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종영 Feb 25. 2021

학폭 폭로 릴레이, 유행처럼 번지는 가십

진실이 만들어내는 정의를 바라다

영화 '내부자들' 속 유명한 대사죠.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개, 돼지들을 뭐하러 신경 쓰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평상시의 대중을 묘사한 대사일지도 모릅니다만, 정의에 눈을 뜬 그들의 힘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합니다.


피해자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최근 온라인은 유명인들의 학교 폭력(이하 '학폭') 폭로로 연일 뜨겁습니다. 


학폭은 본질적으로 연예계, 스포츠계에서 매우 뜨거운 가십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유명한 누군가의 부적절한 과거, 그리고 피해자들의 자발적인 폭로. 대중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 수 있는 '자극적 스토리'가 이 안에 담겨 있기에 여러 인물의 학폭 사례가 누리꾼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언론사 입장에서는 이런 관심도 높은 주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몇몇 언론사는 피해자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심층적으로 사건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언론의 역량이 집중되면서 이에 비례해 관련 기사 생산량도 자연스레 늘었습니다. 결국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학폭 폭로 사태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긍정적인 기능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상대적 약자였던 피해자들이 과거의 상처를 용기 내 꺼내 들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순기능이 발휘된 셈입니다만, 사태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그들이 원하는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낸다면 이는 IT 기술이 하나의 정의를 실현 가능케 했다고 평할 수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 이번 릴레이 폭로가 교육 환경 전반을 점검하고, 학폭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켜,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어떨까요? 가상세계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사회 정의를 실현시킨 한 사례로 기억될 겁니다.


이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서일까요? 연일 새로운 인물에 대한 학폭 전력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겁니다. 참다 참다 온라인의 전파력에 기대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정의 실현에 관심을 둬야겠습니다만, 또 다른 시사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이렇게나 많은가 하는 점입니다. 피해자가 아닌 이상은 크게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학폭은 오래도록 존재해왔던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지금의 학생들 중에선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을까요? 교육부는 2019년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는 372만 명(전체 재학생 410만 명의 약 90.7%)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한 바 있습니다. (학폭 관련 조사는 매년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0년 통계 역시 공개됐지만, 코로나19 특수성을 고려해 2019년 자료를 언급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각급 학교별 3% 전후의 학생이 학폭 피해를 입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려스러운 점은 학폭 방식이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는 겁니다. 잠깐 다뤘던 내용이지만 최근에는 '사이버 불링' 형태로 변질되면서 폭력성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제약 없이 이뤄지기 때문이죠. ‘카톡 감옥’, ‘떼카’, ‘방폭’ 등과 같은 신종 폭력이 등장했는데, 사이버 불링의 위험은 '주변인이 알아챌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피해자가 쉽사리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겁니다.


신체적인 위협이 없어 눈에 띄지 않지만, 자아가 꾸준히 잠식되는 심리적 폭행을 당하는 피해자가 늘고 있는 위태로운 현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선돼야만 합니다. 물리적인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나라 여론의 특징 중 하나는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식는다'는 겁니다. 초반부에 언급했던 영화 대사 역시 여기에 기인한 내용이죠. 이렇게 뜨거운 관심이 그대로 끝나버린다면, 그저 가십을 즐긴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게 됩니다. 


특정 오류가 돌출돼 드러났다면, 다시는 문제 되지 않도록 모난 부분을 제거해야 합니다.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파도에 편승하려는 그들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특히 그 진원지가 가상세계였기에 왜곡된 일들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피해자들의 간절한 호소가 가려질 만큼 악질적인 '거짓 정보 유포'. 


독립된 한 편으로 다뤘을 만큼 거짓 정보는 유명인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일입니다. 이번 학폭 사태에 편승해 일부 누리꾼은 해서는 안 될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과거 미투 열풍 때도 동일했지만, 쌍방의 잘못으로 번진 다툼을 피해 사례로 지목한다든지 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심지어 본인이 가해자였음에도 피해자로 둔갑한 사례까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왜곡된 정보들은 누리꾼에게 혼란을 줌과 동시에 가해자뿐 아니라 실제 학폭 피해자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자칫 그들의 눈물 섞인 고발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요.


(해당 유명인이 가해자가 확실하다면) 현재 폭로전의 양상은 두 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가해자가 발 빠르게 사과와 동시에 은퇴를 선언하거나, 소속사나 구단에서 적극 방어하고 있습니다. 도미노식으로 새로운 피해 사례가 등장하면서 학폭 논란 자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악플러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주고도 있습니다.


실제 가해자인지 판명이 나지 않았음에도 거론된 유명인들은 본인의 이름이 가해자로 불린 순간부터 행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됩니다. 준비 중이던 작품에서 하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시즌을 준비하며 몸만들기에 한창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 논란에 휩싸이면 진행 중이거나 다가오는 시즌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죠.


애꿎은 유명인이 거짓 정보로 제약을 받으면, 개인의 당연히 소속사나 구단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남깁니다. 그렇지만 이 정보를 흘린 이들은 참 단순하게 논란을 흘려버립니다. '미안하다', '오해였다', '착각했다'와 같은 단순한 회피성 대답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집니다.


일부 악플러가 이 사태를 활용해 거두려는 성과는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유명인을 폄하하는 것이겠죠. 그저 재미로만 퍼뜨리는 걸지도 모릅니다. 범죄자들에게 어떤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치입니다. 단, 사태의 본질을 어지럽히는 이들이 꼭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


재차 한 번 강조하지만, 이번 학폭 폭로 사태는 단순히 가십거리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 사태가 이상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순기능이 다시금 부각될 수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학교 폭력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가능해집니다. 


학폭 자체가 감성적인 주제겠지만, 누리꾼들은 이 사태가 감성적으로 번지는 걸 경계해야 합니다. 주변인인 우리는 그저 사태가 이성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이상적인 합의를 할 수 있고, 이 소란의 결과가 우리에게도 긍정적으로 다가올 겁니다.

이전 08화 악플러들의 공격 양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