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꿈'일 수도 있다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로서는 기안 84의 '기행(奇行)'이 늘 신선하고 재미있다.
그래서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빠짐없이 챙겨본다.
‘태어나서 세계일주’ 시리즈는 전편을 다 보았고 최근에 끝난 시즌4도 본방사수할 정도로 나는 그의 열혈 시청자다.
그 프로그램에서 기안 84가 네팔의 세르파 마을을 찾았을 때 그곳에서 만난 두 소년 타망과 라이가 있었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길을 걸으며 짐을 나르는 포터(셰르파) 일을 하는 아이들이었다.
특히 열일곱 살의 타망은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학교를 그만두고 30킬로가 넘는 짐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며
묵묵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든 환경 속에서도 그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기안 84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말 안 듣는 중딩들 여기 데리고 와서 셰르파 체험시키면 딱 좋겠다!”
그의 특유의 솔직한 말이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처럼 들렸다.
두 소년은 언젠가 한국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을 꿈꾸며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님의 영향으로 네팔 곳곳에는 한국어 학원이 많다고 한다.
많은 네팔 청년들이 ‘한국에서의 삶’을 꿈꾸며 공부 중이라고 했다.
기안 84는 두 소년들과 1박 2일 동안 포터 체험을 함께하며 진한 우정을 나누었다.
이별의 순간, 타망이 기안 84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지금도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실제로 한국에 돌아온 기안 84가 그들에게 한국어 교재를 보내주었다는 후일담까지 전해져 그의 진심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방송이 화제가 되자 MBC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타망과 라이를 초청해 달라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쏟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바람이 현실이 되었다.
두 소년이 정말 한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까지 행복해졌다.
그들이 얼마나 기뻐할지 이미 눈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한 두 소년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해맑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본 아이들은 낯선 진동과 속도에 멀미를 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한국의 컵라면을 처음 먹고 완전히 빠져버려, 아침마다 호텔에서 컵라면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치킨과 떡볶이를 맛보며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다니!” 하며 해맑게 웃었다.
K-POP 공연장을 방문해 직접 방청하며 춤추는 모습은 정말 어린아이 같았다.
그들의 행복은 화면 밖까지 번져 보는 나까지 미소 짓게 만들었다.
춤추는 아이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우리 또래인데 벌써 꿈을 이뤘네.”라고 말하던 그들의 눈빛에는 순수한 부러움과 동경이 가득했다.
놀이공원에서는 익사이팅한 놀이기구에 깜짝 놀라 기절하고 퍼레이드에서는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셰르파로 무거운 짐을 지던 소년들의 텐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밝고 활기찼다.
그리고 마침내 태어나서 바다를 처음 본 순간 너무 신기한 나머지 손으로 바닷물을 떠서 맛을 보더니
“악 너무 짜요!” 하며 뿜어버렸다.
그 장면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나도 모르게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한국에서의 시간이 그들에게는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어디를 가든 그들은 말했다.
“우리 꿈이 이루어졌어.”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네팔에서는 꿈이라고 생각한 일이 한국에서는 그냥 일상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우리는 왜 ‘한국인으로 산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고 있을까.
전기가 들어오는 따뜻한 집, 언제든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 꿈을 꿀 수 있는 자유와 기회들.
그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있으면서도 늘 불만과 비교 속에 마음을 소모하고 있지 않은가.
타망과 라이의 눈을 통해 나는 잊고 있던 감사를 다시 배우게 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과 동경'이라는 사실,
그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제일 먼저 감사해야 할 선물이라는 것을.
네팔의 두 소년이 내게 가르쳐준 건 '평범한 하루도 기적'이라는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