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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Mar 08. 2021

온라인 언어, 그리고 유·청소년

악플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1 - 환경과 언어 3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그 시대에 반복되는 행동 양상이나 문제 등은 줄곧 언어로 표현돼왔죠. 이 관점에서 봤을 때 21세기에 생성된 각종 신조어들은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현재 생각하고 느끼는 부분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후죽순 등장하는 모난 신조어들

과거에 비해 다양한 언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온라인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죠. 온라인에서는 속도가 중요시됩니다. 그 자체가 빠르게 변화하는 공간이기에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속도성에 걸맞게 용어의 '경제성'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여러 신조어가 탄생했습니다.


'줄임말'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젊은 누리꾼들을 필두로 시시각각 생성되고 있는 줄임말은 관심을 두고 있거나 사용하고 있지 않다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과도하게 변형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로 인해 세대차이가 발생하기까지 하고 있죠.


과거의 '응'은 현재 'ㅇㅇ'나 'ㅇ'으로 적고 있죠. '갑통알'.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퀴즈로 나와 접한 단어였는데, 그 뜻은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였습니다. 축약에 축약을 더한 이 신조어를 보니 세대차이가 저한테서부터 느껴지더군요.


'멍멍이'를 '댕댕이'라고 쓰는 것처럼 경제성과는 별개로 단어 구조를 변형시킨 신조어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보다 유심히 봐야 하는 건 합성어 형태의 신조어들일 겁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매년 8월부터 다음 해 7월까지 포털 사이트를 기반으로 각종 신조어를 수집합니다. 이렇게 수집되는 신조어는 매년 300~500개. 사용자들은 끊임없이 신조어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신조어의 '뉘앙스'입니다. 알게 모르게 생겨나고,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신조어 모두가 결코 기분 좋은 뉘앙스나 뜻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가 더 많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일전에 다뤘든 남성 혹은 여성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단어, 특정 세대나 지역 또는 집단을 공격하기 위해 쓰는 단어. 이런 성향의 신조어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단어의 형성 과정에서부터 혐오감이 가득합니다. 벌레를 뜻하는 한자 '충(蟲)'을 활용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겠죠.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가 더 많다는 건 악플을 몰아내고자 하는 제 개인적인 느낌이 결코 아닙니다. 과거 김선철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장은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를 경멸하거나 혐오하기 위한 신조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사태를 경계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들 단어의 표현이 극단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양상이 우려스러운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누가 생성하는지 알 수 없으며, 쉽게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속에선 '재미'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요소 하나의 영향력이 큽니다. 단 한 번의 자극은 우수한 전파 속도를 바탕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다 보면, 방송 매체나 크리에이터를 통해서 더 빠르게 전달됩니다. 단어의 부정적 영향력이 더 커지는 셈이죠.


주의해야 할 단어들은 인간과 생명의 경시라는 불순함을 바탕으로 생성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용자에게 부정적인 사고 체계를 심어줄 확률이 높은 것이죠.


가상세계에서 태어나 현실세계에 영향력을 과시하는 신조어

2019년 아르바이트 애플리캐이션 '알바콜'과 설문조사업체 '두잇서베이'가 신조어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회원 3862명을 대상으로 신조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질문했는데,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64.8%로 나타났다.


첫 번째 이유는 한글을 파괴한다는 의견이었고, 2위가 바로 세대 차이에 관련된 지적이었습니다. 또한 20대가 신조어를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던 반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신조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컸습니다.


한 통계에 지나지 않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형성되고 있는 각종 신조어들이 현실 세계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킬 소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이 현상을 신세대들의 문화로 이해하려는 인식과 노력이 없다면 직장 등에서의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사실 한글이 파괴된다기보다는 한글이 현실에 맞게 변화, 적응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과거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을 당시와 21세기 대한민국의 환경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신조어가 등장한다는 것보다는 언어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큰 문제입니다. 밖에서 뛰노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놀이거리가 없었던 수십 년 전과 다르게 대부분은 온라인 콘텐츠를 의지하고 있으며, 연령 무관하게 갈수록 그 의존도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2019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은 하루 평균 2시간을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콘텐츠 시청에 쓰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주로 게임이나 먹방(다양한 방식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걸 주요 콘텐츠로 삼는 방송)에 할애했습니다. 응답자 중에는 노출이나 음담패설을 위주로 하는 방송을 즐긴다는 이도 일부 있었고요.


흥미로운 점은 응답한 청소년들이 부정적인 언어와 선정성을 인터넷 방송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게임 방송만 보더라도 욕설을 섞는 크리에이터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게임 자체에 일부 폭력성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과도하게 비속어나 욕설을 퍼붓는 방송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방송하면서 사용하는 언어가 채널과 크리에이터의 고유성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송출하는 동영상이 폐쇄적 콘텐츠 그 자체로 끝난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이들의 언어가 시청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면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을까요?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하고 나면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만큼 현재 대한민국의 유·청소년의 언어 폭력성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학교, 학원, PC방 등 어디에서도 위험한 단어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레도 발생하고 있는 거겠죠.


언어 결정론에 따라 언어가 실제 사용자의 생각과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한다면, 더욱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몇 비상식적인 범죄들도 이러한 병든 언어 환경에서 기인한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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