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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기타 Sep 15. 2023

엄마, 나 반장 됐어

  휴대전화기에 문자 알림이 들어왔다. 가족 단톡방에 딸이 올린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있다. 손녀가 뛰어오는 사진이다. 언제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녀의 얼굴에 함박꽃이 활짝 피어있다. 더할 나위 없는 신이 난 표정이다. 뒤이어 문자가 왔다. '서윤이 오늘 반장 됐어요.' 얼굴 가득한 함박웃음으로 엄마를 향해 뛰어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손녀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2학기 반장선거에서 2차 선거를 통해 반장으로 뽑혔다는 것이다. 지난 1학기 반장선거 때도 나섰으나, 2차 투표에서 한 표 차이로 떨어졌었다. 그때 아쉬워하던 손녀의 얼굴을 기억한다.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손녀가 2차 선거에서 한 표 차이로 반장이 된 것이다. 어린 마음에 매우 기뻤던 모양이다. 지난번 반장선거에서 아쉬웠던 경험도 있으니, 2차 투표가 진행되고 집계가 발표될 때까지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하는 생각에 '그깟 반장 못하면 어때, 괜찮아' 하고 위로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한 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반장이 되었으니 어린 마음에 또 얼마나 기뻤을까. 그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하고 싶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내달려간 손녀다. 매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면 집 앞에서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고 집으로 달려오다 저만큼에서 나를 향해 손 흔드는 엄마의 모습을 확인하곤 '엄마, 나 반장 됐어'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뛰어오는 모습이 절묘하게 포착되어 있었다. 사진 속 손녀의 얼굴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딸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엔 영상통화다. 손녀 얼굴을 영상으로 보며 반장 당선을 축하해 주었다. '우리 서윤이 반장 되었다니 축하해. 앞으로 반장이라 불러야겠네.' 손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반장이 아니고 회장이에요.' 요즘 학교에선 반장이라 하지 않고 회장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래도 반장이라는 어감이 더 익숙하고 정겹다. 우리 때 회장은 학년별 대표나 전체 학년 대표를 회장이라 했었다. '앞으로 친구들과 더 잘 지내고, 선생님 말씀 잘 따르고 많이 도와드려라. 반장은 모든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하니, 밥도 잘 먹고 튼튼해야 한다.' 하니 '네'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손녀에게 '반장이 된 기념으로 할아버지가 뭐 하나 해줄까? 갖고 싶은 것 뭐 없니?' 선물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갖고 싶은 것 생각나면 전화해' 하고 통화를 마쳤다.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처음 느낌대로 세상 다 가진 듯 기쁨에 넘치는 표정이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숨김이 없다. 좋고 싫고 기쁘고 슬픈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1학기 때 하지 못한 반장으로 선출되었기에 그 기쁨을 제일 먼저 엄마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얼굴과 몸동작 하나하나에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저만큼에서 마중 나온 엄마를 보는 순간 '엄마, 나 오늘 반장 됐어!'라는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족 단톡방에 사진과 함께 소식을 올렸다. 축하의 메시지, 꽃다발, 이모티콘, 소액의 축하금 소식이 이어졌다. 외할아버지로서 무슨 선물을 해주나?. 적당한 게 뭐가 있을까? 딸이 손녀가 반장이 되면 비 오는 날 우선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교실에 우산을 갖다 놓겠다는 공약(?)을 했다고 하여 우산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우산 구매에 쓰라고 약간의 돈을 딸에게 보내줄까, 아니면 학급 비치용으로 둘 만한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사서 학급에 두는 건 어떨까 싶어 딸과 의논해 보리라 생각했다.


  그날 저녁, 딸과 통화를 마친 아내가 큰소리로 웃었다. 내용인 즉, 반장 엄마가 되었으니 애들과 담임에게 한턱내야 하는 것은 아니냐고 했더니 요즘 학교에 그런 문화도 없고 또 하면 안 된다며 대신 손녀가 공약한대로 어린이용 우산 열 개 정도를 구입하기로 마음먹고 퇴근한 사위에게 말했다고 한다. 평소에도 하나뿐인 제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사위다. 반장 소식에 기분이 좋은 사위는 우산 얘기를 듣자마자 대뜸 '애들이 몇 명인데 열 개가 뭐야, 한 서른 개는 갖다 놔야지' 하더라며 웃었다. 요즘은 초등학교 한 반의 학생 수가 서른 명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경제적 부담으로 결혼이 점점 늦어지고, 출산율도 OECD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학생 수도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다. 학급 인원이 스무일곱 명이니 서른 개까진 필요 없고, 또 가지고 온 애들도 있을 테니 한 스무 개 정도만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크게 웃은 이유는 딸이 한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딸에게 '너도 반장 엄마로서 앞으로 잘해라, 서윤이에게도 신경 더 쓰고, 그리고 반장 엄마 된 것을 축하해'라는 말에 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고 했다. '네, 알겠습니다, 반장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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