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와 '청년기'가 함께 떠난 힐링여행

by JIPPIL HAN

둘째 딸의 번아웃으로 갑자기 가게 된 강원도 양양으로의 둘만의 여행.
아이를 핑계로 계획한 여행이었지만, 사실 나에게도 힐링은 필요했다.

방에서 보이는 전망

이번 여행의 테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다 오는 여행’이다.


양양 숙소 방은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시원한 오션뷰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멋진 방이었다.
침대에 앉아있으면 낙산해수욕장의 바다와 일출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한참을 누워 뒹굴거리며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 갈매기 떼가 날아다니고 멀리 빨간 등대만 고요히 서 있다.
파도 소리만 철썩이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낙산해수욕장 비치에 나가보니 바닷가 나무 데크 옆에는 그네가 있었다. 나는 30년 만에 그네에 올랐다.

원래 그네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나는 완전히 심취해 ‘호우~ 호오~’ 소리를 내며 30분 넘게 꼼짝도 하지 않고 탔다.
딸은 그런 내 모습이 웃기는지 옆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바닷가 그네에서

우리는 그네를 타고 들어가는 길에 동전을 잔뜩 바꿔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고, 딸과 ‘인생 네 컷’을 찍었으며, 노래방에서 목이 쉬도록 노래도 불렀다.


바다가 보이는 유명한 카페에서는 '딸의 인생컷'을 건져주기 위해 나는 계속 셔터를 눌러댔고, 우리는 까르르 웃으며 사진을 골랐다.

사진 찍는 기술이 부족하다며 연신 타박을 해대는 딸은 “엄마, 다리가 길어 보이게 이렇게 찍어야 해.”

라며 자세까지 코치해 주었고 나는 그대로 찍어주느라 진땀을 뺐다.


저녁으로 대게도 배 터지게 먹고, 양양 전통시장에서 '호떡과 어묵'도 사 먹었다.

오는 길에 작은 소품샵에 들러 귀여운 열쇠고리와 엽서, 액세서리를 고르며 아주 소소하고, 그래서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캔맥주 한 캔을 기울이며 딸과 소위말하는 ‘진대(진지한 대화)’도 나눴다.

나는 대학 때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했던 것 같은데 요즘 청춘들은 참 고민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딸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마냥 어리게 생각했던 딸의 조그마한 머릿속에는 수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갱년기의 쓸쓸함과 번아웃의 무게가 아주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 둘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었다.

소품샵에서 딸과 구입한 귀요미들

항상 표현이 풍부한 우리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여행 같이 와줘서 정말 고마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의 허전한 구멍들이 조용하고 단단하게 메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넌 아직 너무 젊고, 아직 시간은 정말 많아.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지금 뭘 시작해도 너에겐 충분한 시간이 있어.”

딸의 표정은 대화를 할수록 점점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다음 날 아침 7시 48분쯤 우리는 방에서 일출을 보았다.

창문 밖으로 빨갛게 떠오르는 해가 보였고, 나는 서둘러 딸을 깨웠다.

잠이 덜 깬 딸은 눈을 비비며 창가로 다가왔고,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서서 조용히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딸이 말했다.

“엄마, 우리 자주 가자. 여행.”

나와의 여행이 지루하지는 않았나 보다.

다행이다.

소품샵에서 구입한 귀여운 팔찌 하나씩 차고 크로스

우리는 누구나 갱년기를 겪는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별것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다.

딸의 고민 많은 청춘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괜히 미리 움츠러들 필요도, 기운 빠질 필요도 없다.


갱년기는 분명 힘든 시기지만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오히려 더 따뜻한 자기 위로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딸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이 여행은 어느새 내 마음부터 먼저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갱년기가 ‘그다지 별일 아닌 시기’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나와 그리고 딸은 각자의 청춘의 언덕을 오르고 있다.

속도는 다를지 몰라도 누구나 자기만의 숨 가쁜 구간을 통과하며 조금씩 어른이 된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

갱년기는 ‘끝을 맞이하는 시기’가 아니라 다시 나를 살피고, 나를 알아가는 시기라는 것을.


딸을 위로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결국 나 또한 누군가의 다정한 손길이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를 보내며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편안하게 있어도 괜찮아지는 법을 배웠다.

아침 바다에서 함께 본 그 붉은 해처럼 지금의 이 시간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 삶의 다음 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갱년기는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시련이 아니라, 다시 한번 나를 부르며 다시 시작하라고 건네는 초대장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방에서 찍은 해돋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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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화-

딸과의 여행으로 월요일에 발행되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오늘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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