차 마모시킵니다. 반복되면 자아가 100을 다 채울 여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 틈을 각종 사념이 대체합니다.


자아 침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은 풍파를 막기 위해 방파제를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유명인들은 쉽사리 반응하기 어렵습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다 자칫 일을 더 키울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해 그간 쌓아온 입지를 잃을까 우려하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자아는 지속적으로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심리적인 위약 상태가 찾아오게 됩니다. 자신감이 수반돼야 하는 연예계, 스포츠계에서 이런 위약 상태는 여러모로 당사자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계기 없이 찾아옵니다. 악플을 정의 내리면서도 설명했지만 악플러들에게 비난의 근거는 '사치'입니다.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정한 타깃을 공격해야만 합니다. 근거를 마련해 비난을 비판으로 꾸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죠.


계기가 없다는 건 그 누구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연습한 동영상을 SNS에 게시한 연습생에게도, 평소 주변을 돕는 걸로 유명한 이에게도, 어떤 주목조차 받지 않았던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공격을 가합니다.


예고된 재난이라면 최소한의 대비가 가능하지만 어떠한 징후도 없이 찾아오는 횡포가 악플입니다. 당연히 피해자들은 예상치 못한 혼란을 겪게 되고, 일반적인 고난보다 훨씬 힘겨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 각종 범죄를 예고하기도 합니다. 이는 악플을 악성 범죄로 명확히 규정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과거 오염된 커뮤니케이션이 비난에만 그쳤다면 지금은 '협박'과 '실질적인 위협'으로 진화했습니다.


반복적인 인신공격과 온라인상 스토킹이 가벼운 행태로 비칠 만큼 그 수준이 날로 악랄해지고 있습니다. 테러, 살해 위협과 같이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을 저지르겠다고 엄포하는 악플러가 꾸준히 발각되고 있습니다. 


한 예로 걸그룹 에이핑크는 집요한 폭탄 테러 위협을 받았었습니다. 그 때문에 한동안 콘서트, 팬사인회 등 행사를 진행하는 데 상당한 제한을 받았죠.


우리나라가 총기 소지가 불법이라는 게 불행 중 다행입니다. 해외의 경우 피해자들이 위협을 느끼는 정도가 더 큽니다. 협박성 악플을 접한 후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가상세계의 위협이 두려운 나머지 오심을 낸 심판, 실수를 한 운동선수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악플러들은 피해자와 함께 하는 동료, 더 나아가 가족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습니다.


얼마 전에 충격적인 소식이 공분을 샀습니다. 기상캐스터 출신으로 현재 육아에 집중하고 있는 정주희 씨의 유튜브 채널에 기이한 댓글이 달린 겁니다. 몇몇 악플은 정 씨가 아닌 지난해 9월 태어난 아들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만큼 지독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한 아이를 성범죄자 취급을 할 뿐 아니라 그 아이의 생존권마저 묵살하는 궤변이었습니다. 이를 본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온라인 환경이 오염됐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극단주의자들이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범죄자들은 악플이라는 도구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와 그 주변인들의 인권까지 철저히 짓밟으며 그들만의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플의 양상을 정리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악플은 매우 위험한 범죄라는 것, 그리고 악플러들은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 그저 무시한다고 멈추지 않습니다. 피해가 주변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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