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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복 Sep 12. 2024

삼총사

단편 소설 6




다리를 다친 이후로 더 이상 어린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급격한 무관심이 내 마음속에 밀려들었다.

마치 운명같이 신성일 같은 배우가 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난 나만의 인생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창민이도 그날 이후 학교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배우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면서 어린애 같은 치기 어린 장난도 시큰둥해졌다.

아이들은 저학년들처럼 보였고 난 그게 싫었다.

예전같이 애들과 장난을 치거나 욕지거리를 하며 놀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과의 생활은 시시하고 재미는 없고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세상의 주변인이 되었고 멀찌감치서 구경하는 관망자가 되었다.

난 내 마음을 알아봐 주는 친구가 그리웠다.




대통령이 죽었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거리는 차분해졌다.

사람들은 조용히 뒤집힌 세상을 살아간다.

흉흉한 가을이 가고 겨울이 빨리 왔다. 그리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죽었던 대통령의 망령이 다시 살아났다.

세상은 하얗게 질렸고 추위는 온몸의 세포와 뼈 마디마디를 얼리고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세상을 피해 달아나듯 빨라지고 적막한 밤은 일찍 찾아들었다.

봄이 오길 기다려야 하는 건지 세상을 구할 용사가 필요한 건지 모를 일이다.




겨울 방학이 되었다.

이번에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든다.

만든 카드를 들고 찐친 범석이네로 간다.

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고 지난해처럼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범석이는 바빴다. 바쁘다고 한다.

카드만을 전달하고 골목과 골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소소하게 시간은 흘렀다.

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등산도 따라가 보고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시장 초입에 있는 튀김 가게에서 파는 맛있는 오징어 튀김과 야채튀김도 사 먹고

늦은 저녁시간엔 어머니께서 생선장사하시는 아주머니들로부터 수금을 하는 걸 도와드리고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 둘째 고모의 아들인 경찰관 사촌형이 가르쳐주는 탁구도 배우고

어머니께서 다락방에 숨겨놓으신 꿀단지에서 아카시아 꿀을 생각날 때마다 한 숟가락씩 퍼먹고

방학 숙제도 할 겸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동네 어귀에 있는 호떡집에서 500원어치 호떡을 사다가 잔뜩 먹어 보기도 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낮잠도 원 없이 자기도 하며 친구 없이 겨울을 보냈다.




중3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몸은 왜소했다.

새로운 얼굴들이 보인다. 학교에서 많이 지나쳤겠지만 난 그들을 몰랐다.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신다. 영어 선생님이다.


“자, 이름을 호명할 테니 대답을 한다. 알았지?”

“네!”


이름이 호명되고 애들이 대답한다.

중간쯤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내 이름이 나온다.


“최낙준”

“네!”

“최민영”

“네”

“최정구”

“네”

“야, 니들 뭐냐? 삼총사야? 어떻게 또로록 셋이서 최 씨야?”


아이들도 다들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괜히 얼굴이 달아오른다. 무슨 창피한 일을 당한 것처럼.

선생님께서 우연히 말씀한 대로 우린 이날 이후로 삼총사가 되었다.

민영이는 아무 버스나 타도 집에 갈 수 있고 정구는 대부분의 버스를 타도 집에 갈 수 있었지만 난 2개의 버스만이 가능했다.

같이 다니면서 당연히 2개의 버스 번호만 타게 되었다.

가는 동안에도 얘기를 하느라 함께 버스를 탔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이면 우린 걸어서 집에 갔다.

가는 동안 중간에 있는 탁구장에 들러 탁구를 치고 아이스께끼도 사 먹고 거리에 있는 상점들을 보며 다녔다.

민영이가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꺾어지면 정구와 함께 30분 정도를 걸었다.

정구네 집 근처 국민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얘기를 하며 쉬었다.

정구와 헤어지고 또 30분 정도를 혼자 걸어 집으로 갔다.

늘 학교에서도 붙어 다녔고 하교도 같이 했다.

그러는 동안 시시하고 재미없던 시간은 잊혔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 둘을 얻었고 그들은 세상에 맞설 나의 동지처럼 보였다.

같이 한다는 건 힘이 되었고 나에겐 전환점이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자 조간신문을 보시며 역정을 내신다.


“세상 무서워 살겠어? 박정희보다 더한 놈이야”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었지만 세상은 살얼음판이었다.

군사독재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신문과 방송은 찬양 나팔을 불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계속 울분을 토해내셨고 소주병은 쌓여 갔다.

그래도 세상은 무심히 흘렀다.

아무도 아버지의 역정과 울분을 듣지 않는 듯했다.

하루는 누구랑 대판 싸웠다며 술이 취해 들어오셔서는 욕을 늘어놓으셨다.

아마도 정부에 비판적이신 아버지와 정치적 이견이 있는 동네 분과 싸움이 난 것 같다.


“이제 제발 나가서 그런 소리하지 말아요”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안방으로 데려가시며 한소리 하신다.


“뭐라고? 내가 틀린 소리 했어! 이게 나라야! 어디서 간 쓸게도 없는 못된 놈이”


또 욕을 한 바가지 토해내신다.

어머니께서는 하는 수없이 작은 술상을 들이신다.


“낙준아!”


다른 형제자매들은 모두 줄행랑을 쳤고 나만 남았다.

아버지께서는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인 나를 앞에 앉히곤 정치를 씹어 대신다.

난 술상을 바라보다 오이 조각을 하나 집고는 아버지의 말씀을 경청한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 빨리 자라고 채근하신다.

아버지께서는 ‘박동진’ 명창의 ‘적벽가’ 테이프를 튼다.

삼고초려로 작게 흐르던 소리는 중중모리를 거쳐 점차 강도를 높여 적벽대전의 자진모리로 세를 더 몰아붙인다.

판소리가 흐르고 시간이 흐른다.


아버지께서는 해외로 나가셨다.

아무도 듣지 않는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라 하셨다.

무서운 세상보다는 외로운 세상이 더 나을 거라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마음이 통하는 삼총사가 없었고 세상은 그들을 구할 삼총사가 나타나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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