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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Apr 25. 2022

tree_6. 아들 자전거

'누가, 왜 자전거를 던졌을까.'

자전거 거치대 맨 안쪽에서 아들의 자전거를 찾았다. 거치대에 가지런히 세워진 자전거들 위에 아들 자전거가 누워 올라탄 모습이다. 내구성 좋은 강철 프레임에 21인치 바퀴가 달린 어린이 자전거. 성인이라도 허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려 3~5미터를 던지기 쉽지 않다. 거치대 주변에는 여전히 다른 자전거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아들 자전거를 내려놓고 정상 구동되는 걸 확인하고 나니 화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누가, 왜 우리 자전거를 들고 던졌는지 궁금해졌다.

어릴 때 아버지한테 유일하게 사달라고 조른 건 자전거였다. 유독 자전거 타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아버지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사주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평소 삼 남매에게 "오토바이는 절대 타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 나면 죽거나 죽지 않으면 장애인이 된다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자전거는 오토바이와 같은 이유에서 타는 것을 절대 반대하셨다. 특히 우리 집은 재래시장 이면도로에 있어 항상 차와 사람으로 붐볐다. 사고가 나도 이상할 게 없는 동네였다.


빚쟁이였던 아버지는 자전거에 모터를 달아 개량한 '자전거-오토바이'로 맨 처음 새벽 장사를 시작했다. 자전거-오토바이 뒷자리에 채소를 잔뜩 싣고 요란한 모터 소리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면서 시장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장사가 좀 되면서 아버지는 자전거-오토바이에 리어카를 연결해 몰고 다니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죽거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자전거-오토바이를 타셨다. 매일 자전거-오토바이를 타야 했던 아버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버지는 왜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을까. 아버지의 무게를 몰랐던 가족들... 아버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아버지는 새 파란색 락카 페인트로 광을 낸 중고 자전거를 사주셨다. 삼 남매 중 유일하게 나만 자전거를 가졌다. 4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저녁부터 잠들기 전까지 바깥에 자전거가 잘 세워져 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할 정도로 정말 좋아했다. 


나의 멋진 자동차였던 새 파란색 자전거는 한 달여 만에 없어졌다. 친구들과 신나게 자전거를 탄 뒤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잠깐 집 앞에 세워놨는데 그 사이에 도둑맞은 것이다. 펑펑 울면서 동네 곳곳을 뛰어다니며 자전거를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내가 가장 아끼 자전거를 잃어버렸다는 데 충격이 너무 컸고, 슬픔에 눈과 귀가 막힐 정도였다. 아버지는 크게 혼내지 않으신 걸로 기억한다. 오히려 걱정 하나 덜었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자전거의 '자'자도 꺼내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자전거가 됐다.

다음날 오전 관리사무실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CCTV 확인을 요청했다. 같은 동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남성이 1층 자전거 거치대 주변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치우더니, 갑자기 아들 자전거를 번쩍 들고 다른 자전거들 위로 던졌다는 것이다. 관리사무실 직원도 이 남성의 행동이 처음부터 좀 이상했다고 설명했다.

CCTV를 보고 싶다고 하자 '경찰에 신고할 거냐'라고 물었다. 법규 상 경찰에 신고할 목적으로만 당사자가 CCTV를 열람할 수 있단다. 이후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자 번거로웠다. 대신 같은 동 게시판이나 엘리베이터에 경고문을 붙일 수 있다고는 했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진 않았다.


한 때 아들이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놔둘 때마다 혼을 냈다. 자전거를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야단치며 내가 직접 자물쇠를 채웠다. 요즘은 아들도, 나도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그냥 세워둔다. 잃어버려도 그렇게 아깝지 않을 것 같아서다. 오히려 걱정 하나를 덜 수 있지 않을까. 지상에 차량 통행이 제한된 아파트에 살면서 아들에게 매번 "조심히 자전거를 타라"라고 잔소리하는 내 모습에 아버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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