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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대첩:엄마의 완벽한 승리

by JIPPIL HAN

예전에는 희한하게 어느 집에나 ‘망나니’라 불릴 만한 사람이 꼭 한 명씩 있었다.
명절에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꼭 사고 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그 주인공은 막내고모부였다.


그는 늘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어서, 술만 취하면 손위처남인 아빠에게 막말을 하고,

처남댁인 우리 엄마에게까지 행패를 부렸다. 심지어 장모인 할머니에게까지 시비를 걸곤 했다.

그의 술주정은 늘 같은 레퍼토리였다.

“내가 저 못난 것(막내고모를 말한다)이랑 결혼만 안 했어도…
나한테 고맙다고 대접은 못할 망정, 명절날 오면 날 무시해?”

누가 그를 무시했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매번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우리는 명절만 되면 제발 이번에는 막내고모부가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는 어김없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막내고모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 속을 그렇게 썩였다고 하는데 결혼하더니 남편까지 할머니 속을 썩이고 있는 중이었다.


명절밤마다 반복되는 그의 주사 때문에 우리 가족은 넌덜머리가 났다.

안 그래도 집안일로 지친 여자들은 더 힘들었다.
술에 취한 그는 이것저것 가져오라며 요구만 늘어놓아, 피로가 두 배가 되었다.

아빠와 다른 고모부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정신이 멀쩡할 때 혼내도 보고 타일러도 봤지만 그때뿐, 술만 마시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러던 어느 명절 밤 그날도 어김없이 그는 주사를 부리며 집안을 한바탕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식구들은 모두 지쳐 “저 인간을 어떻게 집에 보내나” 한숨만 쉬고, 고모는 옆에서 신세 한탄을 하며 울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우당탕탕! 쨍그랑!!”


거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놀라 달려가 보니, 우리 엄마가 밥상을 엎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는 평생 입에서 험한 말 한 번 안 하시던 엄마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뮈~친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니?
여기 너보다 어린 사람 없는데 어디서 꼬장을 부리고 지랄이야?
술을 먹으려면 곱게 처먹을 것이지!
가만히 있으니까 우리가 너 하나 못 이겨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어디서 술을 배워 와서 가족들한테 꼬장질이야!”


순간, 집안에는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
모두 입을 벌린 채 얼어붙어 있었고 웃긴 건 고모부의 반응이었다.

그는 슬금슬금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우리 식구들은 놀라움 반, 통쾌함 반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고모부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고모를 툭툭 치며 눈짓했다.
“가자.”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조용히 집을 나갔다.


엄마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엄마는 그날,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한 방에 터뜨린 것이다.

언니와 나는 엎어진 밥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인지 손길이 가벼운 걸 느꼈다.
언니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그 후로 한동안 고모부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1년쯤 지난 설날, 오랜만에 나타난 고모부는 엄마에게 90도 인사를 깍듯하게 하고,

술도 맥주 몇 잔만 마신 뒤 얌전히 돌아갔다.


그때 우리는 알았다. 엄마에게는 ‘한 방’이 있다는 것을.

참한 며느리였던 엄마의 카리스마 한 방 덕분에, 몇십 년간 우리를 괴롭히던 명절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해소되었다.

요즘 애들 말로 우리 엄마!! 진짜 개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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