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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Jun 07. 2022

tree_7. 잠든 아이

가족과 함께 진화하는 삶 

'잠자는 아기의 모습은 천사와 같다.'

천사를 본 적은 없지만 잠자는 아기의 모습은 정말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아들이 아기일 때 나는 새벽에 한두 번씩 깨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아기들은 자면서 몸을 뒤척이다 푹신한 이불이나 배게에 호흡이 막힐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다. 유치원 때부터 이런 걱정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자다가 한 번씩 일어나 아들이 잘 자고 있는지 살펴본다.


새벽 4시가 지나면 요란한 알람 소리와 함께 피곤한 몸을 정신력으로 일으켰던 아버지.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의 잠자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을까. 초등학생 때까지 살았던 집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내가 한 방에서 같이 잤다. 형만 독립적인 공간이 있었다. 어쩌면 집이 작았기 때문에 아버지도, 어머니도 우리가 곤히 자는 모습을 보시고 새벽 시장에 나가셨을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와 이런 부류의 얘기를 한 적은 없다. 뚝뚝하진 않으셨지만 속 마음이나 감정을 얘기한 적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없다.


밤 10시쯤 집에 돌아오시면서도 '피곤하다', '힘들다'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하지 않으니 어머니도 하지 않으셨다. 전쟁 같은 하루를 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TV만 보고 있던 내 모습을 보고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렇다고 나의 이런 모습에 잔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형이 우리를 가르쳤다. 일어나 인사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들고 오시는 짐을 받으라고. 그때부터 대문 밖에서 아버지의 지친 트럭 소리가 들리면 자동으로 몸을 일으켜 부모님을 마중 나갔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서 감정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은 물론 가족에게 내 감정을 털어놓는 데 인색하고 어색하다. 속 후련히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늘 조심스럽다. 내 감정을 가장 많이 얘기하는 상대는 아들이다. 원래 아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아들의 속 마음을 알고 싶기 때문에 내가 먼저 나의 속 마음을 솔직하기 말한다. 


보육 도서에 따르면 아들이 학교에서, 놀이터에서 어떻게 지내고 놀았는지 알고 싶으면 부모가 먼저 자신이 오늘 하루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들에게 얘기해야 한다. 효과는 만점이다. 내가 얘기하기 전까지 아들은 나의 하루에 관심이 없었지만, 내가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순간 아들은 큰 관심을 갖고 때로는 질문도 한다. 그러고 나면 아들도 자신의 하루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아들의 올바른 인격 형성과 정신 건강을 위해 가족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적절한 감정 표현은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놀 수 없는 밤을 싫어했고 놀 수 있는 아침을 좋아했던 아들. 잠자는 아들의 모습은 여전히 천사 같지만, 이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이런 아들에게 나는 변화를 넘어 진화해야 하는 시기라고 타이른다. 한 번씩 우리의 언행을 따라 하는 아들을 보면 무거운 책임감도 든다. 


아들이 진화해야 한다면 당연히 부모가 진화해야 한다.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 밤늦게 자지 않는 것, 집 안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감정을 공유하는 것... 무엇을 하든 아들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고 평소 가볍게 해왔던 행동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아들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아들과 함께 더 잘 살기 위한 진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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