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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Mar 05. 2021

언어, 그리고 우리

악플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1 - 환경과 언어 2

별다른 생각 없이 매일, 매 순간 사용하고 있는 언어인 한국어. 세계에서도 인정할 만큼 유구한 역사를 가진, 희소성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리고 이 언어는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하는 매우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어는 커뮤니케이션 이상의 영역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지배하는 언어


언어는 신체적 능력이 미약한 인간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다른 동물들을 넘어설 수 있었던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언어가 있었기에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으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도출된 결과는 '기록'됐습니다. 역사라 불리며 누적된 자료는 세대를 거치며 그 힘을 발휘했고, 켜켜이 쌓인 데이터는 지식으로 변모했습니다. 지식은 발전의 밑거름이 돼 현대 사회를 이룩해냈죠.

몇몇 학자들이 동물도 언어를 학습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실험을 해봤지만, 이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인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오랜 기간 먹이사슬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겁니다.


인류 역사에서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언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연히 우리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 개발 과정에서,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말이죠.


언어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일까요? 혹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해 사용자의 이성이 자극받을 수 있을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쉽사리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언어와 이성 사이에도 유사한 질문이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대화에는 사고(思考)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미리 생각하곤 하죠. 논리적인 정리를 거쳐 대화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과정입니다. 이는 생각의 영향이 언어에 미치는 보편적인 과정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이 과정에 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언어가 역으로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그 주장입니다. 그들은 반복된 언어의 습관이나 행태가 '사고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뇌에서 연산과정을 거쳐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게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는 언어의 표현과정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쓰는 언어가 오히려 이성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꽤 많습니다. 이 맥락은 악플을 뿌리 뽑아야만 하는 당위성을 제시합니다.


언어가 이성을 지배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는 '언어 결정론'입니다. 미국의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와 그의 제자 벤자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특히 워프는 '언어 상대성'이라는 개념을 착용하면서 인간의 사고와 인지능력에 언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벤자민 리 워프는 이 가설을 위해 아메리카 인디언 중 한 부족인 호피족과 유럽인들의 언어를 비교했습니다. 유럽인과 달리 호피족에게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설명하는 언어가 없었죠. 그들에겐 '아침, 점심, 저녁' 혹은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시간 표현 수단이 없다는 겁니다. 이 결과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 때 '언제' 일어났는가 보다는 그 사건을 '직접 보았는가'에 주안점을 둔다는 걸 찾아냈습니다. 표현 방식이 달라 사고하는 관점도 차이가 난다는 게 이 가설의 요점입니다.


영화, 역사, 그리고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근거들

다소 어려운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역사에서나 현실에서도 언어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많습니다. 


제국주의 시대를 살펴볼까요? 정복에 열을 올리던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에서의 지휘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강제적으로 사용케 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우리의 언어를 통제하려 했던 일본의 의도와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역대 최악의 지도자면서 최고의 선전가라고도 일컬어지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역시 언어를 독재와 정복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그가 일상적으로나 연설 시 애용했던 용어들이 주술과 최면에서 쓰던 그것과 유사했다는 건 그만큼 언어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언론이 뉴스를 보도할 때 '프레임'을 중요시합니다. 어떤 사안을 특정 시각으로 바라보게끔 유도하는 '사고체계'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영화 '내부자들'에는 이를 적절히 설명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어떠어떠하다고 보기 힘들다'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검찰에서 피의자 조사할 때도 그렇고, 언론에서 기사 작성할 때도 자주 쓰고는 하죠. 그런데 이게 다 보카시(빛깔을 여리게 한다는 의미의 일본어) 장난이라는 건 알아요? '의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고의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청탁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근데 안상구 같은 어떻게 적용될까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관이 있다고 보 수 있다', '청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매우 보여진다'로도 쓸 수 있지요."

"말은 권력이고 힘이야."


말의 힘이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닙니다. '반복의 힘' 혹은 '긍정의 힘'이라는 내용으로 여러 성공 서적에 등장하는 것처럼 긍정적 마인드와 자기 최면을 활용해 성공한 인물들도 도처에 존재합니다.


언어 결정론은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와 같은 저명한 언어학자가 반론을 하기도 했지만, 학계에서는 아직 이 이론을 완벽하게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건 언어가 충분히 우리의 삶이나 문화 등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개연성'입니다.


물론 언어가 이성이나 문화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더 나아가 지배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언어 역시 인류의 산물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언어가 인간의 삶 속에서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누군가의 가벼운 말 한마디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있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만약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언어에 노출된 사람이 있다면, 부정적인 사고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물을 도출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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