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에 놀란다. 구순이 훌쩍 넘으신 엄마는 홀로 경기도 외곽의 작은 아파트에서 지내시고 있다.
며칠 전 전화통화 때 독감에 걸리셨다고 하셨는데 지니는 엄마 걱정에 서울에 사는 큰오빠에게 연락을 해두었었다. 이틀 전 오빠가 엄마에게 다녀간 후로 안부를 물으려 다시 전화를 한 것이다.
“여보, 엄마가 많이 아파 보여. 어쩌지?”
일주일 전 헤어질 때 눈물을 보이시던 엄마는 그래도 아프지 않으셨는데 지금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달라 지니는 놀란다. 그리고 지니는 다시 엄마를 보면 좋겠다고 남편에게 독백하듯 말한다.
남편은 말없이 고민한다.
와이프가 한국에서 3주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지 겨우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와이프의 지친 몸과 오른 어깨의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서였다.
“당신은 어때? 엄마 상태는 어때 보여? “
“난 괜찮아. 엄마는 많이 안 좋아 보여. 목소리가 잠겨 있는데 쇳소리가 나고 힘이 없다며 끊으셨어 “
남편은 지니의 말을 들으며 간단히 결정을 내린다. 2층에 올라가 빈 여행용 가방 하나를 챙겨 빠르게 짐을 꾸린다.
“빨리 오늘 비행기 표를 사고 오늘 밤에라도 가요. 난 괜찮아. 작은 애도 있고 혼자가 아니니. 당신이 걱정이지”
지니는 그날 밤 11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엔 다음날 새벽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엄마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향한다. 한국의 겨울 아침은 늦다. 도착한 아파트는 새벽 어스름과 더불어 추위를 더하고 있다.
지니는 엘리베이터로 7층 아파트에 올라 초인종을 누른다. 그러는 사이 센서로 동작하는 등이 꺼지고 아파트 안에선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지니는 덜컥 겁이 난다. 혹시 엄마가 돌아가신 건 아닌가 겁이 나 재빨리 현관 비밀번호를 기억해 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안방에 비스듬히 앉아 침대에 가슴을 대고 힘없이 머리를 수그린 채 있는 엄마를 발견한다.
“엄마? 엄마 괜찮아? “
엄마는 겨우겨우 눈을 들어 누군가 눈앞에 있음을 알아차린다.
“…애미야…..나 좀 살려주라. 숨을 쉬지 못하겠어”
엄마는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흐느끼며 딸을 며느리로 착각하고는 안긴다. 일주일 전에 미국으로 갔던 딸이 왔으리라 상상하지 못하신 것이다.
“여보, 나야. 엄마집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너무 아파하셔. 얼굴도 못 알아보셔. 어떻게 해?”
마음이 바쁜 지니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도움을 구한다.
“빨리 119에 전화를 걸어 응급이송을 하고 ㅁ병원의 부원장님에게 연락을 취해놔요. 서둘러”
지니는 119에 전화를 걸고 엄마를 ㅁ병원의 응급실로 옮긴다. 친분이 있던 부원장님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받기로 한다. 도착한 병원에서 당직의사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는다.
“빨리 결정하세요. 가슴 촬영결과 심부전이 심하신데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오늘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20분을 드릴 테니 의논하세요. 저희는 수술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지니는 큰 오빠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물어본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전화를 건다.
“후회하지 말고. 당장 수술을 해요”
지니는 의사에게 수술을 하겠다고 동의서에 사인을 한다. 막힌 혈관을 뚫는 수술로 수술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고 한다.
며칠간의 입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거동을 하지 못한다. 가정용 산소 호흡기를 달아야 하고 이동식 좌변기와 상체를 굽힐 수 있는 환자용 침대에서 생활해야 한다. 독감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수술을 했다면 홀로 생활하며 끼니를 걸러서 생긴 영양실조로 인한 체력소실은 걷는데 어려움을 주었다. 혼자는 걷지 못하는 상태로 용변을 보려면 이동식 좌변기에 앉아야 하는데 그 짧은 움직임조차 여의치 않다. 지니는 오른 어깨 통증이 있어서 엄마를 앞으로 안아 이동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엄마는 기억의 일부를 소실했거나 단기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대화도 어렵다.
“엄마? 나 누군지 알아? 나 지니. 알아요?”
“… 지니? 내… 딸?…… 미국 사는… 언제 왔어?”
산소 호흡기의 투명 플라스틱 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 거실엔 이동식 좌변기가 한쪽 편에 놓여 있다. 엄마는 연신 말하는 걸 어려워하고 기억하는 것조차 귀찮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적막함을 없애려 지니는 거실 티브이를 튼다. 엄마는 앉아 있는 것도 힘들다며 소파에 가로눕는다. 지니는 답답하고 속이 상한다. 엄마의 이상행동이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며 자책을 한다.
“엄마, 그게 아니야. 엄마가 착각하는 거야”
“아니긴 뭐가 아냐. 니가 그때 그랬잖아!”
벌써 두해 전에 엄마는 딸과의 통화 중에 벼락같이 화를 냈었다. 평상시와 너무 다른 행동이었다. 좀처럼 화를 내시지 않던 분인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지니는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엄마 같지 않아”
“당신이 실수라도 했어?”
