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스펙터클 했던 일본출국길

최종화

by JIPPIL HAN

2022년 4월 3일로 딸의 출국날짜가 결정됐다.


2022년부터 자가격리가 7일에서 3일로 줄어들어 일본에 입국해 3일간 호텔에서 격리를 하고,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입국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딸을 보낼 생각에 점점 마음이 허전해졌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딸과 함께 일본 입국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금방 지나 3월 25일, 출국을 일주일 정도 남긴 어느 날 아침이었다.


"엄마 나 어젯밤부터 설사를 계속했는데, 오늘은 오른쪽 아랫배가 계속 아파.."


어릴 때부터 장이 안 좋아 장염이 자주 걸리던 아이라 덜컥 겁이 났다.

서둘러 동네 내과를 찾았다.

선생님은 아픈 부위를 눌러보더니 '소견서'를 써주시면서 '맹장염'이 의심된다고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맹장염이라고?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우리는 놀란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종합병원으로 갔다.


검사결과는 '충수염'. 진짜 맹장염이었다.

당장 복강경 수술을 해야 하며 회복기간은 4~5일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지체 없이 아이를 곧장 입원시켰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입실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 왔다.

수술은 한 시간 정도 걸렸는데,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낼모레 출국인데 갑자기 무슨 맹장염? 이대로 아이를 일본에 보내도 되는 건가?

그러면서 대학에 가기 위해 노력한 1년 반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아이가 입원실로 왔을 때는 마취가 깨 어느 정도 정신이 든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젊은 나이라 회복이 빠를 것 같아 아마도 3~4일 후에 퇴원이 가능할 거라고 말해주셔서 겨우 마음을 놓았다.

입원.jpg 맹장염으로 입원한 딸

와.. 뭐가 이렇게 스펙터클 하지? 세상에 정말 쉬운 일이 없구나..

조금만 맹장염이 늦게 걸렸으면 모든 스케줄이 어긋날 뻔했다. 정말 아슬아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나 싶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딸이 일본에 도착해서 혼자 있다가 맹장염에 걸렸다면 어떡할 뻔했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하나님이 '쓸데없는 건 다 떼어내고 가라'며 미리 맹장염을 걸리게 하셨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없었다.

실제로 맹장을 떼어내고 난 이후, 그렇게 자주 걸리던 장염도 잘 걸리지 않게 됐다. (이건 내 추측이다)


아이는 바로 회복해 입원한 지 4일 만에 무사히 퇴원했으며, 배가 살짝 당긴다고 했지만 출국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드디어 4월 2일 출국날.

딸은 공항에서 많은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길에 올랐다.

친구들과 인사하느라 바쁜 와중에 출국 전 딸은 내 손에 편지 한 장을 쥐어줬다.


딸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편지를 읽으며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버렸고, 한참을 차 안에서 울었다.



To. 사랑하는 엄마

엄마~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진짜 일본에 가긴 가네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 유학얘기를 꺼냈을 때의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어요.

그때부터 스스로 선택한 길이 잘못된 길은 아닐지, 엄마아빠에게 괜한 짐만 드리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까 고민도 참 많이 했어요.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던 선택에, 단 한 번의 반대도 없이 함께 고민하고 늘 지지해 준 엄마께 항상 고마워

요. 엄마가 믿어준 만큼 일본에서 뭐든 열심히 해서 엄마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딸이 될게요.!

지난 20년간 그랬듯이 앞으로도 친한 친구 같은 모녀지간으로 오래오래 함께해요.

일본 가면 엄마 걱정이 더 늘겠지만 항상 조심하고 연락도 자주 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코로나 조심. 건강조심하시고 다시 볼 때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사랑합니다!!

편지.jpg 딸의 손 편지


딸은 대학 입학 후에도 줄곧 좋은 성적을 유지해 JASSO 장학금을 매달 48,000엔씩, 3년째 꼬박꼬박 받고 있으며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보태왔다.


3학년까지 마친 지금, 잠시 휴학을 하고 귀국을 해 숨 고르기를 하는 중인데, 그 와중에도 기업에서 단기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내년 4월에 남은 대학 1년 과정을 마치러 일본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파란만장한 4등급 딸의 게이오대학 입학 성공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브런치에 딸아이의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힘들게 달려온 1년 반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시간 속에서 놓치고 있었던 딸의 피나는 노력들과 성실함에, 내 딸이지만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동시에 그 시절 엄마로서 열심히 뒷바라지하며 달려온 나 자신을 돌아보며

“ 정말 수고 많았다”며 자신을 토닥이고 위로하고 칭찬해 주며 치유받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랑하는 내 두 딸들이 나아가는 길이 꽃길이던 가시밭길이던 상관없이, 묵묵히 지지하고 응원하는 엄마로 영원히 곁에 있을 것이라 다짐해 본다.


* 10화 최종화로 연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지속적인 댓글로 응원해 주시고 함께 기뻐해주신 작가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다음 연재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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