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복 없는 팔자

정말 팔자라는 게 있는 건가.

by JIPPIL HAN

이른 아침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벌써부터 상기되어 있었다.

"나 드디어 받아냈어 천만 원!! 흑.. 흑..... 어흑어흑 "


친구는 그렇게 한동안 울고 있었고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대학시절 친구는 안양에서 갈빗집을 크게 운영하는 부잣집 딸내미였다.

부자라고 부자티를 내는 법도 없었고 털털한 데다가 거침없는 말발에 화끈함 그 자체가 매력인 친구였다.


겉모습이 조금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해서 소위 말하는 '잘 노는 언니'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남자라고는 사귀어 본 적 없는 그야말로 '숙맥'이었다.


부자에 글래머러스, 거기에 성격까지 좋은 친구에게 소위 말하는 '똥파리' 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갈빗집 딸내미라는 소문은 삽시간에 복학생 선배들에게 퍼져나갔고, 이제 갓 복학한 선배들이 친구에 대해서 뭘 안다고 앞다퉈 대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구에게 대시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찌질하고 못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들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조심해.. 저 선배는 진짜 아닌 거 같아~ "라고 말하며 몇 번 주의를 줬지만, 모태솔로 숙맥인 친구는 선배들이 조금만 잘해줘도 금방 '폴인러브' 모드였다.


결국 친구는 그 인간들에게 기어코 돈을 떼이고서야 끝장을 봤다.


그 인간들 수법은 이런 식이었다.

" 오빠가 지금 일이 있어서 지방에 내려왔는데 지갑을 잃어버려서 못 올라가고 있어서 그러는데 미안한데 5만 원만 좀 보내줄래? 서울 가서 바로 갚을게"


뭐 이런 식으로 돈을 조금씩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취방 월세를 내야 하는데 시골에서 아직 부모님이 돈을 안 보낸다는 둥,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당장 입원비가 없다는 둥 하며 점차 큰돈을 요구했다.


그 인간들은 돈은 내 친구에게 뜯어내고 버젓이 다른 여자와 데이트하는 광경이 내 눈에도 수없이 목격됐다.


순진한 내 친구는 결국 스스로 돈을 받아내는데도 실패한다.


결국 친구는 자신의 친오빠에게 SOS를 친다.

키가 190 가까이 되고 덩치가 마동석 만한 오빠는 학교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없던 돈까지 토해내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그렇게 달라고 해도 돈이 없다고 버티던 놈들이 마동석 오빠를 보자마자 바로바로 계좌이체 했다고 한다.


친구는 이후로도 몇 번이나 같은 류의 인간들과 사귀며 돈 떼이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마동석 오빠가 학교에 등장했다. 친구가 사귀는 남자들이 얼마나 쓰레기들인지 내가 다 지긋지긋했다.

친구는 대학 때부터 "나는 남자 복이 없는 팔자인가 봐"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고 결국 그 말이 씨가 되어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남자 복 없는 년? 의 팔자로 살아가고 있다.


27살에 허우대만 멀쩡한 졸부 집안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몇 년 만에 별거를 하더니 결국 이혼했다.


친구는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운동에 빠졌다.

마라톤, 볼링에 벨리댄스까지 안 하는 운동이 없었다.


부유함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고 하더니, 친구가 돈이 좀 있다는 소문이 동호회 안에 퍼지면서 또 그놈의 똥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친구는 또 그 똥파리 King of Kings와 사귀었고 그놈은 친구에게 천만 원을 자기에게 주면 자기가 대신 투자 해주고, 한 달에 이자를 20만 원씩 주겠다고 했다.

처음엔 친구도 거절했었지만.. 이 집요한 놈이 친구를 가스라이팅 했다고 한다.


"너 진짜 미래에 대한 계획이 그렇게 없어서 어떡하니.. 누가 요즘에 돈을 은행에 넣어 놔~.. 진짜 생각 없네.."라는 식으로 친구를 한심한 여자 취급했다.

그 꼬임에 넘어가 결국 친구는 천만 원을 그놈한테 쥐어주고 말았다.


모든 사기꾼들이 그렇듯이 처음 두세 달은 이자를 꼬박꼬박 챙겨줬으며 어떤 때는 볼링복이나 볼링공을 이자대신 선물하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는 자기에게 이번엔 진짜 사랑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면서 점점 이자를 건너뛰더니 만남도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대학 때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면서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그 놈에게 이자는 필요 없으니 원금이라도 돌려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이놈이 본성을 드러냈다.


"너 날 못 믿는 거야? 우리 사이가 이거밖에 안 되는 거야? " 하면서 돌려주기를 피했고, 친구를 계속 희망고문 했다.


결국 둘 사이에 악다구니만 오가게 되고, 본성을 드러낸 악마는 대놓고 친구에게 막말을 쏟아부으며 돈을 돌려주지 않고 약을 올렸다.


친구는 몇 년 동안 가족들에게는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견뎌왔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위궤양으로 병원을 전전했으며 자존감은 바닥을 뚫어 버렸다.


오늘 아침에 걸려온 전화는 그놈으로부터 드디어 돈을 받아냈다는 소식을 전하는 전화였다.


친구는 결국 형사소송까지 가서 드디어 3년 만에 돈을 돌려받았다.


원금은 천만 원인데 그 사기꾼이 친구에게 선물? 했다던 볼링공과 볼링복 등 가격을 모두 제외하고 900만 원만 돌려줬다고 한다. 생 양아치 새끼..

나머지도 돈도 싹 다 받아내고 싶었지만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이쯤에서 접기로 했다고 한다.

잘 했다. 그리고 다행이다.




정말 남자복 없는 팔자라는 게 있는 걸까?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친구의 삶을 보면 정말 그런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세상에 멋지고 존경할 만한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왜 유독 친구에게는 꼭 그런 쓰레기만 꼬이는 걸까?


"이번 생에서는 너 인생에서 그냥 남자를 빼버려라.

남자 없이도 너 자체 만으로도 너무 빛나고 훌륭하고 멋지니까 인생에서 남자 하나쯤은 포기하고 살아!!"


했는데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외로운 세상에서 연애도 안 하고 무슨 재미로 사니~ "


지집애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제발 다음 연애에서는 부디 있는 그대로 너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좋은 사람 만나서 말년에 남자 복이 차고 넘쳐 주체할 수 없게 되기를 바란다 친구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도 벌레가 무섭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