“아냐, 내 기억이 맞는데 엄마는 아니라고 하잖아. 그러면서 화를 내셔. 더군다나 나를 키운 것조차 후회하신다고도 하셨어. 이런 말은 처음 들어”
지니는 엄마가 키운 조카딸이다. 낳으신 엄마는 엄마의 바로 아랫동생이다. 그래서 지니는 엄마가 두 분인 샘이고 낳으신 엄마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지니의 아픔을 누구보다 이해하셨던 엄마의 입에서 너를 괜히 키웠다는 원망을 들었을 때 지니는 큰 충격에 빠졌었다. 엄마의 이상행동은 지니만을 타깃으로 하지 않았다. 오레곤에 사는 막내 이모에게도 독설을 쏟아 내셨고 먼저 간 작은 아들의 며느리에게도 이어졌다. 며칠이 지난 후에 통화를 할 때는 다시 평상시의 말투와 기억으로 돌아오곤 했다.
“엄마가 왜 그러시지? 다시는 전화를 못하겠어”
“글쎄, 언제부터 그러셨지?”
“아빠가 돌아가시곤 괜찮았는데 친엄마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그러셨던 것 같아. 그때 죽은 동생을 원망하며 ‘할 말이 많은데 먼저 갔냐’고 그러셨거든. 그리곤 엄마가 가끔 화를 내셨던 것 같아”
먼저 간 동생이 자신에게 지니를 키워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듣지 못하셨다며 원망을 했다고 한다.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것이 풀리지 않았던 평생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지니의 결혼을 단독으로 결정한 일은 자매의 사이를 멀어지게 했었다.
다음날이 되고 새로운 요양사가 왔다. 자신을 베테랑이라고 소개한 ㅇ요양사는 반말투로 엄마를 대했다.
“어머니, 그냥 이러고 있으면 안 돼. 운동을 해야지. 밥도 열심히 먹어. 기력을 내야지. 안 그러면 기저귀 차고 평생 누워있다가 가는 거야. 그게 좋아?”
요양사의 말이 틀리진 않았는데 지니는 묘한 반발심이 든다. 아마도 첫 번째 ㄱ요양사에 대한 나쁜 경험 때문에 반발심이 들었으리라 생각했다. 첫 번째 요양사도 비슷한 어투를 구사했었다. ㄱ요양사는 엄마가 병원 응급실로 간 날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지니는 ㄱ요양사를 괘심 하게 생각했다. 엄마가 아프던 시기에 엄마에게 방문하지 않았었다. 자기도 독감으로 아프다며 아무런 조치도 없이 무단으로 방문하지 않았었다. 엄마가 수술을 한다고 하니 자기도 엄마가 자주 기침을 하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는 파렴치한 말도 서슴지 않았었다. ㄱ요양사를 고용관리하던 사무실에서 관리자가 집을 방문해 죄송하다며 용서를 대신 구했다. 지니는 ㄱ요양사의 일을 없던 일로 했다.
ㅇ요양사의 제안으로 미끄럼방지용 패드 3장과 잡고 일어설 기둥 2개와 보행보조기 및 휠체어를 렌트했다. ㅇ요양사는 자신도 아버지를 10년이나 간병했다며 이런저런 코치를 했다. 그러나 엄마는 몰아붙이는 ㅇ요양사를 싫어했다.
“지니야, 장롱 아랫서랍에 빨간 봉투가 있는데 갖다 줘”
“그게 뭔데?”
지니는 안방에 들어가 장롱에서 봉투를 찾아 엄마에게 드린다. 엄마는 봉투를 받고 안에 있는 돈을 보고는 다시 갖다 놓으라고 한다. 엄마는 요양사가 없는 오후시간에 여러 번 봉투를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 불안해? 왜 이걸 계속 찾아?”
“아냐. …. 불안하긴……그냥…..”
엄마의 기억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손녀의 이름이나 통장의 비밀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봉투 안에 있던 돈이 얼마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며 약간 모자란 것 같다고 한다. 지니는 겁이 덜컥 난다. 혹시 이번 일로 엄마가 치매증상이 급격히 찾아왔나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겨울 눈이 내리고 기온은 뚝 떨어졌다. 지니는 엄마를 보살피느라 몸이 지쳐가고 있다. 새벽에 서너 번씩 소변을 보려는 엄마를 부축해야 하므로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양팔을 벌려 엄마를 앞으로 껴안고는 부축을 하는데 매번 엄마는 못 일어서겠다며 주저앉으려 해 팔에 힘을 세게 주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움직이다 보니 팔과 허리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다.
“안돼, 엄마.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서기 더 힘들어. 조금만 참아요”
지니의 도움 덕분이었을까. 엄마는 산소 호흡기를 떼어 내고도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없어졌다. 혼자 일어나 걷지는 못하지만 한달만에 엄마의 호전되는 모습에 지니는 내심 뿌듯함을 느낀다. 엄마의 나아지는 모습을 보니 엄마가 조금 더 괜찮아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달이 거의 일년은 된듯하다.
“엄마, 아프지 마. 제발 아프지 마요“
“…. 알. 았. 어…. “
“몸이 나아지면 미국 우리 집에서 살자. 아이들 보고 싶지? 빨리 나아야 해.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