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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Apr 15. 2022

tree_5. 아들 여행

아들과 여행을 좋아한다. 휴직한 뒤로 아들과 종종 둘이서 동네 여행을 다닌다. 시작은 산책이었는데 걸어다닌 기억보다 대화한 기억이 더 많다. 이후로 아이와 얘기하고 싶을 때는 둘이서 집을 나선다. 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동네 주변을 걸어보니 새로운 게 보였다. 때로는 야밤에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고,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운동'처럼 여행하기도 한다. 한 번은 걷기 싫어하는 아내를 데리고 세 식구가 집에서 도심 방향으로 7km 정도 도보 여행을 했다. 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싶을 때 먹었다. 유일한 불편은 매연과 미세먼지였다. 아들은 새로운 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한다. 그런 아들을 보면 나도 즐겁다.


아들은 7살 때부터 산에 올랐다. 힘들어 하긴 했지만 싫어하지 않았다. 워낙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 항상 에너지가 넘쳤다. 8살 때는 동네 친구와 함께 제법 높고 거친 산에 오르기도 했다. 등산 간식이 초콜릿과 사탕 같은 '단 것'이라서 다행이다. 아들이 맞이한 일곱번째 추석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산을 올랐는데 불평 한 마디 없이 왕복 4시간을 완주했다. 희한하게도 아들이 먼저 쉬자고 한 적이 없었다. 진지하게 산에 오르는 모습이 어른보다 더 어른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선 다시 아이로 돌아와 곤히 잠만 잤다.

아버지는 항상 나를 데리고 다녔다. 아버지는 1년에 한두 번 시장 전체가 문 닫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쉬셨는데, 날씨가 좋을 때는 나를 데리고 가까운 강으로 민물고기를 잡으러 가셨다. 형이나 누나, 어머니가 동행한 기억은 없다. 형과 누나는 이미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졌고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이 간절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 혼자 나가시는 게 안쓰러워 별말 없이 순순히 따라갔다.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날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가장 긴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민물고기를 잡고 손수 매운탕을 끓여먹는 것을 좋아하셨다. 새벽 장사를 마치고 아침식사 반주로 드시는 막걸리 다음으로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묻지도 않았는데 고기가 어디에 많이 모여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셨다. 아버지가 끓여주는 매운탕은 내 입에도 잘 맞았다. 아버지는 집에서든 밖에서든 좋아하는 음식은 직접 하셨고 다 맛있었다. 매운탕까지 먹고 나면 내일 장사를 준비하기 위한 물건들을 사러 갈 시간이다. 아버지는 늘 하루를 이틀처럼 사셨다. 1년에 한두 번 있는 쉬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생전에 온 가족이 함께 여행 간 적이 없다. 돈도 돈이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새벽 장사를 하시는 아버지는 삼 남매가 자고 있을 때 출근해서 다시 잘 때쯤 돌아오셨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사셨지만, 가족과 함께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혼여행도 못 갔다고 했다. 나에게도 여행은 초등학교 소풍과 중학교, 고등학교 때 갔던 수학여행이 전부였다. 대학생이 돼서야 여행의 재미를 알았지만 가족 여행할 정도의 시간과 여유는 없었다.


첫 가족 여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2년이 되던 해, 어머니를 모시고 삼 남매 가족 모두 문경새재로 떠난 것이 처음이다. 딱히 뭔가를 계획하고 준비해서 간 여행은 아니었지만, 이날 여행은 모두가 행복했고 모두가 즐거웠다. 더 늦기 전에 두 번째 가족 여행을 가고 싶다. 어머니만 괜찮다면 가까운 해외라도 모시고 싶다. 자식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어머니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아들과도 꼭 떠나고 싶은 여행이 있다. 아들이 '중2병'을 앓거나 인생의 고난을 만났을 때 단 둘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 아이의 세계를 모르고 하는 허왕된 꿈이라고 하지만, 그저 말없이 그냥 걷는 것만으로 삶에 대한 생각을 서로 공유하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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