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 Jul 18. 2023

저녁 뭐 먹을래?

그때는 몰랐던 것들

엄마는 전업주부로 상당히 전형적인 한국 엄마이다.

아이들이 아침밥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그래서 내가 새벽 6시 학교 간다고 집을 나서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늘 갓 지은 따뜻한 밥과 국을 차려주셨다.


그래도 시대가 변해서 엄마도 요즘은 가끔은 끼니를 거를 수도 있고 아침 안 먹는다고 큰일 나는 법 없다고 생각하시는 듯 하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집밥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크신 편이다.


그런 엄마가 늘 자주 물어왔던 질문.

"저녁 뭐 먹을래?"

퇴근시간즈음이면 톡을 보내거나 퇴근시간이 넘어서는 전화로 거의 매일 빠짐없이 물어보셨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왜 매번 저녁메뉴를 물어보는지.

그런데 내가 요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된 지금, 나는 남편에게 매번 묻는다.

"저녁 뭐 먹을래?"


아, 정말 요리란 나와 맞지 않는 세계의 일이다.

갑작스러운 요리에 대한 푸념이라니, 조금 당황스럽겠지만, 사실 그냥 처음부터 이 말이 하고 싶었다.

감히 말하건대 집안일에서 요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단코 90%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량적인 수치로 보아도 정성적인 수치로 보아도 그렇다.

감정적인 수치로는 99%의 비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쯤 되면 눈치 챘겠지만 그렇다, 난 요알못이다.

요리에 소질도 없는 듯하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좋아하는 건 모르겠지만 소질이 있는 사람은 있다. 분명히.


요리를 잘하지도 못하지만, 요리할 때의 번잡스러움도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어제저녁 잘 닦고 말려놓은 싱크대와 건조대에 물이 사방팔방 튀는 건 물론이고, 간장이나 기름을 쓰면 분명 어디론가 튈 것이다. 고기나 생선을 굽거나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하면 온 집안에 냄새가 베기는 것도 너무 신경이 쓰인다.


남편과 둘이만 살 때는 요알못이라도 상관 없었다.

신혼 때는 평일엔 직장일 때문에 둘이 오붓하게 저녁 먹기도 힘들었고, 주말만 끼니를 잘 해결하면 됐는데 밀린 잠을 자느라 늦게 일어나기도 했지만 아침을 먹지 않다 보니 아침 겸 점심을 집에서 간단히 먹고 저녁은 외식을 하는 식이었다.


문제는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이제 요알못이던 요알이던 요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나야 3분 카레도 좋고, 밀키트도 좋고, 배달이나 외식도 다 상관없는데 아이에겐 차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상당히 까다로운 입맛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매우 미식가이다.

아이의 식단표를 짜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난 매번 회피하며 식단 따위 짜지 않고 '오늘 뭐 먹지'로 하루를 보내다 저녁시간이 임박해서는 남편에게 저녁메뉴를 내놓으라고 닦달을 하거나 결국은 엄마에게 SOS를 보낸다.

손주라면 끔찍하게 생각하시는 엄마는 결국 이런저런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와서 밥을 해주시곤 한다.


이쯤 됐는데도 요리에 취미를 못 붙이는 건 영영 못 붙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요즘은 이런 상황을 타계해 보고자 남편에게 반 협박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해. 내가 없을 땐 어떻게 할 거야."

요알못이 오늘 만든 샐러드

혹시 모른다.

그냥 딱 봐도 요알못일 것 같은 남편이지만, 요리를 배우면 나보다 잘할지.

그럼 난 로또 맞은 거지!








작가의 이전글 웃참 실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