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엄마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엄마의 시간을 정리해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깊고 단단했는지가 새삼 느껴졌다.
엄마는 결혼전 나름 ‘인텔리 여성’이었다.
아빠를 만나 이십대의 어린 나이에 시누이 셋이 모두 미혼인 집안으로 시집와 30년 넘게 시집살이를 했다.
그 긴 세월 동안 시누이 셋을 모두 시집보내고 할머니의 뇌출혈, 할아버지의 방광암 간병까지 도맡았다.
엄마는 늘 일곱 식구를 받치던 기둥이었고 그늘에서 묵묵히 가족을 지탱하던 그림자였다.
엄마의 청춘과 젊음 뿐 아니라 중년시절 대부분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며느리’,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흘러가버렸다.
젊은 시절의 아빠를 기억한다.
아빠는 우리에게는 다정하고 자상한 아빠였지만 엄마에게는 그리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술을 좋아하셨고 귀가가 늦거나 친구들을 데리고 와 한밤중에 술상을 차리게 하는 일도 잦았다.
하루종일 집안일에 지친 엄마였지만 그런 아빠에게 엄마는 불평 한마디 없이 웃으며 상을 봐주셨다.
나는 도저히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아빠한테 아무 말도 안 해?”
그러면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아빠 혼자 일곱 식구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신데..
선생 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말 모르니? 그 만큼 아빠 속이 많이 힘드신거거든~ 이 정도는 참아야지.”
그 말이 어린 나에게는 그저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으로만 비춰져서 엄마가 오히려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엄마의 아빠에 대한 마음은 세상을 감싸 안는 강인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올해 엄마는 여든셋, 아빠는 여든일곱이 되셨다.
이제는 엄마 아빠의 모든 역할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아빠가 엄마의 손과 발이 되어주신다.
시장에 가서 반찬을 사고, 청소는 물론이고 고손수 밥과 설거지를하시며, 쿠*에서 생필품을 주문해 모든 살림을 도맡으신다.
엄마가 시부모님께 하셨던 봉양을 이제는 아빠가 엄마에게 하고 있다.
“엄마에게 진 빚은 갚아야지.
엄마 병은 시집살이 때문에 생긴 거니까 이제는 내가 다 갚을 차례야.”
아빠는 담담하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아빠에 대한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완성되어 가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엄마의 아빠에 대한 마음은 ‘인내’로 시작해 ‘사랑’으로 완성되었고,
아빠의 사랑은 그 사랑을 ‘되돌려줌’으로 완성되고 있다.
사람의 인연이란 그렇게 완전한 원을 그리며 닫혀가는지도 모른다.
이제 두 분은 노년의 시간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느리지만 단단하게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지만 모양 빠진다며 끝내 지팡이를 짚지 않으신다.
그 지팡이 역할을 아빠가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두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두 분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인내로 시작해 사랑으로 완성된 인생. 그것이 바로 엄마가 맘속에 품었던 금거북이이 형태였던 것이다.
이 글을 끝으로 ‘엄마의 금거북이’ 연재를 마칩니다.
오랜 세월 서로의 빛이자 그림자가 되어 살아온 두 분이 이제는 서로의 손과 발이 되어 평온하고 따뜻한 노년을 걸어가시길 자식으로서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