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시집살이의 고단한 나날 속에서도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엄마의 몸이 저렇게 많이 아픈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리면 요리, 청소면 청소, 설거지면 설거지.
자식인 우리조차 그 완벽주의에 지쳐 숨이 막힐 때가 있었다.
특히 요리에서는 맛과 영양뿐 아니라 데코레이션을 꽤나 중시하셨다.
엄마가 대학에서 가정학과 식품영양학을 전공해서인지 유난히 예쁜 그릇에 정갈하게 담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릇에 음식을 담을 때 국물이 조금이라도 흘러내리면 깨끗이 닦아서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곤 하셨다.
그런 완벽주의는 도시락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만약 그 시절에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엄마 도시락은 매일 사진으로 기록되었을 만한 비주얼이었다.
엄마는 늘 피곤에 지친 몸으로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셨다.
김치, 콩자반, 멸치볶음처럼 흔한 반찬이라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날마다 정성으로 만든 인생 도시락을 준비하셨다.
그중에서도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반찬이 있다. 반찬이라기보다는 메인 요리에 가까운 음식.
바로 메추리알 고로케였다.
고기 완자 속에 메추리알을 넣어서 튀긴 뒤, 단면을 잘라 케첩을 곱게 뿌려주셨다.
비주얼은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도시락통에는 고작 세네 개가 들어갔다.
계란말이는 요즘 이자카야 안주로 내놔도 손색없는 비주얼이었고 비엔나소시지는 십자로 칼집을 내어 구워 오징어 모양을 내주셨다.
도시락 반찬 하나하나가 마치 작품 같았다.
그런 도시락이 자랑스럽고 감사하긴 했지만, 문제는 내 입에는 거의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이면 친구들은 내 도시락 뚜껑이 열리기만 기다렸다가 순식간에 몰려들어 반찬을 싹쓸이했다.
결국 내게 남는 것은 멸치볶음과 김치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제발 반찬 좀 평범하게 싸 달라”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으셨다.
심지어 나중에는 뺏어먹는 친구들의 몫까지 따로 싸주셨지만 결국 내 것까지 먹어치우고서야 끝이 났다.
나는 친구들이 싸 온 평범한 반찬이 내 몫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힘들게 새벽마다 도시락을 준비하신 이유가 뭘까?
나중에 엄마께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머니 역시 엄마의 도시락을 늘 그렇게 정성스럽게 싸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도 자식한테 그렇게 하는게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고.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지만,
나는 엄마의 그런 완벽주의 성향에 불만이 많았으면서도 딸들의 도시락을 쌀 일이 있으면 어느새 엄마처럼
비주얼과 영양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성향의 대물림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 날도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 너희 엄마가 싸주신 그 고로케…진짜 맛있었는데.. 지금도 가끔 먹고 싶다니까.”
" 이것들아. 그 반찬 너희들만 실컷 먹은 거 알고 있냐?
난 거의 먹지도 못했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