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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Jan 30. 2022

단식과 기나긴 밤

몸에는 좋아요..잠에는 몰라요..

일단 하루를 꼬박 굶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30여시간쯤 되는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평상시와 똑같이 물 한잔을 마시고 단식에 대한 소소한 느낌과 나의 다짐을 섞어서 한 그릇 브런치에 올렸다. 물론 이번엔 마누라 검열없이 재빨리 발행버튼을 눌렀다. 단식에 대한 나의 다짐이자 마누라에 대한 압력의 표시이기도 했다.


오전에 미용실에 가서 덥수룩해진 나의 머리카락을 댕강댕강 잘라내고 별 의미없는 몇 마디 주고 받았다. 뭐 명절에 대한 이야기지만 예의상이다. 손님으로서 다음에 또 오시라는 마음의 립서비스와 어색함을 그냥 몇 마디에 희석시키는 과정인 셈이다. 물론 집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서로 웃으며 맞장구치며 이야기하는 아주머니들도 상당히 많다. 각자의 생각대로 이야기하곤 각자가 원하는 스타일로 나왔는지는 거울을 봐도 잘 모른다. 덥수룩함만 없애면 되었던 아침이었다.


사실 아침시간을 건너띄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점심까지도 휴일이기도 하니 그냥 뒹굴거리면 잘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뒹굴거리기도 뭣해서 아내랑 오후에는 산책을 가자고 말을 건네본다. 요즘은 도심지에도 걸을 수 있는 공간들이 많기도 하고 특히 내가 사는 동네는 강변으로도 산으로도 걷기 좋은 모양새다. 걷는 사람도 같이 다니는 개들도 허벌나다. 각자의 이유와 기분은 다르겠지만 운동도 여유도 시간도 자유로워 보인다. 나설 때 사탕 하나를 꽁쳐 넣어간다.


문제는 저녁시간이 다가오면서부터다. 물론 그 전에도 여러차례 고비들이 찾아온다. 애들이 사온 떡도 먹고 싶고, 달달구리한 초콜렛도 하나 먹어보고 싶지만 2022년 처음 다짐한 ‘단식’이라는 거창한 계획을 허망하게 끝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아내도 눈치를 본다. 그러다 결국 배고픔과 미안함에 ‘짜장라면’ 하나로 저녁을 때운다. 계란 후라이도 하나 올리두만…

“방문 닫아줘? 냄새 날텐데”


위기다. 저녁 6시부터 잠이 들 때까지 유튜브를 보거나 뭐 심심풀이 기사나 브런치 글을 읽을 때도 가급적 먹는 게 안나오는 걸로 봐야한다. 그런데 요즘엔 뭐든 먹는 것과 연관되지 않은게 잘없다. 그래서 그냥 밀리의 서재를 열어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 잡다한 오디오북을 틀어본다. 귀는 틀어막아도 코가 문제다. 다행히 비염기가 조금 있고 개처럼 후각이 아주 발달한 편은 아니라 견딜만은 하다. 그래도 침은 흐른다. 속으로 다짐한다. ‘일어나면 짜장라면을 끓여먹자’고


마지막 고비는 잠이다. 배고픈 상태에서 잠을 고이들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맥주라도 한 잔, 먹태나 자주 먹던 통닭의 아스라한 포만감에 스르륵 잠들어 가던 행복감은 온데간데 없다. 몸속의 피가 위장이나 기타 부위로 좀 분산되어져줘야 쉽게 ‘뇌’라는 놈에게서 나의 온갖 상념과 공상들을 뺏어내어 저절로 지치게 만들텐데 단식이라는 걸 해보면 ‘뇌’를 빼곤 온갖 장기를 쉬게 만들어 결국 피곤함과 적절한 혈액의 분배로 더 쉽게 잠들어 내는 과정이 어렵다. 정신이 가면 갈수록 말짱해진다. 그러다 결국 ‘아몰랑’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살라구 이 지랄을 떠나 그냥 먹고 편하게 자자고… 안돼에~~~


생각해보면 인생은, 나의 몸은 뇌와의 치열한 싸움이다. 뇌는 나의 몸과 별개의 놈이다. ‘뇌’가 하자는 대로 하면 폭망이다. 쓸모는 많지만 위험도 많다. 단식으로 별걸 다 생각하게 되는 밤이었다.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들고 아침에 평상시보다 일찍 눈을 떠서 물 한잔 들이키고 글을 쓴다. 올릴까? 오늘은 정기연재일인데…


‘배고파’




*사진출처: 고돌블로그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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