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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Jun 10. 2022

tree_8. 어바웃타임

아버지의 죽음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다.

암에 걸린 사람도 살리는 현대 의학이 허리 삐끗한 사람을 못 고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나흘간 병원만 전전하다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노환이나 병환으로 돌아가셨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전 4시부터 새벽 시장을 누비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 가족을 위해 사시다 새벽 이슬이 되셨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시원한 수박 한 통 사드리지 못한 게 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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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려오지 마래이. 안 내려와도 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구 전역을 휩쓸던 지난 3월 초는

대구에서 홀로 사시는 저희 어머니의 일흔 번째 생신이 있었습니다.

대구 다른 동네와 경남 양산, 그리고 서울에 흩어져 살고 있는 저희 삼 남매는

모두의 건강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영상통화로 어머니의 칠순을 기념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당신의 생일을 챙기는 것을 미안하십니다.

당신의 생일을 피하려고 하는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쓰려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나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왔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가족의 발을 꼭꼭 묶어두고 있습니다.

4월 27일은 저희 아버지의 13번째 기일인데요, 이번에도 어머니는 내려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2007년 이 맘 때였습니다.

재래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해오신 아버지가 허리를 삐끗해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는데,

이게 잘못된 건지 이튿날 아예 걷지도 못하셨습니다.

병원 한 두 군데를 더 전전하다 결국 종합병원으로 옮기셨습니다.

큰 병원에서도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고 2~3일 정도 병실에만 계셨습니다.


서울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저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빠, 괜찮아? 내가 내일 휴가 냈어. 대구에 내려갈게. 조금만 기다려.”

“뭐하러 내려오노? 난 내일 퇴원하려고 신발하고 옷하고 갖다 놨다. 여기 형이 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회사나 다녀라.”

그리고 몇 시간 뒤, 깜깜한 새벽에 형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형은 울먹였습니다.

“00아… 아버지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생생한 목소리로 저와 통화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서울에 살던 매형과 함께 바로 택시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대구로 내려가는 내내 눈물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 어머니는 저를 보자마자 거실 바닥에 주저앉고 오열했습니다.

“00아, 이게 무슨 일이고? 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게 무슨 일이고.”

목이 메인 저는 갈라진 목소리로 연신 “엄마”, "엄마"를 부르며 어머니를 부축했습니다.

막내인 저는 유독 아버지를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들어오셨습니다.

밖에서 아버지 트럭 소리가 나면 강아지처럼 제가 뛰어 나가 아버지를 맞이하곤 했습니다.

불록 나온 아버지 배를 샌드백 삼아 권투 흉내도 많이 냈습니다.


저는 살면서 병원 신세를 많이 졌는데요,

입원실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늘 인자한 미소로 저를 보고 계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정작 아버지가 약하고 아프실 때는 단 한 번도 제가 옆에 없었다는 게 죄송하고 한스럽습니다.

평생 벌어놓은 돈으로 제 몸 치료는 못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가신 아버지.

제 아들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손자인데…

제가 아버지의 삶의 반이라도 따를 수 있을까요?


최근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요, 마지막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 여행이다.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매일 열심히 사는 것, 마치 그날이 내 특별한 삶의 마지막의 날인 것처럼…”

막걸리 한잔이면 환한 웃음을 지으시던 아버지...

오늘따라 정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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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한 라디오 방송에 소개된 나의 아버지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초토화된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때의 비통한 마음을 담아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고 운 좋게 잘 소개됐다. 이렇게라도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가족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연이 그 시작이었고 이 글들로 실천하고 있다. 우리 가족의 역사를 아내에게 전해주고 아들에게 남기고 싶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저작권에 저촉된다면 반드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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