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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황 Sep 12. 2022

가을이 되면

그리움, 고마움...따스함.

오랜만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30여년만이었던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대학을 들어가 한참 대학새내기생활을 당구장과 투(길거리 기습야외투쟁)라는 이중생활로 이도저도 아닌 정체성 불분명하고 어정쩡한 딱이였을때 선생님에게서 어찌저찌 연락을 받고 당시 재수생활중이었던 친구YJ를 보기위해 동대구 재수학원옆 하숙집을 찾아갔었던 마지막 모습을 뵙고 작년에 용기를 내서 연락드린게 그쯤의 시간이 흐른후였습니다.

"선생님 저 ***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라고, 기억하지. 잘지내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겨우 꺼낸 그 한마디에 따스하게 답해주시던 나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셨지요.

한 반에 60명 넘는 학생들중 존재감없기로는 둘째가라할 정도의 학생(당시에는 집이 잘살거나, 싸움등으로 속을 많이 썩이던 놈들 아니면 다--고만고만이었죠 ㅎ)이었던 나를 기억해 주시는 선생님과 오랜만의 해후에서 못먹는 술도 먹고 절도 한번 올리며 지금까지 가끔 뵙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2018년 교감선생님으로 은퇴하시고 현재 백수시라며, 백수과로사한다고 웃으시며 즐겁게 지내시는 선생님은 부산 바로 옆 김해에 사시는 통에 예전 구미에서 근무하셨을때 제자들이 잘 찾아오지 못하고 그나마 가까운 저와 가끔 자전거로 바람도 쐬고, 인생이야기도 나누며 선생님 말씀대로 같이 늙어가고 있나봅니다.

얼마전 선생님의 장인, 장모님이 연달아 가까운 시기에 돌아가신지라 바쁘시기도 하고 뭐라 드릴 말씀도 없어서 연락을 못드리던 차에 갑자기 전화를 주셨네요.

요악하자면, 이제 연세가 드시면서 그간 마음속에 담아만 두셨던 일들도 조금 정리하시면서 사후 장기 시신기증과 연명치료반대(보호자동의)등을 마무리하셨다는 말씀에 아직 정정하시다는 위로의 예를 표했지만 낼모레면 칠십이라시며 나름 아직 건강하신 모습과는 별개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시는 깐깐한 수학선생님이십니다.


삶은 언젠가 끝납니다.

평균적으로보면 80-90세가 흔한 세상이지만 각자 주어진 인생의 길이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뭘 더 바래야 할까요?

물론 가진게 많고 누릴게 많으면 아쉬움이 커질만도 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문제라 답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정해진 시간속으로의 사라짐을 누구나 받아들게 되는 아주 공평한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거나 힘이 아무리 세도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건 매마찬가지니까요.

자꾸 버리고 비우고 떼어내야 홀가분하게 인생의 끝을 즐기게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이 선생님인 것은 먼저 태어나서이기도 하지만 스승으로 가르침을 주는 모습에 또 인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갈무리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시는 존경하는 나의 담임선생님이십니다.


가을, 새벽공기가 선선하다 못해 차가워 거실창문을 닫으며 조용히 나의 선생님에 대한 단상을 써봅니다.

멀리 귀뚜라미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는 시원한 가을엔 선생님에게 추어탕이라도 한그릇 같이 드시자고 말씀드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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